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잘 꾸지 않는다. 꿈(희망)이 없어서인가? 꿈(희망)을 포기한 것일까? 는 모르지만....
어떤 때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또는 무슨 꿈인가를 꾸었는데,,,,깨고 보면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개꿈(?)뿐이다. 나에 비하면 아내의 꿈 이야기는 생생하다. ‘어제 꿈에는....’으로 시작되는 아내의 꿈은 신통하게도 뭔가를 예시하는 꿈들이 많았다. 아니 거의 그랬던 것 같다. 가끔씩 농담으로 ‘파고다 공원에 자리 하나 펴지...’라고 하지만, 때로는 섬뜩하고 비릿한(여기서 비릿함이란, 부부지간의 비리 또는 부당성을 말함)꿈도 있을 때는 ‘혹시 이 사람 전생이 무당이나 박수였거나 그런 기질을 잉태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며 전율할 때가 있기까지 한다. 원! 별스런 얘기를 다하고 있다. 실소(失笑)라는 썰제를 붙여 놓고 실소(失笑)스런 얘기를 했다.^^*
나는 꿈속에서도 “흐어~! 그 참!”급히 꿈을 깨우며 피식 웃었다. 자연스레 꿈을 깬 것이 아니라 비몽사몽간에 ‘이건 꿈이야~ 이건 아냐~! 이래선 안 돼!’라고 생각했고 꿈을 강제로 깨운 것이다. 그리곤 “흐어~! 그 참!”피식 웃으며 옆에서 자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꿈이지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안도하며 컴 앞에 앉아 꿈을 재생(再生) 시켜 보는 것이다.
내 형님을 욕되게 하고자함이 아니다. 형님은 7남매의 맏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형님은 한쪽 다리가 대퇴부까지 없는 불구이다. 수송(지금 종로구청자리)초등학교 3학년인 9.28수복일 날 폭격으로 그리 됐으니 소년기. 청소년기에 얼마나 놀림을 받았겠는가.(지금 같은 세상이 아니었으니...)그래서 그런지 형님의 성격은 외골수이다. 吳哥고집도 한 고집 한다던데... 도를 넘었다. 자신이 뭔가를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양보가 없다. 형님의 이런 고집 때문에 많은 충돌을 일으키며 자라기도...또 장남이 그러하니, 그저 가련하고 불쌍한 부모님의 마음이야 오죽했겠으며, 없는 속에서도 형님의 원(願:바람)은 비교적 잘 풀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형님은 술. 담배. 잡기에 능했었다. 그런데 언제 이던가? 세상 유혹을 다 뿌리치고 신학을 공부 하더니만 목사 안수를 받고 조그만 개척교회도 열고 열심히 사제가 되어가는 듯 했지만, 겨우 몇 명의 신도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부모님 살아생전에는(아! 다리병 신에게 시집올 사람이 없으니 평생을 독신으로 있다.)그래도 그늘 아래에서 생활 걱정이 없었다. 교회가 되는 둥 마는 둥 할 당시에 여러 번 권고를 했다‘차라리 지방으로 내려가서 조그만 교회를 짓고 사역을 하시는 게....’그러나 그 놈의 황소고집이 씨알도 안 먹혔고....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내가 포기한 것은 형님의 그런 사제로의 독선(?)에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 것도 한 몫 한다.
아무튼 그런 형님이 부모님 돌아가시자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인천 동암역 쪽에 조그만 다세대 주택을 구입해서 살고 있지만, 나머지 6남매 다 가정을 가지고 있으니 장가 안간 독신의 형님을 누가 모시려 아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많지는 않지만 매월 월급 드리듯 송금을 하기도 얼굴 마주치면 안쓰러움에 집히는 대로 드리면 한 번도 사양하시는 걸 못 봤으니 그게 또 안쓰럽고 눈물이 나려한다. ‘이 양반이 이렇게 사시는 게 아니었는데...머리 좋고 총명하여 수재 병 신이라고 놀림을 받았었는데...’생각하며 ‘그러게 웬 고집이 그렇게 쌔가지고는....’하며 내 혼자 속으로 장탄식을 한다.
