30여 년 전, 코딱지 같은 제조업도 지지부진 하고,,,그래도 종업원들 월급은 아니 줄 수 없었다. 제일 만만한 게 아내고 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 줄 수 없었다. 어느 땐가 눈물로 호소하는 아내를 위해 무리해서 생활비 몇 십 만원을 주었다. 오랜만에 받은 생활비로 시장을 보러 간다며 지하철을 탔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준 생활비를 몽땅 쓰리를 맞은 것이다. 아내의 낭패감 허탈감...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아내를 몸살 나게 했었고 그예 고열에 시달리며 사나흘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30여 년 전 그 시절의 얘기를 꺼내고‘그 때 자기 그 돈 쓰리 맞고 반 초죽음 됐었잖아...ㅋㅋㅋㅋ..’남의 일이라고 그런 농담까지 튀어 나왔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전 이장 부인의 쓰린 속이 지난날 내 아내의 속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 여름 뙤약볕의 결실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으니 그 보다 더 한 쓰라림일 것이다. 한 편으로는 비록 우리 집에서 잊어버린 것은 아니로되 우리 집에 배달 왔다가 잊어버린 돈이니 더 안타깝고 죄스런 마음이 든다.
‘아~ 이거 김치를 어떻게 먹지? 김치 맛이 안 나겠는데..?’나의 투정 아닌 투정을 아내는 안다.‘한 5만 원이라도 보태 줘야겠지?’아내의 통 큰 제안이다.‘그래! 맞아 그거라도 줘야지 우리가 김치를 편히 먹지...’우리는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전 이장의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 부부가 합의한 사실을 얘기 한다.‘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회장님!(아내는 영광스럽게도 우리 마을 부녀회장이다)당치도 않은 말 하지도 마세요.’라는 그녀의 대꾸가 내 귀에까지 들린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니 배추 값의 반은 꼭 드려야 속이 편하고 우리가 김치를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설득했지만 그녀는 계속 펄쩍 뛴다.
면소재지 앞에는 현 이장님의 부인이 철물점을 하고 있다. 가끔 얘기 했지만, 우리 마을 현임 이장님은 정말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그 부지런함 열정이 상대적으로 전 이장과 비교가 된 관계로 나는 전 이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 이장 아내와 현 이장 아내가 소위 아삼육이자 절친 관계라는 것은 마을 아니 면 전체가 다 알까 말까다.
전 이장 부인으로부터 지극한 사양(또는 사절(謝絶))을 받고, 나와 아내는 현 이장님의 부인이 운영하는 철물점에서 몇 가지의 월동준비에 필요한 물건을 산 뒤 그 얘기를 꺼냈다.‘이래 저래 해서 돈을 잃어버리고, 비록 우리 집은 아니지만 그 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니 찝찝해서 제 맛이 안 날 것, 그래서 단 5만원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저렇게 극구 사양을 한다. 그런 즉 이장님 사모님께서 이 돈을 좀 전해 주십사....정히 받지 않겠다면 내년에 그만큼 배추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농작물을 달라.’고 그 돈을 맡기고 돌아섰었다. 지금까지 푼 썰이 아마 열흘 전쯤의 얘기였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 버렸는데.....
그제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의 TV앞에 앉아있는데 자동차 불빛 하나가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대낮 같으면 거실 창밖으로 다 볼 수 있지만,,,,잠시 후 현관문을 두드린다. 전 이장의 부인이다.‘아니 어떻게 오셨는지요? 진이 엄마! 여기 전 이장님 사모님 오셨네~!!’, 일단 들어오시라니까 바빠서 가봐야 한다며‘다른 게 아니고 저~ 우선 이것부터 받으세요!’라며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아내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은‘신사임당 5만 원 권’이다. 그리고 이어서‘저희 10만원 찾았어요!’란다. ‘네!?, 아이고! 정말이요?’, ‘네, 정말 찾았어요. 저희 배추밭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절친인 현 이장님 부인으로부터 5만원을 전해 받은 게 일주일이 훨씬 넘었단다. 막상 전해 받기는 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며 바로 오려 했으나(5만원을 반환하기 위해...)요즘 이곳 산골의 계절이 마지막 수확기에 월동준비 시기다. 피일차일 미루어 오든 차, 김장용 배추주문이 들어와 밭에 갔더니 그곳에 10만원이 떨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그날 저녁 처형(제)집에 배달을 끝내고 또 다른 주문이 있어 수확하러 헤드랜턴을 키고서 까지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한 여름 땀의 결실을 빠트린 것이었다.
솔직히 당시 그녀의 기분이 얼 만큼 좋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돈을 찾았다는 소식을 그 저녁에 가져왔을 때 나와 아내는 그녀 보다 더 뛸 듯 기뻤던 것이다. 그녀가 돌아간 뒤 나의 일성이‘아이고! 이제 김치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겠네...’그리고‘공짜 돈 생겼으니 반띵 해야지?’했다가‘때~액!’하는 아내의 호통만 들었다.
덧붙임,
전 이장부인은 그날 그 기쁜 소식과 함께
이만기 장딴지만한 무를 여섯 단이나 가져왔다.
고마웠다며.....그 돈을 찾든 못 찾았든 가져왔을 것이다.
옛 말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동안 데면데면했던 이웃과 새롭게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