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을 떠나온 지 햇수로 어언4년. 솔직히 귀촌을 할 때 크게 자신이 없었다. 몇 년 아니면 얼마간 살다가 돌아오지(가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실제 많은 이들이 귀농이나 귀촌을 하여 뿌리박는데 2년을 기준점으로 삼는 걸 보았다. 그런데 벌써 4년이라니....

실내엔 벌써 봄꽃이 화사하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하더라도 반은 이곳에 반은 한양에서 생활했으니 귀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살 집이 완성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살만한 구옥이 있었음에도)역시 한양 땅에 대한 미련이 얼마간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하루, 한 달에 2-3일 머물게 되던 것이 특별한(가령 꼭 가야할 경조사 등)일이 없는 한 거의 상경을 않고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런즉 그 넓은 한양 집이 늘 비다시피 했다.

거실창으로 바라보면 봄이 완연한 것같다.
아들내외가 지난여름 만기가 되가는 전세아파트 때문에 고심하는 얘기를 듣고 그러지 말고 한양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며느리에게 시집으로 들어와 사는 기분이 들것 같은 조심스러움 때문에...)집 구하러 하도 돌아다녀 고생을 했는지 아니면 아래위층간 소음 때문에 가끔씩 불쾌한 지경까지 갔던지, 표정이 의외로‘불감청고소원’인양 이구동성으로“그래도 되겠습니까?”라며 반색을 한다. 그런 얘기가 있은 뒤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식으로, 우리부부가 아주 가끔 상경하면 생활할 방 한 칸을 남기고 아들내외와 손녀는 이사를 했다.
며느리와 처음 혼담이 오갈 때 아들내외는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나는 반대를 했다. 가장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여름이면 위통을 벗고 사는 나의 생활습관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마음대로 방귀도 뀌지 못할 것 같은 기분, 아울러 화장실사용 등등. 아무튼 그런 소소한(?)일 때문에 반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막연한 불편함이 현실로 다가올 줄이야....

화사한 봄꽃과 바깥이 대비 된다.
쌍둥이가 한양 저희 집으로 가고난 뒤 약 보름 간 그 뒷일 관계로 아내와 헤어져 있어야 했다. 다행히 주말을 이용하여 아내는 금요일 이곳으로 내려왔다. 좀 불편한 것은 아내 소유의 차량이 있지만 초보운전이라 아직은 고속도로나 대처로 나가보질 않았기에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이곳과 한양을 오가는 점이다. 물론 금요일 저녁에도 쌍둥이 인수인계식 하고 막차를 타고 왔기에 근 열한시나 되어 이곳 집에 도착했다.(충주 터미널까지 가서 픽업해 왔기에...)그리고 꿈같은 재회 후 사흘 밤을 보낸 뒤 월요일 첫차로 상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꽃샘 폭설이라니...
막상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가 자꾸 애틋한 생각이 든다. 사랑스런 아내가(요거 진심이다. 아직 나이 덜 든 분들은 늙어보면 안다.-.-;;;)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세파에 흔들릴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다. 내가 좀 더 노력했으면 운전기사라도 딸려 보낼 수 있었을 텐데...하는 죄책감도 든다. 그래서 생각을 짜낸 결과가 내가 직접 운전기사가 되어 아내를 한양까지 모셔 드리기다. 솔직히 젊은 날 같지 않아 운전하는 게 특히 장거리는 점점 싫어진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내를(다시 강조하지만 요거 진심이 맞다.)위해 고행의 길을 스스로 택했지만, 나름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한양의 우리 집이 의구한지? 아들내외가 관리는 잘 하는지? 등등 시찰도 겸한 상경이었던 것이다.

눈치우는 게 걱정이다. 농사 준비 좀 하려 했는데...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며늘아이가 이상한 건가? 안방까지 내주고 더부살이(?)를 하건만, 며느리는 안방에 딸린 화장실엔 세탁기 두 대(난 보지도 못했다. 아들내외가 이사 온 이후로 그 방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를 설치하고 세탁과 손녀아이 씻기는 것으로 용도를 제한하고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쩌다 한양 내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이게 제일 불편하다. 또 내 버릇이 아침에 꼭 샤워를 해야 하는데, 며늘아이가 왔다 갔다 하니 그것도 어렵고 정말 어려운 것은 화장실 내의 크고 작은 일을 치른 뒤끝의,,,잔존해 있을 나의 냄새 따위가 혹시 들키지 않을까? 하는 엄청난 두려움.

내린 폭설에 짜증을 내면서도 사진기를 들이 댄다. 제설 작업은 뒷 전이고....
아내를 고이 모셔다 드리고 잠시 쉬는 사이 배가 살살 아파온다. 전날 저녁 오버한 포도주 탓이리라. 그래서 아침에 블로깅도 조토마에 썰도 못 풀었는데... 하필이면 한양 집에서 그 후유증이....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며느리는 거실로 주방으로 제 방으로 분주하고... 열시 반쯤 병원에 물리치료(지난 해 아시아나기 사고로 인한 후유증을 아직...)간다기에 좀 참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 전개가 점점 내게 불리해 진다. 더 이상 참기가 힘이 든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래층 딸네(쌍둥이 母)에게로 뒤를 잡고 황급히 달려 내려갔다. 1차급한 대로 배설을 하면서 걸터앉은 자세로 생각을 해보니 내 신세가 참으로 처량한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소통할 수 있는 길만 열었다. 나라 사정도 이렇게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봄눈은 봄눈이다. 하루만에 이런 폭설이 거의 다 녹았다. 봄눈 녹듯.....
어쩌다 내 신세가 이 지경이 됐지? 한 여름 웃통 벗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방귀 한 대 뀌겠다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화장실도 제대로 이용 못하는 이 처량한 신세. 아래층에서 올라오자마자 아내에게“나 돌아갈래~!”하며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자“왜? 왜요? 아버님!”아내와 며느리가 이구동성으로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점심이라도 먹고 가지...그러세요! 아버님!”하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아냐!”단호한 한마디를 남기고 곧장 이곳으로 내려 왔고 또 이렇게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