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봄입니다. 봄이 너무 화사하여 정신도 차리기 전 창졸간에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도로 한겨울입니다.


백두산이 따로 없다. 지난 금요일 밤새 천등산 중턱 위로 하얗게 눈이 왔다. 갑작스런 눈으로 산 아래 여파가 자심하다.
매년 이맘때면 사이비 농사군인 저도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매년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아는 것도 없고 따라서 할 게 없는 겁니다. 특히 아내는 농자금 투자에 비해 오히려 그 몇 배의 손해를 보는 농사를 짓지 말고 나무를 심자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나무를 심으려 해도 어떤 것을 심어야할지? 그래서 고심 끝에 아내와 합의 보기를 같은 농사를 지어도 힘이 덜 드는 콩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2천여 평에 몽땅 콩을 심는 것으로...)콩 농사는 아직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대처에도 그런 집이 있다. 손두부집에 가면 콩비지 한 봉지씩 가져가도록 입구에 놓아 두는... 며칠 전 두부마을이라는 면소재지 식당에 갔다가 콩비지 한 봉지 얻어와 8:2 비율로 전분을 혼합한 후 김치와 약간의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 부침개다. 맛이 녹두부침개 이상으로 좋았다. 혹시 녹두부침개 아줌마들..???
사실 이 계절이 되면 하는 일 없이 마음이 전문 농사꾼처럼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할 그 무엇이 없습니다. 햇수로 4년 산골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웜업을 했으니 이제는 뭔가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초조감(?)도 들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저런 귀농. 귀촌을 지원하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내 소유의 땅에 폐가가 한 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헐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적미적 미루어 왔다. 드디어 지난 주에 과감히 헐었다.
영농을 해 보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정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천등산 마을 전체를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거짓말 안 보태고 북괴가 화학폭탄을 투하 했나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초겨울 뒷산에서 벌목을 하던 J가 며칠 째 자신의 4천여 평 밭에 중장비를 동원해서 수 백포의 유기거름(돼지 똥 숙성시킨... )시비하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북괴의 화학전 같았던 냄새를 피하기 위해 그날 서울 집으로 피난(?)을 갔다. 물론 할 일도 있었지만, 그 할 일을 그날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 었다. 그런데 서울 집 마당엔 봄이 한창이다. 늘 애기하지만 이곳 보다 위도 상 훨씬 북쪽에 봄이 먼저다. 심지어 마당 한 구석의 민들레 마저도....

몇 달 전 김포 사돈어른께서 주신 콩이(옛이름 '드림이')는 이제 중개가 되어 서울 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마치 반달곰처럼 서 있는 모습이 귀엽다.
돼지 똥거름 내를 피하여 피난까지 다녀 온 놈이 무슨 농사를 짓겠느냐고 지청구들 하실 테지만, 그거 안 당해 본 사람을 말을 마십시오. 그러나 뭐 또 한두 해 지니다보면 익숙해 지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끔찍할 정도로...)아주 오래 전 김해공항을 통하여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주위의 농가에서 인분을 뿌려 농사짓는 모습에 깜짝 놀라 대한민국이 이토록 미개한 나라인 줄 몰랐다는 불평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돼지 똥을 보다 숙성시켜 냄새가 덜 나는 쪽으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회사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예년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서울 집에서 돌아 오던 때가 우리 면의 5일장이다. 장터에서 개량종 다알리아가 너무 예뻐 색깔을 달리하여 사왔다.
농사를 짓네, 못 짓네. 농군이네 아니네. 서둘건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 산다는 게 다 그렇잖아요? 순리와 섭리대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끼어 맞추고 서둔다고 되겠습니까? 혹자는 강태공처럼 곧은 낚시에 세월을 낚으라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래도 좀 마음의 여유와 평정으로 살아간다면 적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중국 사람들의 만만디(慢慢的)관습을 상기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실한 표고 버섯 달랑 세 뿌리.

약 3년 전 개울 건너 이 반장에게서 20만원 주고 샀던 표고포자가 밖힌 참나무다. 당시 2년만 지나면 표고가 열린다고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샀는데 세월이 지나도 영 달릴 기미가 안 보인다. 3월이 지나자 지난 겨울 월동준비용 화목이 떨어졌다. 뒷뜰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놈을 화목으로 때려고 굴리는데...세상에~!!! 저 놈들이 눈에 뜨이는 거다.
필요 없을 것 같아 용도폐기 하려던 것이 저런 결실을 맺어 줄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곳에 내려 온 첫해 아무 생각 없이 고구마 농사를 지었습니다. 고구마 싹, 거름, 인건비 포장박스 등등 280-90만원 들었습니다. 가족끼리 지인끼리 나누어 먹은 것 다 계산하면 50-60만 원 정도 수확 됐을 겁니다. 약300만 원어치 고구마를 사먹었다면 1년 365일 고구마만 먹어도 남았을 것입니다. 표고 달랑 서너 개 달렸고 실제 앞으로 얼마나 더 달릴지 모릅니다. 20만 원어치 표고를 샀다면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요? 세상을 산다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크게 기대할 것도 또 실망도 하지 말자는 겁니다. 흔한 얘기로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던가요? 둥글납작 그러나 모나게 살지 않으면 정 맞을 일은 없겠지요? 여기서'납작'이라는 표현은 겸손하라는 얘깁니다. 둥글둥글 약간은 겸손하다면 세상만사가 다 편해 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