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계절 중 봄. 여름은 늦게 찾아오지만, 가을. 겨울은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우리 마을의 김장은 빠르면 10월 말 늦어도 11월 초엔 다 마친다. 우리 집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남들 서두는 김장을 보고 가만있을 수가 없어 배추밭에 가보니 아직 속이 덜 찼다. 사실 금년엔 배추모종을 네 번이나 심었다. 모종을 하고 돌아서면 고라니가 뜯어먹거나 뿌리 채 뽑아 버린 탓이다. 어떻게 화가 나는지 마지막 네 번째는 독한 마음먹고 과립농약을 퍼 붓다시피 했다. 나중 김장 할 때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서 하겠다는 기분으로. 그 정성(?)이 통했는지 네 번째 심은 것은 일부 고라니의 피해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이들보다 한 달가량 늦은 모종이었던 관계로 한창 김장철엔 그것으로 김장을 하기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 마을 전 이장은 내게 찍힌 인물이다. 나와는 어떤 사태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마을의 이장이 되어서는 안 될 친구였다. 그가 이장 직을 수행 할 때‘아~! 아~! 마이크 시험 중입니다.’이 소리 한 번들은 적 없고 우리 집 앞개울에 큰 다리공사를 반 년 가까이 했음에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은 무심한 친구였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가 원래 무심한 친구는 아니었고, 짓는 농사가 워낙 많았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저희 집 농사꺼리가 많다보니 제 일 추단도 힘든데 마을 일은 언감생심이었던 모양이다.
마을입구에 너른 배추밭이 있는데 정말 탐스럽게 배추농사가 잘 되었다. 막상 김치를 담그려 했으나 주재료인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고민하던 아내는 우리 부부 먹을 김치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3남매 것을 먼저 해 주기로 작정하고 마을입구 배추밭 주인을 수배했는데 그 주인이 다른 이가 아닌 전 이장의 소유라는 것이다. 배추 주인은 거시기 하지만 배추가 탐이 났던 고로 결국 150포기(처형30, 처제20포기 포함)를 주문했고, 그날 저녁 한참 저녁식사를 하는 중 배추는 배달이 되었다. 100포기를 먼저 우리 집에 떼고 나머지 50포기는 처형(제)네로 보냈던 것이다.
배달된 배추가 워낙 실했던지 다음날 아침, ‘김장하는 김에 우리 꺼도 할까?’라는 아내의 제안에‘그러지 뭐...배추도 맛있게 생겼는데...’그리고 아내는 이내 전 이장 집으로 전화를 하며 50포기를 더 주문한다. 그런데 전화를 주고받으며‘저걸 어떡해! 저런! 저런! 아이고...’뭐, 계속 안타까운 비명(?)을 지른다. 아내의 소란함이 당연 궁금할밖에...전화가 끝난 뒤‘왜 그래? 뭐야!?’,‘아! 글쎄, 어제 배추 값 10만원(100포기)준 걸 잊어버렸대요,’,‘뭐야? 어디서?’,‘아! 알면 찾게요!?’아내의 버럭 질에 움찔하고 말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큰일은 큰일이다. TV뉴스에서 남아도는 배추를 갈아엎어야 하는 농민들의 울상을 내 보내지만, 어쨌든 여름내 땀을 흘린 대가를 잊어버리다니...개인 적으로 얄미운 것은 얄미운 거고...대한민국 전체 농심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구나 전 이장의 아내는 그 돈 때문에 밤잠을 못 잤다는 것이다.
배추가 배달되고 아내는 막 떠나려는 이장 부인에게 잠간 기다리게 해 놓고 차문을 열어 10만원을 쥐어 주었으니 우리 집에서 떨어트린 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찾아보자며 배추 쌓인 곳과 차가 지나간 자리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돈은 없다. 혹시나 해서 처형(제)네 집에 떨어진 게 아닐까? 그곳도 함께 뒤졌지만 10만원은 오리무중.
30여 년 전, 코딱지 같은 제조업도 지지부진 하고,,,그래도 종업원들 월급은 아니 줄 수 없었다. 제일 만만한 게 아내고 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 줄 수 없었다. 어느 땐가 눈물로 호소(?)하는 아내를 위해 무리해서 생활비 몇 십 만원을 주었다. 오랜만에 받은 생활비로 시장을 보러 간다며 지하철을 탔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준 생활비를 몽땅 쓰리를 맞은 것이다. 아내의 낭패감 허탈감...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아내를 몸살나게 했었고 그예 고열에 시달리며 사나흘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