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4-
政 敎의 분리와 家父長制는 로마 2천 년 역사의 原流로 흘러왔다.
초대 로무루스왕은 로마의 국가체제를 갖추고 주변부족들을 차례로 정벌하면서 국력을 신장시키고 BC.715년에 39년의 통치를 마감했다.
로마 특유의 敗者同化政策으로 국가 통합을 이룬 사비니族이 로마에 동화되었다는 것은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다.
제2대왕으로 등극한 사비니족의 知性人 누마왕은 민생문제에 주력,사회 안정화정책에 역점을 둔다.
먼저 로마시민의 일일 생활 질서를 다지기 위해 曆(달력)의 개혁을 단행했다.
로무루스 시대의 로마에서는 1년의 日 수가 매년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그것을 누마왕은 달이 차고 빠지는데 따라 1년을 12 달로 정하고 한 해 일 수를 355일로 정했다. 나머지 일 수는 20년마다 정산하게된다.
누마왕이 개정한 이른바 누마曆은 1년을 365일로 하게되는 카에사르의 유리우스曆에 의해 개정될 때까지 650년 간 로마인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누마왕은 연간 축제일과 휴일도 정비했다.
매월 9일째와 15일째 날은 장이 서고 밭일에서 해방되며 각자가 수확물을 가지고 모여 成市를 이룬다. 그밖에 神들을 모시는 祭典日이 추가된다.
일년에 공휴일이 모두 45일이 되고 이날은 물론 모든 公務도 쉰다.
무엇보다 누마왕의 특기할만한 업적은 종교에 관한 개혁일 것이다.
누마 통치 이전에도 로마인은 이미 많은 神들을 모셨다.
그것을 정비하는 것이다.
뒤에는 그리스神들과 혼동되더라도 神 중의 神 주피테르神(그리스의 제우스, 영어로는 주피터),그의 처 유노女神(그리스의 헬라),
美와 愛情을 관장하는 여신 비누스(그리스의 아폴로디테, 영어의 비너스),
사냥의 여신 디아나(그리스의 알테미스, 영어의 다이애나)
그리고 學藝의 신 아폴로도, 女神 아테네와 軍神 마르스도, 로마에서도 그리스에서와 같이 중요한 신들이었다.
이밖에도 야누스神을 비롯해서 라틴민족 전래의 신들도 있다.
先王 로무루스도 사후 신격화되어 신이 되어 있었다.
누마가 행한 정비는 이들 신들에 身分制를 부여한 것이다.그렇다고 이것이 로마의 신이다고 하나를 딱 집어 정하지 않았다. 이로써 신들을 공경하는 중요성을 시민에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스 로마에 대표되는 多神敎와 유다나 그리스도교를 전형으로 하는 일신교와의 차이는 다음 한 가지 지적으로 구분된다고 보아 틀림 없을 것이다.
다신교에서는 인간이 행하는 倫理道德을 바로 잡는 것을 신의 역할로 보지 않는 한편 일신교에서는 그것이야말로 神의 專賣特許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듯이 다신교의 신들은 인간 못지 않은 결점을 갖는다. 도덕윤리를 바로 잡는 역할이 없으므로 그도 그럴 것이다. 그 반면 일신교의 신이 되면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치하면 겉잡을 수 없는 인간을 바로 잡는 일이 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10계명 중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죽이지 마라', '간음하지 말아','남의 것을 훔치지 말아', '남에게 거짓말 하지 말아', '남의 집에 침입하지 말아' 등 여섯개 항은 일신교나 다신교가 함께 지켜야하는 계율이면서 로마인들은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미 지켜가는 사회윤리였다.
수 많은 신을 모신 로마의 神官이나 祭司들은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의 대리인이 아니다. 최고신관이나 제사들도 시민집회서 선출한다. 때문에 일신교의 교역자들처럼 신앙에 관한 절대권이 없으며 다만 일반 관리와 다름 없는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계급이나 직책에 대한 질투 같은 것도 없고 소속 계급을 보존하기 위해 과도한 종교 존중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종교관이 이런 로마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나 유착 같은 모순은 일어나지 않았고 실로 정치 종교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이것이 고대국가에서 있음직한 정치 종교 갈등을 방지하는데 기여한 누마왕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기원 전 후를 살아온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닛소스는 <고대로마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든 주요인은 종교에 대한 로마인들의 思考였다".
로마에서 종교는 인간성까지 소박하는 指導原理가 아니라 다만 嚮導役이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의 종교관은 특정 광신적 종교가 성한 나라에 대한 교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윤리를 규범하는데 무엇에 기초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이 달라진다.
宗敎에 기초한 유다人, 哲學에서 구한 그리스人, 法律에 기초한 로마人이 유럽의 고대사를 장식해 왔다. 우리는 오늘 그들의 과거에서 교훈을 잦고자하는 것이다.
43년 治世의 누마왕은 최대의 업적으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가정의 기본윤리를 확립했다. 家父長制의 도입이 그것이다.
BC.753년 건국해서 1453년 술탄의 콘스탄티노블 공격으로 東로마가 멸망하기까지를 친다면 2200년간 로마라는 국명으로 유럽의 고 근대사를 장식 할 수있었던 힘의 원천은 賢人 누마王이 만들고 유지해온 家父長制에 기초한다고 보아 마땅하다.
사가들 특히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공동체 유지의 근간인 가정의 확립 없이 건전한 사회가 가동되지 않는다.
그러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누마왕은 가부장제를 도입하여 가장에게 가족원에 대한 절대권을 부여했다. 심지어 悖倫兒는 가장이 직접 처형하도록까지 허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 전에 과잉 人權法이랄 수있는 전래의 戶主制까지 폐지한 민법을 가지게 되었지만, 옛날 로마의 가부장제도는 老父母를 버리고 갓난 자식을 버리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보아 망발일까? 추석이 곧.....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