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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6. 카에사르-폼페이우스간 세기의 대결, 파르살루스大會戰 (4)
 (회전 개념도)
會戰 실황중계 (상)
폼페이우스군은 언덕 위에 구축한 진지에서 좀처럼 내려와 싸움을 벌이려하지 않았다.
언덕을 오르며 싸우는 쪽의 희생이 크다는 것을 잘아는 카에사르는 적을 평지로 유도하려고 시도했으나 전투태세는 갖췄으면서도 꼼짝도 안했다.
카에사르는 유도작전을 재시도했으나 마찬가지다.
별 수없이 자군의 진지를 철수시켰다.
나팔을 불고 전투장비를 수송마차에 싣는 등 일부러 적이 보는 앞에서 들판을 가로지르며 후퇴를 가장했다.
이를 지켜본 폼페이우스측이 전의가 솟았다. 이긴다고 확신한 것이다.
카에사르의 부관으로 갈리아전쟁을 함께겪은 라비에누스도 카에사르의 베테란병들이라해도 장기간의 갈리아전투에서 다수가 죽었으므로 겁낼 것 없다고 폼페이우스에 조언했다.
폼페이우스측은 카에사르의 유도작전에 말려들어 결국 고지를 내려왔다.
이때 카에사르는 즉각 이동을 중지하고 짐이고 뭐고 다 팽개친채 무기만을 들고 집합시켜놓고.....
<우리가 오래 기대했던 때가 왔다.
준비는 완벽하다.
지금의 호기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전투대형을 짜라.>고 명령했다.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포진을 완료한 전군 앞을 말을 몰면서 로마군 항례의 전투개시 전 연설을 짤막하게
마친 그는 다음 한가지를 특히 강조했다.
<나는 항상 헛된 피를 흘리지 않기를 바래 노력해 왔다.
폼페이우스와 대화로 풀려고 몇 번이고 시도해온 것을 병사들은 증언 할 수있을
것이다.>
전투개시를 알리는 紅旗가 게양되고 카에사르가 자기 위치로 돌아가던 중 제10군단 앞을 통과하는데 百人隊長 크라스티누스가 소속 부하들을 격려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우리 대원들은 나를 따라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최고사령관에 대한 서약을 완수한다.
오늘의 일전으로 모든 것을 끝내어 카에사르의 명예를 회복하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카에사르가 말을 멈추고 듣고 있는 것을 본 백인대장은 최고사령관을 향해 외쳤다.
<우리의 장군이시어, 오늘 우리들의 행동은 내가 살든 죽든 당신이 감사하지 않을 수없는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고 말한 배인대장 크라스티누스는 앞장서서 전열을 빠져나가 적군을 향해 달려갔다.
백 20명의 부하병들도 뒤를 따랐다.
이렇게해서 회전은 카에사르측이 불꽃을 피움으로써 시작되었다.
運命의 BC.48년 8월 9일
양군 사이는 서로가 돌진하여 격돌 할 수있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자군에 不動令을 내렸다.
상대 적이 접전지점까지 달려오는 동안 지치게 만들어 기다렸다가 치고 나오겠다는 게산이었다.
그러나 카에사르 병사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한참 돌진해간 병사들은 상시 익힌대로 적정거리에서 멈춰 숨을 고르고 잠시 쉰 후 재돌진해갔다. 상대 적이 바라는만큼 피로하지 않은 건디션으로 적에 격돌했다.
카에사르는 <내란기>에서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폼페이우스는 전장에 몰려나간 병사들의 가슴에 끓어오르는 전투의욕이나 감정적 격동과 같은 자연스런 인간적 기분을 모르는 전법이었다.
戰端이 내려지자 나팔이 울리고 전전선에서 고함을 지르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투관습도 의미 있는 것이다. 적에 겁을 주고 아군에는 사기를 북돋는 督戰방법이기도 하다.>
위 개념도에서와 같이 카에사르군의 우익에 포진한 1천기의 기병대가 4백명의 젊은 병사들을 뒤에 태우고 돌진하자 폼페이우스군의 7천 기병단이 마주치고 나왔다.
이때 1천 기병대는 도주를 가장해서 옆으로 피했다가 뒤돌아 적의 7천 기병이 질주하는 뒤를 쫓는 순간 숨겨두었던 카에사르군의 2천 노련병이 일제히 장창을 들고 적 기병단 앞을 가로 막았다.
전회에서 말했듯이 말은 토끼가 웅크리고 있어도 본능적으로 거름을 멈추는 동물이다.
하물며 장창 앞에 갈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적 기병에 뒤로부터 1천기병이 달려들었다. 꼼짝없이 포위된 폼페이우스의 주전력 7천 기병대는 싸와보지도 못하고 이미 제그능을 잃었다. 적의 주전력의 비전력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카에사르군의 步騎 합해 3천이 7천기의 적기병을 모두 잡을 수는 없어 포위망을 벗어난 기병이 남쪽으로 펼쳐진 들판으로 달아나는 것은 어쩔 수없었다.
이후 전황은 보나마나였다.
기병 7천을 잃은 4만 8천의 이빨 빠진 호랑이들은 2만 2천의 카에사르군 앞에 적수가 아니었다.
자군의 중장보병들의 지리멸렬하는 것을 본 폼페이우스는 말을 타고 진지로 달아났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은 저마다 앞다퉈 투항을 하고 전 전력의 절반 2만 4천은 진지뒤의 산으로 일제히 패주해 갔다.
카에사르가 로마군의 전통에 충실히 하스타리, 프린치페스, 토리아리 즉, 20대 전후 연소병, 2 30대의 청장년병, 3 40대의 장년병의 연령별 대형구성으로 1단계 2단계 3단계의 전투과정별로 투입한 전술도 회전 승리에 한몫했다.
연령대별 단계 투입은 인간의 체력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투를 무한 지소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온 오랜 전통이었다.
격전이 끝나고 카에사르가 도망간 폼페이우스 진지에 가보고 놀란 것은 수 많은 천막마다 귀빈이라도 접대할냥 은식기로 차려진 식탁이었다. 병사들을 하루 먹이는 일에도 늘 걱정해온 그로서 전장에서도 이토록 호화스런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있었다니 폼페이우스가 부럽웠을까 아님 괫심했을까. 그건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로마를 지켜 공화국 원로원의 온존 旗幟를 내걸고 대군을 앞세워 동족간 피를 흘리게하고 이제 병사들은 나몰라라 도망친 로마의 명장 폼페이우스는 진지마저 버리고 백리 밖 북쪽 라리사로 말을 달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