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벗이 몇 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고산 윤선도 선생의 오우가(五友歌)첫머리입니다. 근간들어 저는 이 오우가라는 것이 얼마니 황당하고 허구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오래 전 열반하신 승철 스님의"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경구가 얼마나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지 모른 답니다. 닭은 닭일 뿐이지 벗이 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鷄장군 명종(鳴鐘)이는 아무리 그래도 벗이 될 수 없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부엉이가 다녀 간 다음부터 마루와 방문 앞에서만 노닙니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죠. 얼마나 놀랐으면 저럴까? 연민의 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루를 보십시오. 온통 놈의 배설물 구덩이 입니다.
부엉이가 침입했던 그날 그 새벽 명종이는 단단히 혼이 났던 모양입니다.(하긴 저도 벗이 내지르는 단말마에 엉겁결에 팬티바람으로 뛰어 나갔지만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다시 뛰어 나갈지는 의문입니다)그날 밤 이후로는 그만 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와 명종이의 갈등이 비롯된 것입니다. 갈등의 속내를 말씀 드리기 전 다른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살표의 철봉이 놈의 횟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원내가 놈의 숙소가 된 것입니다. 아래 화살표는 놈의 배설물입니다.
사실 저와 아내는 명종이의 옛 친구들을 한양으로 압송하게 한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목공사만 끝나면 어느 한 곳에 적당한 터전을 잡아 명종이 새집을 지어주고 굳건히 살아남은 계(鷄)장군에 어울리는 몇몇의 처첩과 신방을 꾸려 줄 계획이었답니다. 하여 계획을 세우기를 놈을 포획하여 전 주인의 닭장에 잠시 맡겨 둘 심산을 했고 전 주인과는 합의를 보아 언제라도 그곳에 보낼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놈의 흔적을 보다 크게 확대하면 위와 같습니다. 정말 환장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저와 놈이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놈을 포획하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즉 놈은 저를 믿고 지근거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데 그때 놈을 포획하면 놈에게 배반감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주저주저 했던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부엉이’사건이 터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명종이는 앞마당과 마루가 놈의 주 무대가 되었고, 우리 집 지킴이‘진돌이 진주’근처를 맴돌며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온 마당과 마루가 놈의 배설장소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방문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놈이 그렇게 시끄럽고 거추장스러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나 시끄럽고 지저분한지 어떤 땐“아유~! 저 놈의 개~새.... 아! 참, 아니지,,, 저 놈의 닭 새끼~!”하며 욕이 막 튀어 나옵니다.

오후 다섯시 쯤이면 이렇게 제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곤 새벽 4시(어떨 땐 그보다 빨리)부터 사람을 못살게 깨웁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놈이 숙소를 제 마음대로 임시현관의 철골 위에 횟대로 삼고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사실 멀리 떨어진 놈의 숙소에서 새벽을 깨우는 소리도 만만치 않은데 현관 문 앞에서 악을 쓰는 소리는 차마 견딜 수 없는 고문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참고 참았습니다. 그러나 치워도치워도 자꾸 쌓여만 가는 놈의 배설물에는 그만 질려 버렸고 화가 돋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다 주말에 내려온 아내의 짜증은 저로 하여 갈등을 넘어 분노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엊그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놈을 포획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보통은 놈 때문에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 인터넷 서핑을 하며 썰 풀 일이 있으면 썰을 풀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먼저 개밥을 주고 나면 다음이 명종이 모이 줄 차례입니다. 놈은 용케 자신의 차례인 것을 알고 제가 모이 포대로 가면 뒤를 졸졸 따라오며 보챕니다. 모이를 주면 고개를 처박고 먹는 것에 열중합니다. 그때는 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놈을 포획하기란 너무 쉽습니다.

놈은 정말 약은 놈입니다. 약은 정도가 아니라 노회(老獪)한 놈입니다. 그날 이후 낮에는 개집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마음이 다급한 나머지 놈의 다리를 잡는다는 것이 날개쭉지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놈은 괴성을 지르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그 이후로는 절대 제 곁으로 오지를 않습니다. 놈의 그런 행동들이 지금은 약이 오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 놈의 생명을 연장해주고 더불어 예쁜 짝까지 지어줄 심산이었는데, 저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고 똥을 아무데나 싸질러 놓고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소리를 질러 대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자나치게 약아빠져 닭답지 않음이 어떨 때 화가 납니다. 저 놈을 잡을 방법이 없을까요? 이제 공사가 시작되면 공사 인부들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저렇게 도망 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텐데... 안타깝기도 얄밉기도....
아내는 지금도 놈을 향해 이렇게 얘기 합니다.“너 빨리 잡히는 게 오래 사는 길이다.” 라고.... 이제 공사가 시작되면 공사하는 사람들의 차지가 될 텐데....저렇게 오만하게 제 멋대로 행동하는 놈을 더 이상 감싸주고 싶은 생각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 때는 막역지우는 아니지만 저와 놈은 벗이었는데....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