그런 형님이....며칠 전 형님이 전화를 주셨다. 거금이 생겼는데 그동안 고마웠고 하니 ‘내가 너에게 조금의 성의 표시’를 하겠다며 전화를 주신 것이다. 솔직히 감지덕지 아닌가? ‘그럼 만납시다.’하고 만사 제쳐두고 동암으로 달려갔다. 공돈이 생긴다는 대야....형님을 만나자(끝까지 돈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오백만원 수표 한 장을 내민다. 감사히 받고 돌아왔다.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내 갈등(?)이 증폭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실소(失笑)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엊그제 막내 여동생이 전화를 했다. ‘오빠는 큰 오빠한테 얼마 받았어?’,‘아니!?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라고 시치미를 떼었으나, 전후 사정 얘기를 듣고 보니 형님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생들에게도 얼마간씩 나누어 주었던 모양이다. 그 기 까지는 형님의 선행(?)에 감사했었는데, 막내 여동생의 전언에 그만 나는 꼭지가 돌아 버린 것이다. ‘근데 오빠! 큰오빠 당첨금이 40억이 넘는데...’, ‘뭐야!? 당첨이라니 그리고 40억? 그래서 형님이 돈의 출처를 얼버무리고 함구했어...!!??’, ‘내~ 이~ C바~! 그냥 안 둔다.’그리곤....
형님에게 며칠 째 전화를 걸고, 어제는 동암 형님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으나 현관문은 굳게 잠겨있고 인기척이 없다. 요 며칠 간 조토마에서 짜증스러웠고 힘들었던 게 이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도대체 이 양반이 어디로 갔을까? 의례 로또에 당첨 된 사람들처럼 벌써 해외로 튀었을까? 누나네로 동생들에게로 형님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계속 전화를 돌리며 나의 분노는 증폭해 가고 ‘C바~! 잡히기만 해 봐라!’ 막무가내로 전의(戰意)를 다지다가, 문득 ‘하이고~! 오병규 너 그러면 죄 받는다. 밥술 먹으면 되었지...욕심 내지 마라!’뭐, 이런 생각이 퍼떡 들며 비몽사몽간에 ‘이건 꿈이야~ 이건 아냐~! 이래선 안 돼!’라며 꿈을 깨웠고 연이어 “흐어~! 그 참!”이라며 실소(失笑)를 했다.
아내는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나 보다. 가늘게 코까지 곤다. 이런!! 쯧쯧...이불을 걷어차고 자네. 조용히 아내를 덮어주고... 아무리 꿈이지만 사람의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워~언!!! 정말 쪽 팔리는 꿈이다. ‘자식 7명 있는 91세 男, 단칸방서 혼자 살다가 설날 아침 숨진 채 발견’이런 기사 때문인가?
에필로그:
그랬던 형님이 큰누님과 함께 설날 이곳을 다녀가셨다.
무슨 마음을 잡수셨는지.... 혼인을 아니 하셨으니
사고무친(?)이시다.
일흔 넷....불구의 몸으로 누군가의 보살핌이 더 필요 할 때...
제발! 내려오십시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남은여생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저희 부부가 꾸려 볼 테니...
약간 마음이 끌리시는 것 같아 흥분이 된다.
마침 내 소유의 빈 집도 있고....정 뭣 하시면 아담하게 한 채...
여차 직하면 마을 꼭대기에 아담한 요양원도 있답니다.
형님! 누님! 그래도 저희가 아직 힘 있을 때....
그리고 내려오시라고 할 때 오세요.
형제자매 7명 있는 91세 男, 단칸방서 혼자 살다가 설날 아침 숨진 채 발견’이런 기사 만들 순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