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마을 부녀회 일로 면소재지를 간단다.(아직도 미숙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자신의 차를 끌고 가까운 면소재지와 쌍둥이 유아원 정도는 자가운전을 하고 있다.)“그래? 나가는 김에 돼지 목살 두세 근만 끊어와!”,“뭣하게요?”,“으응~! 오늘 저녁에 홀아비들 좀 위로 하게...”

홀아비 위로 잔치용 돼지목살 찌개
울 건너 앞집 이PD네 굴뚝에 연기가 나질 않는다. 전화를 해봐!? 말아!? 망설이고 있는데 저만큼 우리 집 삽짝으로 마을이장의 차가 들어온다. ‘저 양반이 웬일?’찾아오는 손님 내 칠 수 없어 잠시 기다리자 이장이 들어온다. “어서 드시지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시든가 공지(마을 앰프로...)를 하시지 않으시고...??”, “아! 예, 시에서 지원자에 한 해서 팰릿보일러교체 사업을 한다기에 혹시...”,“아이고! 불감청이나 고소원입지요”그리고 신청서를 한 장 준다. 따끈한 커피 한 잔 내오고 이런저런 마을 얘기며 이웃에 대한 정보교환(?)을 하다가 문득 이pd네 집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와 그가 와이프는 동반하지 않은 채 혼자 내려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pd네 집에서 바라본 최公네 집. 컨테이너 앞에 최공이 소찬 쟁반 들고 오는 것이 잡혔다.
늘 원앙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들이라 좀 의아했지만 전화를 하여 혼자인 것을 확인 하고 저녁에 적당한 찌개를 만들어 갈 테니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기별을 하자, 이pd왈 한 사람 더 불러도 좋겠느냐는 것이다. 누구냐고 물으니 이pd네와는 대각선으로 새 집을 지은 某공기업을 은퇴하고 이곳에 정착을 한 최 선생(나는 그를 최公이라고 호칭 한다)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여름 막걸리 몇 병 함께 나누어 마신 후 대작을 하지 않았는데, 당연한 것을...그러시라고 대답을 하자 묻지도 않았는데 그(최公)도 와이프가 서울의 아들네 집에 갔으며 며칠 째 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퍼뜩‘옳거니! 내 오늘은 홀아비 아닌 홀아비들을 위로해 줘야지...’그래서 부녀회 일로 면소재지를 간다는 아내에게 돼지 목살 좀 끊어 오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언덕 위의 새집은 또 다른 某공기업 은퇴를 앞 둔'정 부장'네 집.
면소재지를 다녀 온(그 사이 나는 쌍둥이를 돌보고...) 아내는 갖은 양념에 꽤 여러 종류의 버섯을 넣고 얼큰한 돼지목살 찌개를 만들어 준다. 그것을 들고 이pd네 집으로 향하는데 저쪽에서 최公이 홀아비살림에 먹다 남은 아니면 먹고 있는 소찬(?)을 조그만 쟁반에 받쳐 들고 온다. 고기도 충분하고 한 즉 한 사람 더 초청을 했다. 이장님도 오시라고 전화를 했다.

'정 부장'도 앞으로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다. 이pd, 이장, 최공, 정 부장, 문 선생(가장 나이 어린...) 나.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층에 속하고 반경100m 이내에 모여 산다. 마을을 위해 좋은 일들만 했으면 좋겠다.
“만식이 형님! 이pd랑 화해 하쇼!”,“에에이~ 그런 소리 말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사람들이랑 화해를 해!? 시려!”,“아! 누가 형님이 잘못했데? 형님이 손윗사람이니 한 번 져 주라는 게지. 내 막걸리 몇 통 사다가 부를 테니 못이기는 척 화해 하쇼!”,“에에이~ 그런 소리 말어!”며칠 전 마을회관에 주민을 위한 무슨 행사에 참석한 후 점심을 마친 뒤 이pd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 반장 형님에게 내가 제안 했던 말들이다. 화해를 하라! 싫다! 가 오갔지만 만식이 형의 말끝이 많이 순해 진 것을 느꼈다. 즉 막걸리 몇 통 사다가 부르면 올 것 같은....그런 기분 말이다.

가장 가까운 두 이웃이 빨리 화해를 해야할 텐데... 괜히 신경이 쓰인다.
이pd네 모이면 대체로 음주 가무가 있는 날이다. 그는 방송인답게 아주 좋은 음향기기와 노래방 연주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색소폰 연주자다. 따라서 기분이 좋으면 색소폰, 알토 색소폰, 클라리넷, 기타 나로선 이름도 모르는 악기 대여섯 종류가 더 내와서 작은 연주회를 연다. 그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10여 가지 된단다.(비록 산골이지만 그가 있어 문화생활을 즐긴다. 또 가까이 가수‘홍민’씨도 찾고...) 또 우리 마을 이장님 또한 노래라면 빠지지 않을 가창력의 소유자다.(하긴 대한민국 국민 중 우리 마누라와 몇몇을 빼고 노래 못하는 사람 없지만...)
어쨌든 실컷 마시고 먹고 벌어진 네 사람의 작은 음악회를 겸한 디너 쑈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내친김에 이 반장 형님에게 제안 했던 화해의 권고를 똑 같이 조심스럽게 제안 했다. 그러나 당장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다. 그래서 첫째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내가 불편하고, 둘째는 이제 은퇴 후(이pd는 다음 주 월요일(2/24)로 은퇴식을 갖는단다)정착을 하시려면 마을 주민과 융화를 해야 한다며 설득을 했으나 그날은 요지부동이었다. 사실 그날의 행사(?)를 꾀한 것은.... 일방적으로 이pd에게 통고도 않고 화해를 하자며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이 기회 저 기회 엿보고 있던 참인데 그날 마침 홀로 있는 이pd에게 이 반장과의 화해를 붙여 보려고 그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건만 그날은 실패를 했다. 화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될 수도 있겠지만 피차 십 수 년 간 쌓인 앙금이 그리 쉽게 녹아 나겠는가? 비록 그날은 실패 했지만 산골마을의 작은 음악회를 빙자하여 화해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