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찾기-2-
앞서 글에서 史家 폴리비우스가 본 대로 주변 어는 민족보다도 劣勢였던 로마인이 천년 대제국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건국신화에서부터 살펴본다.
로마인은 옛날부터 BC.753년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로무루스이며 그 로무루스는 트로이에서 도망나온 아에네어스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에 의한 트로이의 함낙이 BC.13세기경의 일이므로 4백년의 갭이 생기지만 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것같다.
원래 전설의 세계에서는 합리적이기보다 좀 황당무계한 편이 오히려 묘미가 있는 것이므로.....
전설은 한 명의 王女를 등장시킨다.
알바롱가왕가의 공주였던 전설 속의 여인은 알바왕이 죽자 왕위를 노린 숙부에 의해 처녀인채 神의 시중을 드는 巫女로 만들어진다.
왕녀가 아이를 낳아서는 왕위를 찬탈한 숙부의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주무녀가 神祭를 올리던 중 피곤해서 냇가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이때 軍神 마르스가 한눈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잠든 왕녀와 합궁을 한다. 왕녀가 눈 뜰사이도 없이 일은 끝나고 군신 마르스는 승천한다.
이런 것을 가리켜 神技라고 한다면 왕녀는 이미 임신한 몸이 된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났다.
로무루스와 레무스란 이름이 지어지고 이 사실을 알게된 숙부는 노하여 왕녀를 옥에 가두고 쌍둥이는 바구니에 담아 테벨레江에 띄워 버려진다.
떠내려가던 바구니가 강 기슭에 닿았고 거기서 애기 우름소리를 들은 늑대가 다가와 쌍둥이를 구해 우리로 물고가서 젖을 빠린다.
동서고금 전설적 신화는 그냥 신화로서 받아드리면 되는 것이지 이치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런다면 신화가 아니므로....
사람이 늑대에게 양육될 수는 없어 얼마 후에 양치기에 발견되어 구제받아 양치기의 양자로 성장한다.
로무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성장하면서 그 고장 양치기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력권을 넓혀 나가게 된다.
쌍둥이 형제가 성장하고 주변 영향력이 커지면서 많은 이야기도 듣고 정보도 얻게되는 과정서 자연히 자신들의 출생 비밀도 알게 된다.
형제는 마침내 휘하의 양치기들을 이끌고 왕위를 찬탈한 숙부를 복수하기 위해 알바왕국을 공격하여 숙부를 죽이고 생모를 찾았으나 이미 옥사한 뒤였다.
형제는 출생지 알바를 처들어갔지만 좁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테벨레江 하류로 내려와 마침내 로무루스의 이름을 딴 로마라는 이름의 도시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이것이 천하통일을 하고 천 여년을 누리게되는 로마가 역사에 등장하는 첫 거름이다.
건국신화는 이야기는 여기서 맺고 로마 현실을 살핀다.
<이탈리아반도는 북의 에톨루리아족과 일찍이 植民해온 남의 그리스계人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때문에 남 북의 이점을 고루 향유할 수있다.
더구나 이런 이점은 서로 노력함으로서 증대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탈이아반도에서도 중앙에 위치하는 로마의 지리적 유리함은 말할 나위 없다.
신기에 가깝게도 인간의 지혜가 이처럼 유리한 지세와 온난한 기후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이 땅에 로마인의 도읍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위는 로무루스의 건국으로부터 8백년 후가 되는 제정로마의 건축가 비토울비우스가 한 말이다.
극동 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불리하다고만 생가하는 한반도의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 아닌가 생각한다.
비토울비우스의 말대로라면 테벨레江 가의 기껏 해발 50미터도 안되는 일곱개의 구릉에 도시를 기능적으로 배치해서 세운 로무루스야말로 요새말로 처서 도시계획의 귀재였지 안나 싶다.
어쨌거나 당시 후발국인 로마는 주변 국들과의 갈등을 자주 빚게 된다.
인구 겨우 3천명, 그것도 양치기 총각 독신자들을 이끌고 세운 신생국 로마가 살아남고 나아가 번영을 할려면 인구 증대가 급선무였다.
거기서 나온 것이 이웃 처녀 겁탈 작전이었다.
국왕은 주민 선거로 뽑고 백명의 元老院을 두고 모든 정책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그 때 벌써 소위 立憲君主制를 입안한 로무루스는 어느날 축제를 열고 가까이 사는 사비니族을 초대했다.
神께 바치는 축제일에는 전투가 금지되어 있고, 사비니族도 一家 총출동하여 초대에 응해 왔다.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로무루스의 명령 일하에 로마 청년들은 사비니의 젊은 여자들을 덮쳤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사비니족 남자들은 부모처자를 보호하여 자기네 마을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비니족도 그냥 철수할 수만은 없었던 것.
강탈 당한 처녀들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총각 로무루스는 정식으로 결혼해서 아내로 삼겠다고 응수했을 뿐만 아니라 솔선해서 결혼식까지 올렸다.
마침내 사비니族은 로마에 선전포고를 한다.
로마대 사비니族간의 전투는 네 번이나 치뤄지지만 결국 로마 청년들의 사실상 처가 된 사비니族 여자들의 중재로 싸움은 멎고 처녀 약탈 결혼은 기정사실이 된다.
사돈관계가 된 로마인과 사비니족은 이후 하나가 되어 로마의 국운을 이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용감한 트로이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로마인들의 약탈 결혼 사건은 훗날 르네상스기의 풋산이나 루벤스 등 명화가들에 의해 좋은 畵題가 되고 <사비니족 女人들의 강탈>이라는 名畵의 소재가 되어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