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경내에‘안골’이라는 곳이 있다. 마을의 초입 약간 후미진 곳에 네댓 가구 사는 그런 곳이다. 그곳엔 막 팔순이 되신‘지씨 형님’ 내외분이 살고 계신다. 호칭이 아저씨 그러기도 뭣하고 어르신 그러기도 뭣하여‘지씨 형님’이라고 부른다. 정말 평생을 농사만 지으신 순박하기 그지없는 촌양반이다. ‘이PD’얘기를 빌리면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농사일의 귀재(?)였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 양반도 세월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지 허리도 많이 꼬부라지고 바싹 말라 내가 보기엔 열심히 하시기는 하지만 보통의 농사꾼으로 전락한, 어쩌면 평생의 생업인 농사짓기엔 이제 연세가 너무 높은 분이다. 그런데다 작년엔 부인이 모는 사륜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가다가 논둑에 굴러 중상을(부부가 함께 중상을 입었다. ‘지씨 형님’은 까막눈이라 면허증이 없고 부인도 까막눈이기는 하지만 사륜오토바이를 몬다. 그 사고로 지씨 형님은 6개월 가량 입원했었고 아주머니도 두 달 여를 입원했었다.)입은 후 현저하게 쇠약해 진 상태다. 그럼에도 두 양주 분은 자신들의 농사를 마무리 한 뒤 다른 이들의 농사에 품팔이로 나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양반들이 당장 그 일(품팔이)을 그만 두면 굶어 죽을 만큼 빈한한 것도 아니다.
다시‘이 반장’의 얘기로 돌아와야겠다. 나로서는 애증의 대상인‘이 반장’, 그는 지금 홀아비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이PD’의 전언이다. 그는 약 15년 전 상처를 했다고 했다. 상처한 부인은 정말 미인이었고 한 마디로 요조숙녀라고 했다. 더구나 그녀는 목사님의 딸이라고 했다. 그 전'이 반장‘의 확실한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유당 시절의 정치 깡패‘이정재, 유지광’을 언급할 때(내 앞에서도 가끔씩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눈이 반짝거리는 걸 보면 아마도 그쪽 세계의 똘마니? 그 시절이 그랬듯 깡패 똘마니에 걸려든 양가집 규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유추를 해보지만, 아무튼‘이 반장’이 허랑방탕한 생활을 유지할 때 그의 부인은 전통한복을 지어 팔며 생계를 유지 하다가 무슨 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엔 남매를 두었고 아들은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목회를(작년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한다고 했다. 그런‘이 반장’이 한창 바람을 피다가 혼외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다.(어떤 다방의 아가씨와 연분을 맺은 사이에서... 작년 우연한 기회에 그 혼외 자식을 조우했다. 나이30이 넘었다고 했는데 某공단 근처에서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추수계절만 되면 아비를 찾아와 뜯어 간다는....)아무튼‘이 반장’이 상처를 하고 난 뒤, 지금까지 약 15년간 삼시세끼를 해결한 곳이 바로‘지씨 형님’댁이었던 것이다. 다시 얘기하면 그들은 한 솥 밥을 먹는 식솔 즉 한 가족이며 어느 곳 어떤 행사(?)를 가더라도' 이 반장'이 운전사 노릇을 해 주며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숙명적(?)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농사일엔 정말 문외한인 내가‘이 반장’에게 어떤 일을 의뢰하면 꼭‘안골 지씨 형님 내외’가 함께 등장 했던 것이다.(이 부분은‘이pd’네도 마찬가지였고...)즉 일의 과다와 경중을 차치하고 무조건 3인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인건비로 끝날 일도 3인이 등장해서 그 인건비를 받아가곤 했지만‘이PD'나 나로서는 불쾌한 감정을 가지면서도 그렇게 쭉 해 왔었다.
그런데 거름 값 때문에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이PD’네는 금년 농사준비를 우리 집 바로 아래‘뻥팔이(뻥이 좀 세다고 붙은...)’에게 의뢰 했던 것이다. 14-5년을 밑지며 거래해 왔는데 도시 촌놈이라고 너무 무시한다며 분개하는 그의 변명을 듣노라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근 500평의 밭을 갈고 비닐 씌우고.... 나는 ‘뻥팔이’가 그렇게 일하는 모습을 우리 집 거실 창문으로 하나 빠짐없이 목격을 했다. 만약 저 넓이의 토지에‘이 반장 형님’그 일을 한다면....하루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고... 최소한 이틀 아니면 그 이상. 그렇다면 인건비로만 40-60여만 원이 넘는 것이다. 그런데‘뻥팔이’는 약 네 시간 만에(물론 트랙터를 동원한...) 그 일을 마치고 그가 요구하는 금액은 10만원이라는 것이다.(결국'이PD'는 사양하는 뻥팔이에게 5만원을 더 꾸겨 넣었단다)그러면서 내게 전언하기를“오 사장님 댁도 소개 좀 시켜 주세요.”라고 했지만, “그 양반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했다는 말까지 덧붙여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아내와 나는 웃으며“이 반장 형님’과 시비라도 붙을까 보다”라는 농담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농담이고 그래도 지난 2년을 함께 호흡한 ‘이 반장’에게 일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정서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물론 그 기에는‘지씨 형님’ 내외분도 함께 고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부분도 그렇다. ‘지씨 형님’ 아주머니는 거의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따라다닌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 점은 비단 고용주의 눈에 비추이는 게 아니고 마을의 공통 된 견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그 아지매 뭘 하러 왔(갔)데여!?”이다. 늘 그늘에서 쉬거나 아니면 하는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하루를 채우고 일당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이 반장’의 작업 태도다. 마을이 떠나갈 정도로 흥겹게 떠들고 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입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다부지게 일을 하지 못하고 건성건성 하는 식이다. 또 함께 일을 한다고 해도 가장 쉬운 작업을 선택해 하는 게 역력하다. 얘긴 즉 금년 팔순이 되신‘지씨 형님’만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 것이다. 셋이 열심히 하면 하루에 마칠 일도 이틀 사흘로 널어나는, 참으로 장사꾼인 나의 주판알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 불공정한 노사관계가 2년을 넘게 유지 되었지만 그래도 ‘이 반장’팀을 배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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