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74세 625동란 때 폭격으로 왼쪽다리 대퇴부까지 잘림. 여태 총각임.
큰 누이: 해방둥이. 무위도식하는 똑똑한 매형을 모시고 삶. 지난 주 위암 판정 수술 앞 둠.
작은 누이: 돼지띠. 나와는 연연생. 20년 째 별거. 죽어도 이혼 못하는 이유. 연금의 반이 남편한테 갈까봐.
큰 돈 없지만 제 앞가림 하며 시집 안 간 40살 먹은 딸과 살고 있음..
큰 여동생: 말띠. 그런대로 살고 있음. 지난 7월 중순 제 남편이 위암 수술했고 요양 중임.
작은 여동생: 원숭이띠. 이혼 후 강원도 삼척에서 두 번째 남편과 살고 있음.
그 남편 되는 자가 무슨 부동산중개업을 하는데 맨 날 큰 건을
바라며 요행수만 따르는 자 같음. 맘에 안 듬.
막내 동생: 50대 중반. 늦둥이라 금이야 옥이야 키워졌음. 버르장머리 없이 더럽게 자람.
많은 유산은 아니지만 적장자를 무시하고 상속을 한 놈임. 그런데 문제는....
직장이라고 나가면 두세 달 나가고 2-3년 쉼. 따라서 무위도식하며
제 마누라(유치원 교사)가 벌어 오는 것으로 생활함.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기체후일향만강하시 온지요. 또한 먼저 가신 대소제절께옵서도 두루 평안들 하신지요. 더구나 10여 년 전 그곳으로 가셔서 소식조차 없으신 숙부님의 안위가 걱정이 되신다며 이승의 연을 훌훌 터시고 약 3개월 전 그곳으로 올라가신 숙모님은 상면하셨는지요? 무엇 하나 하나, 모두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엊그제가 추석명일이었던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명일 차례 상에 두 분 다녀가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보셨겠지만 얼마나 쓸쓸한 명일입니까? 저희가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한 이후로 명일은 해해연연 쓸쓸해지고 있답니다. 두 분 살아 계실 때는 그래도 명일이면 하루 종일 대소제절과 친인척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마는 이제 친인척은 고사하고 형제자매마저 발길이 뜸 합니다. 하여 오늘은 이 소자가 작심을 하고 아뢸 일이 있습니다. 혹 중간 중간 외람된 말씀을 드리더라도 너무 허물치 말아 주시기를 간청 드리며 두 분 떠나신 이승 소식과 지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좀 엉뚱한 이승 소식 하나를 먼저 소개 시켜드릴까 합니다. 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금년 귀농. 귀촌 인구가 3만 가구가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이루었답니다. 또 그 보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는 단칸방서 홀로 사는 90代 질병·가난·고독, 老人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기사와 "밤이면 혼자 있기 무서워 울어… 이 방서 외롭게 죽기 싫다"등의 르포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 숙모님 장례식장에서의 일입니다. 일흔 넷의 초췌하고 깡마른 형님도 문상을 왔더군요. 저희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두 번의 명일 포함 기제사 때문이라도 최소한 예닐곱 차례는 뵈었습니다마는 이제 그러하지 못한 사이 많이도 늙으셨더군요. 마음이 몹시 짠하였습니다. 그런 형님을 기회를 보아 한가한 곳에 불러내어 조용히 얘기 했습니다.
“형님! 제발! 이제 내려오세요! 아예, 큰 매형과 누나도 함께 내려오시면 집수리 깨끗이 해서 함께 사십시다. 진이 어미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대찬성을 했습니다. 죽이든 밥이든 저희와 함께 하십시다. 저는 가끔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독거노인이나 돌보는 이 없이 홀로 죽어 백골의 시신으로 발견 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이제 형님이나 매형과 누나 더 늙어 돌보는 이 없다면 그런 뉴스 제가 접할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콩가루집구석도 아니도 무슨 개망신이랍니까? 누구를 형제도 돌보지 않는 개망나니로 만드실 참입니까?”
아버지 어머니! 위의 얘기는 그날 만 드린 게 아닙니다.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전화를 드리며 협박을 하다시피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뿐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답니다. 큰 매형에게도 큰 누나에게도 형님에게 드린 똑같은 얘기를 했답니다. 특히 큰누나 내외는 경기도 광주 모처의 재개발지역 곧 헐릴 판자 집에서 보증금 기백만 원에 월세를 살며 누나가 70노구를 이끌고 무슨 빌딩의 청소를 해가며 사는 꼬라지가 안타까워 이곳에 내려오면 자그만 미용실(원래 미용사였으나 종교에 미쳐 업을 때려치우고 광신도가 된 터. 이곳에서 조그만 미용실을 차리고 교회도 다니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이나 식당을 하나 차려 주겠다고 해도 저리 고집을 핍니다.
아버지 어머니! 일구난설이라고 하지 않든가요. 그간의 일들을 어찌 한 입에 다 말씀 드리겠습니까? 내일 다시 아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