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병석의 트라이아누스황제에 의한 후계 지명절차가 객관적으로 명확하지 않다고해서 원로원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부른 가운데 14대 황제가 되었다.
*즉위 첫 시련 만난 4대 사건
117년 41세에 등위한 하드리아누스황제 앞에는 현안이 산적했다.
첫째, 원로원과 시민의 확고한 기대를 안고 떠난 트라이아누스 황제의 돌연한 병사로 중도반단된 파르티아원정계획을 명예롭게 마무리해야하는 과제가 가로놓였다.
둘째, 제국이 파르티아원정에 국력을 집중하는 사이 유다와 잉글랜드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 등 사방에서 反로마봉기가 발생, 제국의 평화를 위협했다.
세째, 트라이아누스황제의 신임이 두터웠던 4인의 유력 원로원 의원들에 의한 反하드리아누스 움직임이 있다는 근위군단장의 비밀보고를 받고 적절히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첫째 것은 아르메니아 왕의 대관식은 로마황제의 허가를 받아 치른다는 조건의 강화협정으로 제국의 체면을 세웠고, 둘째 것은 유능한 지휘관들에 의한 진압작전으로 어렵지않게 수습되었다.
그러나 세째 것은 황제의 로마 부재중 근위군단장 아티아누스의 과잉충성 탓일까 아니면 황제의 지시내용의 모호성 탓일까, 4인 전원이 재판 없이 공공연하게 근위군다병에 의해 살해되는 참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수도 로마에는 공포분위기가 내습했고 황제와 원로원의 관계가 경원해졌다.
이 사건을 두고 확실히 말 할 수있는 것은 일국의 군주나 리더의 모랄과 일개 私人의 모럴은 분명히 다를 수있다는 것이다.
사인이라면 성실 정직 솔직 청렴은 훌륭한 美德(virtue)일 수있지만 공인, 그것도 최고책임자쯤 되면 그런 미덕이 똑같이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다.
한 운명공동체를 책임진 리더에게 개인의 미덕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때로는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하는 결단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비단 로마의 하드리아누스황제에 의한 공포분위기 조성을 변명하고, 우리의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통치를 변호하고자해서가 아니다. 일반인에 대한 미덕이란 표현은 공인 지도자에게는 器量 또는 力量으로 표현돼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트라이아누스가 확립한 북방의 도나우강방위체제를 재점검하고 다키아와 遠판노니아의 2개 속주 사이 일대에 끼어 사는 야지게스族과의 동맹관계 공고화를 비롯한 방위선 강화을 위해 사르마티아族에 대해서는 무력사용도 불사하는 등 하드리아누스는 황제 즉위 11개월만에 수도 로마에 귀환했다. 서기118년 7월이다.
냉냉한 분위기 속에 로마에 돌아온 하드리아누스는 황제로서 처음 원로원 회의에 참석했다.
냉냉한 긴장 속에 원로원 의원들 앞에서 42세의 황제는 역설했다.
4인의 집정관 경력 의원을 죽인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
황제 살해음모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긴급 대책은 지시했으나 진상 여부를 조사하라했지 재판없이 처형을 명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것을 오해한 근위군단장 아티아누스가 독단으로 살해를 강행했다는 것.
그래서 아티아누스를 근위군단장에서 해임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이후 절대로 원로원 의원을 정식재판없이 살해하는 따위의 불상사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서약했다.
그리고 한 말, 가령 원로원 의원이 처벌 대상이 된다하더라도 원로원 재판에서 원로원 의원 과반수가 유조로 판정한 경우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원들의 굳은 표정이 그것으로 풀리지 않았다.
황제 즉위시에 트라이아누스가 언명한 것처럼 원로원 의원을 國家返逆罪로 단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로원 의원들에게 정치는 非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는데 있어 하드리아누스는 너무나 현실주의자였다.
* 체납장부를 소각해서 탕감해주고 공정 세제를 확립하다
세금 문제는 동서고금 안보와 더불어 집권자에 있어 최고 현안문제다.
하드리아누스의 인기정책은 수도 로마시민뿐 아니라 본국 이탈리아의 지방자치체는 물론 속주민에 이르기까지 제국 전체를 망라해 실시되었다.
새 황제가 즉위하면 전통적으로 있어온 황금제 王冠의 봉납을 이탈리아 본국 지방체는 전폐했고 屬州로부터는 종래의 반가로 제한했다.
황제에 황금 왕관을 바치는 것은 전통적 충성의 표시였다.
그러나 하드리아누스는 제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으로 전폐 또는 반감시킨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않고 아무도 상상 못한 租稅 탕감정책으로 로마시민을 작약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세금 체납분을 전액탕감해 준 것이다.
수년 전 완성한 白亞의 트라이아누스 포럼 광장에 파피루스지에 적힌 체납장부를 산처럼 쌓아놓고 거기에 불을 질러 말소시킨 것이다.
시민은 장부가 불타오르는 광장을 돌며 춤을 췄다.
그렇게해서 황제금고와 국고의 세입은 9억 세스텔리우스가 줄었으나 이후 15년마다 부동산 등기를 개보정해서 부동산 가치에 따라 부과되는 공정한 과세 정책이 실시되었다.
公正稅制는 예나 지금이나 넓고 얕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이르는 말이다.
로마제국은 벌써 그것을 AD 2세기에 실현했던 것이다.
로마사가들이 하드리아누스를 로마제국 황제의 귀감으로 삼는 이유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