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18-
통일의 과정은 결코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역사의 교훈을 읽은 로마人의
조직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어느날 이루어진 것뿐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로마史는 중국 司馬遷의 <史記>와 더불어 歷史敎訓의 寶庫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천 쪽에 달하는 로마사를 다이제스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BC.367년에 성립한 리키니우스法으로 백년 간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해소되었다.
원로원을 비롯해서 국가 요직 모두를 평민출신에게도 개방함으로써 귀족과 평민이라는
계급의 차이는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었다.
능력과 實績만 있으면 원로원 의원도 된다는 것은 달리보면 평민을 엘리트계급에 받아드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로마에서는 귀족과 평민 간의 결혼도 합법화 되었다.
결국 귀족과 평민을 갈라 놓은 벽은 점점 낮아지게 된것이다.
국민통합을 이룬 리키니우스法이 가져 온 최대의 史實은 법 제정으로부터 약 백년
뒤 BC.270년 로마에 의한 이탈리아半島의 天下統一일 것이다.

불과 한 세기 전 켈트족에 의한 멸망 직전 기사회생한 민족이 이탈리아의 覇者가 된
것도 계급대립의 해소가 단지 국가 분렬위기를 방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로마를 강국으로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로마人들은 선진도시국가 아테네가 왜 멸망했는지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
희대의 명정치가 페리크레스가 이끈 아테네는 그의 민주통치 30년 동안 古代그리스 문화의 꽃을 피운 시기였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리스 문화의 유산들은 모두 페리크레스를 종착으로 하는 앞 불과 2세기에 걸쳐 이룩된 遺産들인 것이다.
지도자가 대중에 영합하면 民主政治는 衆愚政治로 타락하고 민주정 지도자가 世論을
무시하면 당장 실각을 한다. 그만큼 민주정치의 조타수역이 어려운 것이지만 페리크레스는 천재적 능력이 있어 아테네를 그리스의 패권국으로 성장시켰으나 그가 세상을 뜨자 급격히 쇠퇴하여 마침내 숙적 스파르타에 패권을 빼앗기고 두번 다시 재기하지 못했다.
이것이 로마가 에테네에 배운 歷史의 敎訓이었다.
아무튼 당시 地中海 세계에서 그리스는 선진 문화권이며 최정상에 아테네가 자리했다.
그 아테네가 民主政의 暴走를 허용함으로써 凋落했다는 사실은 로마 지도자들의 공통인식이었던 것이다.
천하의 민주정이라 해도 유능한 지도자를 얻지못하면 민주정치는 단번에 百家爭鳴의
衆愚政治로 퇴락해버린다. 상시 대기하는 人材풀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로마는 원로원이라는 조직적 인재집단이 상시 가동되고 있었으므로 위기에 지도자가
나왔고 그러기 위해 원로원을 개방하여 寡頭政을 강화 발전시키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전술한 바, 리키니우스法 제정으로부터 한 세기 뒤 로마는 이탈리아半島를 통일했다.
그러나 통일의 진도는 결코 선명하지도 않았고 속도도 나지 않았다.
어느 희대의 영웅 하나가 나와서 통일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대신에 로마에는 원로원을 중심으로한 강력한 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력이 힘을 발휘할 때 로마에 대적할 국가는 반도에 없어던 것이다.
로마의 軍團을 통솔하는 역할은 執政官이 맡지만 그 집정관은 1년 임기이다.
그렇다고 전쟁이 반드시 1년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집정관 임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약점일 수있지만 한편 강점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1년마다 新任이 등장하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군단 지휘관의
층이 두텁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전장에서 집정관이 쓰러지면 로마 원로원은 즉각
후임 지휘관을 경험자들 가운데 선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방대한 <로마사>를 쓴 역사가 티토우스 리비우스는 그의 저서에서 만약 로마軍과 알렉산더大王의 군대가 싸운다면이라는 시뮬레이션을 시도하고 "조직력이 뛰어난 로마군이 최종 슬리했을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역사의 if, 가정이지 이것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수야 없지만....
그러나 그 이유로서 리비우스가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戰士는 각각의 運에 따라 살거나 죽거나 한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전사 한 사람의 죽음이 국가의 손실로 당장 이어지는 일은 없다"
이 리비우스의 말을 군단 지휘관의 경우에 적용해도 같은 답이 나온다는 데서 組織의 로마에 강점이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로마에는 전쟁에서 패했다고 해서 지휘관을 罰한 예는 역사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로마의 최고위층들은 모두가 보수 없이 봉사하는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패전 지휘관에
징벌까지 내린다는 것은 생가할 수도 없는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敗戰의 恥辱을 씹고 명예를 실추한 마당에 처벌까지 받는다면.... 그런 가혹한 일은
로마에는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