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16-
내가 이 글을 처음 쓸 때 盧武鉉桎梏에서 벗어나 정신적 위안이라도 얻고자
로마사를 천착하게 되었다고 <나의 卓上革命 프롤로그>에서 비친 바있습니다.
뜨겁고 가렵고 간지러운 이야기에 많은 귀가 쏠리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별 재미
없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은 벌써 그 열여섯 번째 글로 위기의 로마이야기를 올려봅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로마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마가 인근 부족들을 꾸준히 정복하면서 同化政策으로 승승장구만을 한것은 아니다.
공화정으로 이행한 지 불과 1세기, 貴族과 平民간의 갈등이 일던 BC.390년 북방 켈트족의 내습을 받고 멸망 직전에 재기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1년 임기의 집정관으로는 통치불능이라 보고 공화정 내내 원로원에 의해 全權이 부여되는 獨裁官이 등장하여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여 왔다.
당시 로마는 전력을 다해 숙적 에토루리아의 유력한 도시 웨이를 공략했다.
독재관 카미루스 휘하에 10년에 걸친 싸움 끝에 간신히 웨이를 함락한 것은 BC.396년
이었다.
웨이 함락은 로마에 일대 경사이면서 동시에 위기의 시작임을 독재관 카미루스는 간파하고 귀족과 평민들의 단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평민들은 귀족들의 온상으로 여겨온
로마를 떠나 웨이로 이주하여 자기들의 새 세계를 펴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앞장서 반대한 독재관 카미루스는 웨이 공략에서 얻은 戰利金의 용도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평민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自進亡命을 택한다. 당시 로마에는 자주망명자에게는 죄를 묻지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리되자 평민들은 속속 신천지 웨이로 이주하는 주민대이동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북방 켈트족의 내습을 자초하는 화근이 된것이다.
자칭 서민출신이라는 노무현은 대통령이 돼서 국가의 정통성을 새로 찾는다는 구실로 서울을 버리고 어딘가 새 수도로 옮긴다고 법석 떨다 코가 깨진 바있다. 도읍을 함부로 옮기는 것이 아닌데.....
로마의 諸神을 버린 로마人들은 건국 이래 최악의 患亂을 맞게된 것이다.
유럽 내륙부의 삼림지대를 주거지로 한 켈트族 즉 갈리아人들은 다수가 BC.6세기 경부터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 북쪽에 내려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존재는 이전까지 로마로서는 거의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켈트족이 용맹 과감한 민족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다고 켈트족이 이탈리아半島의 북부 일대를 제패하고 있는 대국 에토루리아의 방위망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로마가 제 스스로 에토루리아라는 방파제를 부숴 생긴 틈새를 뚫고 밀어닥친 것이다. 한 시대 부와 기술과 국력에 있어 로마가 대적할 수없었던 에토루리아도 로마의 발전에 반비례해서 쇠퇴일로에 있었고 웨이는 이때 얻어진 로마의 수확물이었다.
국론 분렬로 인한 힘의 공백은 침략을 초래한다는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가 이때 로마인의 각성을 촉구했으나 그들은 이를 외면하고 로마로부터 웨이에의 주민대이동은 강행된 것이다.
BC.390년 여름 켈트族은 대거 남하를 시작, 에토루리아를 공략하고 마침내 로마 국경까지 접근했다.
켈트족 출현 경보에 로마인들은 페닉현상에 빠지고, 평민들의 웨이 이주로 병력이 반감된 로마군은 役戰의 용장 카미루스마저 잃은 상황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지도자 잃은 로마군은 여지없이 켈트족에 분쇠되고 로마는 蠻族 켈트人의 손에 떨어졌다. 로무루스의 건국 이래 363년의 일이었다.
이 켈트 쇼크에 의해 로마인이 맛본 굴욕은 필설로 다할 수없었다.
야만족에 에웨싸여 갈 곳을 잃은 로마市民은 시내서 가장 높은 카피토리노 언덕에서 농성.하기로 했으나 시민 모두가 함께하기에는 정상이 너무 좁았다.
결국 저항력 강한 젊은 장정들과 그 처자들만이 정상에 오르고 원로원 의원일지라도 고령자들은 그대로 시내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정상의 농성장에 끼지못한 사람들의 운명은 말할 여지 없이되고 포악하기 그지없는 켈트족이 동포를 죽이고 정든 집을 불태우는 꼴을 농성자들은 카피토리노 정상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로마史는 기술하고 있다.
7개월에 걸친 농성 끝에 로마인은 켈트족에 화평을 제의, 도시 점령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켈트족은 로마인으로부터 금괴 3백킬로를 받아들고 로마를 떠났다.
로마가 멸망을 모면하고 未曾有의 환란 뒤에 남은 것은 간신이 목숨 부지한 소수 로마人과 잿더미로 변한 시가뿐이었다.
3세기에 걸쳐 성장을 계속해온 로마는 다시 제로에서 출발하게 된다.
이 뼈아픈 패배를 계기로 이제까지 同盟者였던 주변 제부족까지 로마를 노리게 됨으로 제로에서가 아니라 한참 마이너스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었다.
한 번 낭떨어지에 떨어져 거기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에 살아져간 민족이 적지 않다.
그러나 로마는 그 구렁텅이에서 20년의 세월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다.
BC.370년 전후해서 로마시가는 원상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복구되고 또 로마군은 방위체제를 바로 세워 안보를 확립했으며 국경도 일단 안전을 유지하게된다.
로마의 저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대장정에 들어간다.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하는데 명석한 머리를 가진 로마인들의 야심찬 개혁 이야기는 다음으로,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