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12-
로마共和政은 브루투스에 의해 씨가 뿌려지고 푸블리카에 의해 뿌리가 내렸다.
이 두 사람 뒤의 로마人 중 王政으로 돌아가자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BC.6세기 말에서 BC.5세기 前半에 걸친 공화정 초기, 로마 세력이 미치는 범위는 테베레江 주변에서 河口까지의 좁은 지역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지금 우리의 京仁地域만이나 할까.
로므루스의 건국으로부터 3백 년이 지난 후의 로마의 세력권이 고작 그 정도였었던 것이다.
이탈리아半島 중앙 이북은 에토루리아가 강국이었고 남부는 그리스계 식민도시 타란토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가 로마勢 몇 배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王政에서 共和政으로 이행하며 생긴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숨돌릴 겨를 없이 주변 민족들과의 自衛戰도 일단락된 BC.5세기 중반에 로마는 비로서 成文法을 만들게 된다.
3명의 원로원 의원이 1년간 그리스를 시찰하고 와서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한 <十二
表法>이 로마 성문법의 효시가 된다. 여기서 로마의 일반 민중들도 법을 읽고 알게 되므로 비로서 法治의 성립을 보게된 것이다. 이 <십이표법>은 뒤에 공화정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함께 설명히기로 한다.
*로마와 불가분의 古代그리스는?
로마史를 이해하는데 있어 당시 선진국 그리스가 어떤 국가였는지 동시대 도시국가
(Polis)들을 比較史的 측면에서 조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국가를 한마디로 요약해 표현한다면 이 연재 처음에서 밝혔듯이 哲學에서 모든 것을 찾으려는 철학의 나라였다고 보면 아마 답이 될것이다.
그리스文明은 BC.2천년 전후에 당시 그리스 本土가 아닌 크레타島에서 시자되었다.
크레타 섬이 본토보다도 당시 앞선 문명이던 이집트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
가 많다.
古代史家 터키디데스에 의하면 미노스王의 해군이 크레타 섬 주변 해역의 해적떼를
소탕하고 그때 벌써 석조건물이 등장하는 등 富가 축적되었다고 한다.
크레타 섬의 전성기는 BC.17세기서 BC.15세기로 알려져 있다.
에게海의 주인공 크레타文明도 그리스의 내습과 대지진으로 급속히 쇠퇴하고 문명권이 그리스 본토 남단 페로포네소스半島의 미케네로 옮겨지면서 미케네文明이 그리스文明을 선도했던 것이다.
당초 그리스는 武人들 지배의 나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 무인은 호머의 敍事詩 <이리아드>와 <오디세이>에 의해 후세의 우리도 친숙한
바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 스파르타 왕 메네라오스Meneraos, 테사리아 왕 아킬레스Achilles, 이타카 왕 오디세우스Odysseus 등이 그들이다. 아카이아人으로 총칭되는 이들이 BC.1250년 전후 일어나서 십년의 攻城戰 끝에 정복한 트로이遠征의 주인공들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트로이로 유혹해 데려간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트로이戰爭이라고 호머가 노래한 그리스 역사 이야기다.
어떻든 트로이 함락으로 개가를 올린 미케네文明도 불과 반 세기 전후해 BC.1200년 경에 빨리도 멸망했다.
호머의 서사시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로 실증된 미케네文明이 멸망하고 북부 그리스의 야만족 도리아人Doria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된 그리스 全土는 BC.12세기서 8세기까지 4백년간 <그리스의 中世>라 불리는 암흑기를 거친다.
그리스人의 해외 식민활동이 이때 시작되었다.
폴리스Polis로 통칭하는 도시국가 시대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도리아人에 의해 건설된 스파르타와 도리아 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도망간 아카이아人에 의해 건국된 아테네가 폴리스의 대표국이 된다. 그리고 폴리스의 탄생과 더불어 이 시기의 그리스의 재활을 특징짓는 다른 현상 하나가 바로 그리스인의 해외 식민활동이었다.
그리스人에 의한 식민활동은 그로부터 약 반세기를 거쳐 BC.8세기 중반을 전후해서 2차 이민이 시작되면서 활발해진다.
2차 진출시 도리아系, 이오니아계, 아카이아系의 그리스人이 진출한 나라는 이탈리아를 비롯해서 소아시아, 키프로스 섬, 로도스 섬, 그리고 黑海와 아드리아海 연안 일대와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와 유럽에까지 광범위에 걸친다.
2천 6백 평방킬로의 작은 면적을 가진 아테네를 수도로 하는 아티카地方의 경작지를
제외하면 거의가 바위 투성이의 그리스가 살아가는 길은 바다를 이용한 통상과 해외진출이 고대 그리스人들 생존의 선택이었다.
이탈리아半島 남단의 타란토와 중앙의 나폴리,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사르데니아 섬과 코르시카 섬 등이 그리스인 식민지로 건설되어 일찌기 그리스文化가 꼬핀 도시들이
다.
BC.8세기 당시의 그리스인은 아직 商工業民族이 아니었고 이 시기 아테네, 스파르타,코린토, 테베 등 도시국가도 형성단계에 있었다. 폴리스라는 소국 형태로 分立한 상태에서 좁은 토지를 둘러싼 폴리스들 간의 싸움도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BC.776년에는 제1회 올림픽경기가 개최되었다.
4년에 한번씩 전투를 중지하고 올림피아에 모여 체육대회를 즐긴다는 것은 그 밖의 시기에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 본토의 그리스인으로 이민이 가장 많았던 곳은 가까운 남부 아탈리아반도였으나 海外雄飛의 기상이 강한 그리스人들은 마르세이유를 중심한 남불과 스페인 동해안 일대까지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스人들이 건설한 각곳의 식민도시들은 로마人과는 달리 母國 그리스 전통을 거의 전승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리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이탈리아 중부의 나폴리와 쿠마도 그리스인 식민도시로 건설된 가장 오랜 도시며 시칠리아 섬 동부의 시라쿠사는 오늘날에도 古代遺跡과 매년 개최되는 古典劇 상연으로 알려진 도시로 哲學者 플라톤이 가끔 방문했고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를 낳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식민 형태로 해외로 跳躍한 그리스人들은 모국에서 그리스語와 그리스宗敎 그리고 진취적 기상을 가지고 나와 모국에의 의존심 없이 식민도시에 새로운 전통을 세워 나갔다.
로마인들의 식민도시가 정치 사회 문화 각분야가 母國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과 대조되는 그리스인의 이민 형태이다.
그리스에 있어 BC.8세기는 해외웅비의 시대임과 동시에 국내에서도 활력이 솟는 폴리스의 형성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리고 그리스인이 발명한 國體인 폴리스Polis를 대표하는 것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오늘은 이만.....
그리스 이야기는 한 번 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