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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70-
*라인강防壁서 브리타니아의 하드리아누스城壁까지
Location of Hadrian's Wall
Sections of Hadrian's Wall remain along the route, though much has been dismantled over the years to use the stones for various nearby construction projects.
서기122~?년 잉글랜드에 축조한 하드리아누스城壁. 천 9백년 동안 성석 대부분이 인근 개발계획에 재활용되면서 채석장으로 변해 훼손된채 현재로 남았다.
국가 안전보장, 속주통치, 인프라정비의 3대과제를 안고 장도에 오른 하드리아누스황제의 첫 순방지는 帝國의 西方이었다.
東方은 파르티아원정 전후처리 과정서 현지 답사를 마쳤기 때분이다.
수도 로마애서 아울레리아街道를 북상하여 南佛의 로누江을 거슬러 올라가 리용에 도착했다. 리용은 이탈리아반도에서부터 이베리아반도까지 제국의 서방을 한 눈에 조망할수있는 갈리아지역의 중심지로 로마인이 하나부터 건설한 로마起源 도시다.
거기에는 황제가 발행권리를 가진 金 銀貨의 鑄造所가 있고 라인江 바위 목적의 1개군단이 동쪽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고 있는 방위요충이기도 하다.
라인군단장 4인을 비롯해 각 주둔기지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라인강 방위선 전지역 시찰을 마친 황제는 마인츠에서 게르만전선회의를 갖고 시찰 중 발견된 문제들을 시정 조치했다.
리메스 게르마니쿠스 Limes Germanicus시찰을 마친 황제순행단은 다시 마인츠로 돌아와 이번에는 라인강 하류를 따라 저지게르마니아방위선을 시찰했다. 이때가 121년 가을이다.
시찰은 황제 자신이 제2차다키아정벌에서 지휘한 바있는 제1미네루바군단의 주둔지 본을 비롯, 노이스, 쿠산텐, 네이메헨을 경유하여 라인강 하구 일대를 살폈다.
전투력 보강훈련은 각 군단 시찰때 실시되는 필수과제였다.
군 조직도 보강하고 특히 군단의 등뼈 역할의 百人隊長의 선임조건을 강화했다.
말단 병사들의 사기진작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군단병 모병기준을 정하는 등 군단 운영의 세부사항까지 쇄신하면서 방위력을 보강한 황제는 라인강 하구에서 배로 북해를 건너 122년 봄 처음으로 브리타니아 땅을 밟았다.
지금의 런던을 거쳐 북상, 산적이나 도적떼를 가리키는 브리건드brigand族의 스코틀랜드접경에 현장설계로 방위벽 축조사업을 명령하고 완공을 보지못하고 귀로 스페인을 경유해서 지중해를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여 1개월여의 항해끝에 시리아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 사진에서 보는 하드리아누스성벽이 항구적 시각에서 견고하게 설계 축조되었음을 아래 사양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있다.
철책선으로 막힌 휴전선이라는 남북대치 전선을 허리에 두르고 사는 우리의 처지에서 고대로마는 외적 침입에 어떻게 물리적으로 방어를 했는가 비교해 보게된다.
壕:최전방에 폭 9.1미터, 깊이 9미터의 V자형 참호를 파고,
성벽 맨 위를 관통하는 감시통로에서 참호 밑바닥까지 볼 수있다.
石壁:북쪽 외향벽의 높이는 6~10미터, 남쪽 내향은 4~6미터, 지형 차이에 불구하고 전체 성벽의 두께는 3미터로 마차 한 대가 통과하기에 충분하다.
道路:성벽을 따라 騎馬나 마차가 넉넉하게 교차 통행 할 수있는 도로가 로마가도식으로 완전 포장되어 2차선으로 가설되었다.
土城:높이 3미터, 폭 6미터로 성벽을 따라 평행으로 2개가 나란히 달리고 두 토선 사이는 깊이와 폭이 각각 6미터의 塹壕가 파여졌다.
성벽은 전선에 걸쳐 城塞 要塞 감시탑이 요지마다 설치되고 각 요새 간의 거리는 평균 1,5킬로, 감시탑은 5백미터 간격으로 설치되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전시품으로 미루어 고고학 숭상이 높은 영국인은 지금도 천 9백년된 당시 외적의 유적을 보존 유지하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곳곳에 관관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어 고대로의 여행을 돕고 있는 것이다.
고대로마인이 발룸 하드리아니Vallum Hadriani라 부른 이 성벽은 영어명 Hadrian's
Wall로 북해쪽의 타인江 하구에서 출발하여 뉴캐슬을 거쳐 서쪽의 솔베灣까지 약 백 17킬로미터를 달리는 屬州 부리타니아를 북쪽 스코틀랜드의 야만족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라인강의 게르마니아방벽과 같은 이념으로 세워진 것이다.
역사가이며 작가이기도한 윈스턴 처칠 수상이 <영국의 역사는 기원 전 카에사르의 잉글랜드 정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여국인의 역사관을 반증하는 유적으로 하드리아누스성벽은 존재한다고 보면 착각일까.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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