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14-
연재 13까지는 로마史 접근에 필요한 수 천쪽에 달하는 역사이야기의 서문으로 이해하시면 되고, 14부터는 당초 말씀들인대로 케이스 스터디 事例別 이야기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서문들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장황한 느낌이 없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후 글을 되도록 좀 짧게 씁니다.
이야기를 건국 당시로 돌리면 37년의 초대 로무루스王 治世가 끝난 후에도 <敗者도 同化시킨다>는 로마의 뜻은 계속 발전해 왔다.
자잘한 史實들은 제하더라도 3대王 토우리우스 오스티리우스는 라틴人의 發祥地이며 로마人에게는 祖上의 땅이기도한 알바롱가의 정복에 성공한다.
이로써 로마는 이른바 <라틴人의 宗家>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정북된 알바롱가 주민은 로마에 이주시켜 그들에게 市民權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元老院 자리까지 제공했다.
다른 부족 같으면 彼征服者들은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을 것이지만 로마인은 그러지 않았다. 알바롱가王만은 처형했으나 주민은 동료로 맞아들인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시 알바롱가에서 이주해 와서 원로원 의석이 주어진 유력 가문의 하나로 유리우스家가 있었다. 그 가문의 후대 자손 하나가 유리우스 카에사르, 이 카에사르도 동화된 패자 출신에서 나온 로마 영웅이었다.
그렇게해서 초대 로무루스로부터 6대째의 세르비우스 토우리우스까지 로마는 이웃 부족과의 전쟁을 통해 세력권을 확대해 가지만 그 과정이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王政시대의 로마는 전쟁역사의 연속이었다. 갖 탄생한 로마가 살아남는데 싸움은 필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전쟁의 연속이었지만 로마가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한 것은 나름 독특한 정치체제에 있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형식상은 왕정이었으나 그 왕은 市民集會에 의해 선출된다.
로마시민의 생각으로는 로마는 王國이 아니라 우리들 나라였다.
그러므로 그들 로만인들은 전쟁의 연속에도 인내했고 戰意도 삭지 않았던 것이다.
공화정으로 들어와 로마군은 6천에서 8천명 단위의 군단을 운영하게 된다.그 군단은 로마시대 어느 나라 군대도 모방하지 못한 독특한 百人隊를 뼈대로 한다.
왕정시대는 王이, 공화정 시대는 執政官이 그리고 제정시대는 예외 없이 皇帝가 진두 지휘했다. 군단장은 총사령관이 임명하고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은 시민투표로 선발했으며 최소 단위의 백인대장은 상호 理解가 깊은 소속 병사들에 의해 선출된다.
모든 지휘관급들이 전장에서 병사들과 침식을 같이 했고 상하 계급의 차이없이 함께 먹고 자면서 호흡을 같이 하는 전우애가 깊은 로마군은 상관의 지휘 명령에 일사불란했다.
重裝步兵과 輕裝步兵의 시스템 중심으로 싸우는 로마군에 대적할 군대는 없었다.
패전도하고 적의 기습에 軍列이 무너지기도 하나 집요한 롤백작전으로 승리는 항상 로마군의 것이었다.
초기에는 지리적 조건으로 다량의 말 사육이 어려워 전통적으로 보병 중심의 군사를 운영한 로마군은 兵站에서 이긴다는 속설까지 나올만큼 철저한 보급은 로마군의 생명선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이란 자기들 共同體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더 큰 내일의 번영을 얻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전쟁이었던 것이이다.
軍隊라는 것은 결국 그 나라 국민의 마음가짐(忠誠心이라해도 좋다)을 반영한 것말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도 그 수준 이상의 군대는 가질수 없다. 이것이 東西古今의 현실임을 어쩌랴.
오늘날 최악의 好戰集團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시민으로서의 自覺心이 강한 병사들이 조직적으로 싸우는 로마軍 앞에 그들보다 자각심이 약한 타 부족들이 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할 것이다.
끝으로 로마軍에는 천 년 역사를 통해 傭兵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둔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