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 -Digest 21-
로마는 BC.6세기 세르비우스王 때부터 5년주기로 國勢調査를 실시했다.
시민권자가 갖는 투표권과 맞물려 直接稅를 내지 않는 대신 血稅로서의 병역의무의
이행은 기본이었다.로마의 국가운영 기초자료가 이때부터 국세조사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BC.225년의 시점에서 로마시민의 병역해당자 수가 28만명인데 대해 동맹국 전체에서는
60만명에 달했다.
로마의 통상전력 4개 군단을 기본으로해서 갈리아人 상대 전투가 부단히 이어져 증강이 불가피했던 당시를 예로 들면 군사력 배분은 다음과 같다.
*로마시민군......보병--20,800
기병--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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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2,000
*동맹국군.......보병--30,000
기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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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32,000
*시칠리아 등 屬州방위군(로마시민군).....보병--8,400
기병---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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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8,800
**이상 총 로마시민군---30,800
동맹국군-------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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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계---------62,800
로마군은 매년 동원되고 인구비례로 따지면 동맹제국의 3배 이상의 血稅를 부담함으로써 覇權國으로서의 로마가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결론이다.
패권자여서가 아니라 전쟁의 희생도 그만큼 더 감수할 수밖에 없는 로마人이 로마군단의 총지휘권을 쥔다는 것은 당연했다.
집정관의 요청을 받고 정해진 날짜 정해진 장소에 집합한 로마市民軍도 동맹국軍도 로마의 軍律을 지키며 싸울 것을 최고사령관인 로마집정관에 서약을 한다.
<로마聯合軍>은 비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집결지에 모인 동맹제국의 참전병은 각기 같은 나라 지휘관의 통솔을 받으며 집정관이 소집하는 작전회의에는 이들 동맹제국의 지휘관들도 참석한다.
이렇게해서 편성된 <로마연합군>의 주축이 되는 로마시민군 병사들은 전술상의 이유에서, 또 납세의무의 경중에서 다음 다섯으로 분류된다. 단위는 통상 전략단위인 2개
군단으로 한다.
먼저 6백騎로 되는 騎兵이 30기씩의 분대로 나뉜다. 資産상 제1계급 출신들이다.
다음 두번째로 2천 4백명의 자산 제4 제5게급에 속하는 시민들로 구성된 輕裝步兵이
온다. 무장을 가볍게한 이들은 前衛 아니면 遊擊隊로 싸우는 전술에 활용된다.
로마군단하면 重裝步兵을 연상케하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로마군의 주력은 로마시민의 상류와 중류층 출신들로 이뤄진 중장보병이다.
자산조사에서는 제1, 제2, 제3계급 출신은 전원이 여기에 소속되며 간혹 제4계급도 편입되는 수가 있다.
이 중장보병도 3列橫隊로 싸우는 것이 定石인 로마군에서는 다음 세가지로 나뉜다.
최전선에는 최연소 17세부터 전투경험이 적은 젊은 시민 2천 4백명으로 구성된 하스타리(hastari)라는 초년병들이 배치된다.
제2열에는 로마군단의 주력으로 알려진 프린티페스(printipes)라는 역시 2천 4백명으로 구성된 30대 청년군이 선다. 전선이 무너졌을 때 경험 있고 왕성한 전투력을 갖춘 이들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제3열에는 40대 전후에서 현역 최고령인 45세까지의 시민으로 구성된 토리아리(toriari)가 배치된다. 체력은 다소 뒤지지만 戰場經驗이 많은 베테란인 그들에게 後衛를 맡기는 것이 로마군단의 전투대형의 원칙이었다.
3열횡대로 짜인 로마 중장보병의 하스타리와 프린티페스 그리고 토리아리가 중대라고 한다면 각각의 중대는 다시 20개의 소대로 나뉜다. 이것이 로마군에 융통자재한 전투
방식을 허용한 요인이다. 한편 하스타리와 프린티페스의 소대는 각각 120명의 병사로 구성되며 토리아리만이 60명으로 편성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군단의 최소전투단위가 되는 소위 百人隊(켄토우리아)라는 것으로
古代로마를 주제로 하는 영화라면 반드시 등장하는 百人隊長의 배경인 것이다.
총사령관의 참모를 맡는 장군급은 시민 투표로 뽑는데 반해 이때문에 명문가 자제들이나 유명 장구들이 선출되는 반면 백인대장만큼은 결력 있는 사병 출신들이 선발되는 것이 보통이다. 백인대장은 생사를 같이하게 되는 자대 병사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철저히 적용된다.
병력미필자들이 국가비상대책 벙커회의를 소집했다는 2200년 후의 우리사회 현실과 한번 비교해 볼일이다.
중장보병이 점하는 로마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만큼 사병출신의 백인대장이라고해서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다. 시민군 시대의 로마군의 주력은 자기들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전사들이었다.
2개군단의 백인대장은 모두 60명, 그 중 득표 수가 많은 12명은 집정관이 주재하는 작전회의에 장군 기병대장 그리고 동맹군 지휘관들과 하께 참석한다. 로마군단의 백인대장은 단순한 하사관이 아니었다. 로마군단의 등뼈 역할은 상급지휘관인 장군급들이 아니라 하급지휘관급의 백인대장(켄토우리아)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로마군단의 최소전투단위의 소대장으로서 선두에서 戰士들을 이끌고 싸우는 책임자였다.
로마군에서 명예를 따진다면 훈장 몇개를 탔느냐보다 백인대장을 몇번 맡았느냐가 더 영예로웠던것이 바로 백인대장이었다.
최고사령관의 武將으로서의 능력은 이들 백인대장을 활용하는 능력에 비레할 만큼 백인대장은 로마군단의 핵심이었다. 율리우스 카에사르를 정점으로하는 名將들은 모두가 백인대장을 심복처럼 부릴 줄 아는 사나이들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이만......다음은 끝으로 로마군단의 武裝을 알아보고 한니발전쟁 이야기를 재개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