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다시 한 번 말씀 올립니다마는 추석명일 보셨지요? 얼마나 썰렁한 명일이었습니까? 나름 상다리가 부러지게 제수를 올린 차례상 앞에 겨우 현섭이와 둘이서 제주 따르고 옮길 손이 부족하여 이리로 한 차례 또 저리로.... 좌우 옮겨 다니지 않던가요? 예솔이는 또 어땠습니까. 아직은 증손자가 없어 그 고사리 손을 합쳐 예를 드리게 하지 않든가요? 소자와 아들 손녀 셋이 차례상 앞에 부복을 하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거 아니다. 차라리 제사를 형님께 넘겨 드리든지 아니면 제사를 폐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형제자매들이 보다 쉽게 조상님과 두 분을 기리는 자리에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장가도 안 간 형님이 제사를 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막내 동생 준이에게 맡아달라고 하는 것 또한 연목구어나 다름 아니니 차라리 종교를 빙자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 종교에 귀의라도 할까?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그 어느 것도 할 짓은 아니며 어찌되었든 소자 살아생전까지는 조상님 전에 물 한 그릇이라도 올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대저 모든 집안의 장자가 똑똑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집안은 부모님 아니 계시더라도 확실히 그 가문은 영(令)이서고 응집력도 강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고 부모님 사후에라도 그 장자가 구심점이 되어 가문의 대소사를 잘 처리해 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해 본즉 모다 그러했습니다. 형님을 원망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형님을 모해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형님이 이제와 장자로서의 역할을 바라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 아니겠는지요. 마냥 답답하기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시골도 살만 합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던 쌍8년도 농사짓던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자신만 바지런하면 얼마든지 행복을 추구하며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시골입니다. 작은 누나도 그렇습니다. 40이 넘은 아이를 시집도 가지 못하게, 마치 아버지 어머니가 형님과 막내를 주려 끼고 사시던 것처럼 저러고 있기에 시골로 내려오라며 얘기를 해 보지만‘시골’이라는 단어에 진저리를 칩니다. 시골이 어때서요? 작은 누나도 벌써 칠순이 다 되갑니다. 매형과 별거를 한 지 벌써 20년 가깝습니다. 젊은 시절 알뜰살뜰 직장 다니며 모은 돈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마는 딸년 혼사 길을 막고 있는 격이 아닙니까? 아참! 유 서방이 지난 7월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고 말씀 드렸지요? 지금 조용히 정양 중입니다. 어차피 직장은 정년퇴직을 했고 某법무법인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는 중 병이 났습니다. 역시 산골로 내려와 여생을 보내라고 종용을 했답니다. 그러나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약간 움직이는 듯 합니다마는....두고 볼 일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왜 어째서 산골이 싫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이 바로 박힌 많은 이들이 귀농과 귀촌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물경 3만 여 가구가 산골로 어촌으로 귀향을 했답니다. 살기 좋은 산골을 왜 마다하는지 골백번을 고쳐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께 드리는 하소연 끝을 맺어야겠습니다. 생색을 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아니 되고. 어떻게든 형제들과 우의를 다지려고 노력은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노력을 계속할지 불초소자는 장담이나 약속을 드릴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 그들이 가여우시다면 현몽이라도 하셔서 그 뜻을 전달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두 분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불빛을 찾아다니는 불나방처럼 화려한 도시 속의 삶이 좋다며 그곳에서 안주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보는 이 없이 숨을 거둔다면, 그 누가 그들의 죽음을 알겠습니까? 결국 백골이 되어 아무 죄 없는 또 다른 형제나 자매를 개망나니나 패륜아로 치부되는, 그런 곤혹스러운 상황은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 어머니! 거듭 간청을 드립니다. 또한 외람된 말씀이나 소자와 진이 어미는 이제 할 만큼 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다 동원 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길은 두 분께서 현몽하시와 형제들을 설득해 주시는 길밖엔 없습니다. 그 마저도 아니 된다면 저와 진이 어미는 더 이상 형제들의 용단(?)을 기대 않겠습니다. 아래채는 오래 전부터 월세를 달라는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더 이상은 복덕방의 청을 거절 않으려 합니다. 며칠을 두고 드린 이곳 소식에 노엽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차라리 안 듣느니만 못하셨겠지만 소자 오죽 답답하고 우울했으면 그랬을까? 하시며 용서 하십시오. 드릴 말씀은 태산과 여해 이오나 다음을 기약하오며 이만 총총.
불초 병규 拜.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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