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다이제스트19-
남의 나라나 내 나라 역사를 읽는 재미는 그 속에 든 알맹이를 까 먹는 맛에 있는 것이지 이랬냐 저랬냐 식의 교과서적 결과나 아는 것이라면 굳이 긴 이야기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할 만치 전쟁은 지구상에서 그치지 않았고 결국 한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전쟁 이야기 빼고는 알맹이 없는 역사이야기가 될것이다. 이후는 로마이야기 역사의 디테일한 과정을 전쟁사를 통해 읽어보기로 한다.
*제1차 포에니(Poeni)戰爭 (BC.264-BC.241)
BC.265년 로마 元老院은 전례없는 난제에 봉착해서 고민했다.
구원을 애걸해온 메시나의 대표에 조속한 회답을 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시칠리아島 제1의 강국 시라쿠사의 침공에 직면한 메시나는 이 위기를 카르타고에 의지하느냐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느냐 중대기로에서 로마를 택했던 것이다.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半島 발까락 끄트머리에 당장이라도 닿을 것같이 가까운 시칠리아島의 東北端 메시나에 지원군 파견을 두고 로마 원로원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北은 루비콘江으로부터 南의 메시나海峽까지 반도를 통일한지 불과 6년 만의 일이다.
법과 국제규약을 존중하는 로마로서는 동맹관계의 우방이 아닌 메시나를 도울 명분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한번도 海戰 경험이 없는 로마軍이 바다를 건너 싸운다는 것은 난제중 난제였다
그렇다고 방치해서 바닷길로 겨우 3킬로 밖에 격하지 않은 메시나가 海洋大國 카르타고 측에 넘어가는 것은 로마로서는 일대 재앙이 아닐 수없었다. 로마가 메시나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면 카르타고에 손을 뻗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 기구로서의 로마 원로원은 다른 사안과는 달리 의결를 유보하고 로마 최고의결 기구인 市民集會에 회부하여 마침내 參政權과 參戰義務가 동시에 주어져 있는 시미권 소유자들에 의해 지원요청이 의결 수락되었다. 陸地戰 경험밖에 없는 로마人들에 의해 어려운 결단이 내려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면적 3만 5천평방Km의 시칠리아도를 둘러싸고 당시 地中海 패권국 카르타고와의 백 년 전쟁이 촉발되어 제1차 포에니전쟁(Poeni,로마에 의한 페니키아系 카르타고의 호칭)의 막이 오르게 된다.
마침내 로마군은 카르타고. 시라쿠사 兩軍을 첫 격돌서 격파하고 카르타고와의 정면대결로 치닫게 된다.
陸戰 밖에 모르던 로마는 로마聯合 내의 동맹국들인 항구도시 나폴리와 타란토의 지원으로 군선을 마련, 횃불이 보일만큼 가까운 시칠리아도의 메시나에 로마군단 상륙계획을 완료했다. BC.264년 제1차 포에니전쟁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최초의 로마街道 부설의 공로자 아피우스 크라우디우스家門 출신의 執政官 크라우디우스가 일솔하는 로마軍團이 3월 15일 로마를 출발하여 급행군으로 시칠리아島 코앞 레지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우방 도시들이 제공한 선단이 항내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메시나의 움직임을 감시하려는 카르타고의 巡視船團도 외항에 바라다 보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대담성을 타고난 가문출신의 크라우디우스는 아랑곳 없이 부관 한 명에게 소수의 병사만을 인솔하고 야음을 이용해 渡海하라고 명령했다.
소대가 對岸에 도착하자 횃불 신호를 보고 크라우디우스는 급류에 의한 이탈선 방지를 위해 당당히 대낮에 전군의 일거 도해를 결행했다. 한 덩어리가 되어 급류를 헤쳐 바다를 건넌 군선 중 한척의 유실도 없이 메시나에 도착한 것이다.
카르타고함대도 이를 방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당도한 크라우디우스 집정관은 시간 허비 없이 곧바로 마중나온 메시나 대표와 양국의 同盟協定을 맺었다. 이로써 메시나지원 명분의 군사개입을 합법화한 것이다.
1만 7천의 로마군단에 위협을 느낀 것은 비록 메시나에 진격 중인 시라쿠사만이 아니라 시칠리아 주둔 카르타고軍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간 적대관계에 있던 그리스民族의 시라쿠사와 페니키아系의 카르타고가 비로서 동맹관계를 맺게된다. 시라쿠사군은 남쪽에서, 카르타고군은 서쪽으로부터 로마군을 향해 메시나로 압박해 들어왔다.
그러나 크라우디우스는 포위되는 것을 방관할 인물이 아니었다.
먼저 시라쿠사의 僭主 히에론에게 강화를 제의했다. 히에론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군사행동에 고 사인이 나오고 휘하의 로마군은 숫적으로 우세한 시라쿠사군을 습격했다.
傭兵 위주의 시라쿠사군은 로마國民軍의 적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격파되고 참주 히에론은 남쪽으로 도망쳤다.
이를 내버려둔채 크라우디우스는 대신 칼을 서쪽의 카르타고軍에 돌렸다.
카르타고군에 대한 宣戰의 명분은 동맹국 메시나침공이었다.
카르타고군은 시칠리아에 있는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보내진 수비대에 불과했다.
카르타고군도 단번에 격파되고 말았다.
로마군단은 첫 해외원정에서 큰 희생 없이 이렇게 緖戰을 장식했다.
그러나 참전이 어렵게 결정되어 쉽게 끝난 시칠리아원정이 발단이 되어 제1차 포에니戰爭만도 23년간을 끌고 카르타고와의 정면대결로 이어지리라고는 로마人 아무도 예상 못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