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한 직장에 근무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얼마 뒤 이직을 한다. 직장을 옮기며 마누라는 전업주부가 된다. 그래서 심심하단다. 마누라의 보챔을 못 이겨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나 내 주었다. 생각보다는 너무 바쁜 거다. 돈이 왕창 벌려서가 아니고 잔 일이 많다는 거다. 퇴근 후 마누라 잔심부름하기 홀 써빙(맥주나 음료 등등)하기... 자꾸 쪽이 팔리는 거다. 뿔뚱가지를 내며 난 이 짓 못하겠다. 때려 치워라! 연애는 한 3년 했지만 신접살림 얼마 안 된 것들이 자주 다툰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처갓집을 아예 근처로 이사를 시켰고 장인어른 돌아가셨지만 장모님은 지금도 가양동에 살고 계신다. 38년째인가 39년째 인가?

제일 큰 손녀 '은비'
그 사이 큰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인 장모님 차지였다. 정말 금이야 옥이야 길러 주셨다. 우리가 직접 길렀으면 그리 못 길렀을 것이다. 그렇게 반갑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사업을 한답시고 출사표를 내며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운다. 그리고 집도 옮긴다. 장모님과 딸아이가 생이별을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부부는 괜찮은데 장모님은 계속 눈물이 마르지 않으신다. 울고, 울고 또 우시고... 속으로 짜증이 났다.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만나고 싶으면 언제라도...참, 저 노인네가 왜 저러실까? 이게 내 본심이었다. 그리고 3-4년이 지나서도 아니 지금도 장모님은 그때 이별의 순간을 못 잊어 하신다. “그때 정말 세상이 다 귀찮을 만큼 진이(딸아이 이름)생각에 잠도 안 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하시며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신다.
![%BB%E7%C1%F8_995[2].jpg %BB%E7%C1%F8_995[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32/10932/7/20140227_065934_81880c1ed6eb505df47eb335623c89b6.jpg)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은비'
그랬던 딸아이가 시집을 가서 또 딸을 낳았다.‘은비(내가 지었음)’라고 이름만큼 예쁜 손녀다. 은비가 네 살 되던 해, 딸아이가 1년 조금 넘게 캐나다(밴쿠버)로 유학을 갈 일이 생겼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난 위암수술을 하고 백수가 되었기로 크게 할 일이 없었다. 내가 맡겠노라! 은비의 베이비시터를 자청을 했다. 밥 먹이기, 간식거리 만들기, 유아원 데려다 주기, 또 데려오기, 뒤 닦아주기, 잠재우기 등등...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렇게 보살피니 할머니보다 나를 더 따르고 잠도 할머니 방이 아니고 내 침대에서 잤다. 어쩌다 제 할머니 침대에 재우면 깨어서 울고불고 제 이불 베개를 들고 내 침대로 찾아든다.

초등학교 입학 후의'은비'
1년여의 기간이 끝나고 딸아이는 돌아왔고 ‘은비’는 제 어미 아비 품으로 돌아갔다. 아주 오래 전 근 40년 전 장모님은 울고, 울고 또 우셨는데 그때 나는 속으로 짜증을 냈었다. 가짜 같아서....그런데‘은비’가 제 집으로 돌아간 뒤 내 자신이 침식이 불안 했다. 잠도 안 오고 배도 안 고프고 자꾸 그것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직도‘은비’가 옆에 누워있는 듯 체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 감정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3-4년을 갔고 은비가 초등학생이 되니까 좀 식었다.

간식 중인 쌍둥이.
쌍둥이가 간단다. 오늘 간단다. 그냥 여기서 기르고 싶은데...제 아비 어미가 각오를 단디하고 저들이 직접 기르겠단다. 속으로 이것들아, 고생 좀 해봐라! 라며, 지청구 아닌 지청구를 보내지만 쌍둥이들에게도 변화는 있다. 지나가는 젊은 여성이나 젊은 아저씨만 보면 전부‘엄마고 아빠’란다. 얼마나 엄마 아빠가 그리우면 그럴까.......콧등이 시큰해 진다. 그리고 또 속으로 이거뜰이~~!!! 할미 할아비가 그렇게 잘 해 줬는데...그래도 한편 고맙고 기특하다. 주일마다 제 아비어미가 이곳에 내려와 갈 때도 생떼를 쓰지 않고 아빠 아뇽~ 엄마 아뇽~을 외치면 오히려 저희 엄마가 눈물을 질금 거린다.

쌍둥이 언니'수아'는 김포 사돈어른을 닮아서 재주가 많으려나 보다. 제 장난감 건반이 소리가 안 나자 직접 점검에 나섰다. 난 몰랐는데 아마도 그곳이 배터리 넣는 곳이었나 보다. 사진을 찍은 후 확인해 보니 과연..ㅎㅎㅎ..
유아원 수녀 원장님과 샘은 아주 각별하게 쌍둥이를 돌봐 주셨다. 아니 어떻게든 이곳에 남겨 두라고 거의 통사정을 하신다. 정히 그러하다면 대소변이나 마스터 하고 보내자며 2-3개월 더 있다가 보내잔다. 그런데 서울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신학기라 자리 있을 때를 놓치면 학기 중엔 자리가 없단다. 서울상황이 그렇단다. 그래서 더 기를 쓰고 데려간단다. 어떻게 말릴 방법이 없다.

때론 이렇게 다정할 때도 있다. 둘이 다정히 또 심각하게(?)TV를 보는 앞뒤 모습이다.
어제는 수녀 원장님과 샘에게 마지막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원장님!...만약에... 만약에 말씀입니다....쌍둥이 제 어미 아비가 힘들어 하고.... 아니 힘들어 하면... 저~!../.. 다시와도 받아 주시겠습니까? 아주 어렵게 운을 떼었다. ‘아유~ 할아버님! 말씀이라고요, 언제든지 데려오세요!’ 헛 인사라도 약속은 했다. 설마 수녀님이 거짓말 하시려고?


자는 모습. 가운데 할미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쌍둥이가 그렇게 저희 어미 아비 앞으로 간단다. 그날이 오늘이다.
쌍둥아! 정말 보고자프면 이 할애비가 자주 올라가마!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빨리 자라주렴. (아!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공기가 좋아서 그랬는지 쌍둥이가 올 겨울 감기 한 번 안 걸렸다.) 감기 같은 거 절대 걸리지 말고....

곯아 떨어진 할미 위에 올라가 만족한 미소를 짓는 동생'주아' 그 아래로 언니'수아'도 꿈나라를 헤맨다.
덧붙임,

바리바리 이 어린 것들 짐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직도 반은 더 남았다. 우선 녀석들이 가장 긴요한 것부터 한 차 실었다.거의 이사 수준이다.


현관 문앞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기념촬영.
그리고 어제 쌍둥이는 무사히 저희 어미 아비 품으로 무사히 인수인계 되었다.
이제 오늘 내려 갈 길이 구만리 같을 것이고, 도착하면 그 썰렁함을 무엇으로.....에고. 에고고.. 에고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