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당장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 놓인 가운데 북핵 공갈이 가일층 격해지는 순간 미사일 발사의 만용을 보며 나는 천 년 전의 이 글을 쓴다.
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59-
*로마史에 치욕 남긴 갈리아帝國 탄생의 반란
Rhine frontier of the Roman empire, 70AD, showing the location of the Batavi in the Rhine delta region. Roman 기원69-70년 로마제국의 속주 북부 갈리아 저지 라인강 방위지역도. 이 지역 일대가 갈리아帝國 영토라고 주장한 속주 바타비아族에 의한 반란지역이다.
1년 반 사이 황제 4명이 죽고 죽이는 내전상황을 틈타 三日天下 최후의 황제 비텔리우스의 친위군단병인 라인강 방위군에 소속된 바타비아族(Vatavian,Betuwe 지금의 네덜란드人)보조병들에 의해 반란이 발생한다.
이들 대부분은 라인강 동쪽에서 서안으로 건너와 약탈해 살던 게르만족이다.
기원69년 4월 당시 오토 황제와 황위를 노리는 비텔리우스 간에 벌어진 제1차 베드리아쿰(Bedriacum)戰에 바타비아족 출신 장교로 참전한 율리우스 키빌리스가 속주 보조군단병들을 휘하에 모아 일으킨 반란에 갈리아 각 部族을 규합해서 갈리아帝國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현 프랑스 북부에 해당하는 레미에서 근 백개에 이르는 갈리아부족회가 소집되었으나 율리우스家名의 다수 부족장들이 반기를 드는바람에 통일 갈리아제국이 아닌 부분 독립선언으로 끝났다.
이 반란에서 라인江 방위 로마군단병들이 대량 참살되고 산자들은 백기를 들어 키빌리스 반군에 항복, 갈리아제국에 충성을 맹서하는 치욕의 로마사가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여 이탈리아에 진군,비텔리우스 황제 친위군을 패배시킨 명장 무키아누스(Licinius Mucianus) 장군 예하의 갈루스(Cestius Gallus)와 케리아리스(Ceriaris) 두 사령관 휘하 9개 로마군단의 반격에 키빌리스의 반란은 진압되고 갈리아제국은 소멸했다.
기원 69년 로마 서방은 갈리아족 반란, 동방은 유다민족 반란, 두 역외 반란에 샌드위치가 된 로마제국 초유의 치욕이었던 것이다.
격전이 끝나고 갈리아 반란병들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군단병들의 의분을 진정시킨 로마군단 사령관 케리아리스가 반란군을 향해 한 연설이 유럽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더우기 명문이어서 좀 길지만 때가 때인만큼 여기 요약 소개한다.
<나 개인은 언어 구사력에 있어 정치가나 변호사처럼 재주부릴 줄을 모른다.
로마시민의 존재이유를 武器에 의해 인정받는 길을 택한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현상태(패자 입장)를 생각하면 변변찮은 내 말이지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로마와 토레베리族이나 링고네스族과의 싸움은 이제 끝났다.
무서워 떨기보다 냉정하게 듣고 생각할 때라고 본다.
여러분의 땅에 한하지 않고 다른 갈리아인의 땅(라인江에서 피레네山脈에 이르는 전역)에 로마人이 달려오게된 단초는 로마인의 정복욕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의 선조가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해 주기바란다.
그 이전(카에사르에 의한 정복)의 갈리아는 수 많은 부족간의 항쟁으로 날을 새며 자멸 직전의 상태였다.
카에사르가 갈리아의 부족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갈리아에 들어왓으나 다른 부족은 게르만인 아리오비스투스에 지원을 청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게르만인은 이 기회에 갈리아를 수중에 넣으려고 생각했다.
게르만족의 전투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로마인조차 그들을 상대해서 얼마를 싸와야했는지 또 얼마를 희생해야 했는지 회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 로마인은 라인강을 방어선으로 확정하는 방책을 세웠다.
물론 이것은 본국 이탈리아의 방위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시에 갈리아 전토에 아리오비스투스(카에사르와 싸와 패주한 게르만 武將)의 자손의 지배가 미치지 않도록 막았다.
여러분은 현재 키비리스가 이끄는 바타비아족이나 라인강 동쪽에 사는 게르만인들은 카에사르 시대에 산 그들의 선조들과 달리 갈리아에 호의를 갖고 갈리아인을 온정으로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환상이다.
게르만민족은 그로부터 130년이 지나려는 지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치 변함 없이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침공을 단념하지 않고 타민족과의 화해를 기피하며 타 민족의 소유물을 약탈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계속해서 정착생활을 마다하고 있다.
.....중략....
그리고 이 게르만인이 갈리아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때의 상투어는 언제나 정해진 自由와 獨立 두 마디다. 그러나 잊지말기 바란다.
남을 지배 하에 두려는 생각을 가진 민족으로 이 두 마디 판박힌 기치를 내걸지 않았던 민족은 하나도 없다는 인간세계의 현실을 잊지말아주기 바란다.
카에사르에 의해 로마법 하에 귀속되기까지의 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노골적인 힘이었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복자가 된 우리 로마인은 <승자의 권리>를 제국 전체의 평화 확립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학실히 여러분은 屬州稅를 지불하는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민족간의 평화를 보존하는 병사가 필요하며 병사에게는 급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급료를 지불하려면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로마가 갈리아에 요구한 것은 이 속주세뿐이다.
다른 것은 모두 여러분의 자치에 맡겼다.
그뿐인가?
로마군내의 요직까지도 노선 창시자인 카에사르 시대부터 이미 많은 갈리아인의 등용을 허요해 왔다.
....중략.....
만약 로마인의 갈리아 추방이 실현되었다고한다면(그런 일은 하늘이 허락치 않을 것이지만) 어떤 상태가 되었겠나를 생각해 본 적있는가.
제국의 전역은 간단 없는 전란상황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는 8백년이나 긴 세월을 통해 행운을 활용함과 동시에 스스로에 확고한 규율을 부과하는 것으로, 또 파괴하려는 자를 타도하는 것으로 彼我 간의 평화를 구축할 수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 평화가 문어진다면 그 첫 피해자는 당신들 갈리아인이다.왜냐하면 전쟁을 유발하는 최대의 원인은 황금과 부의 욕망이며 그런것들도 지금은
여러분쪽 손에 있다.
그러므로 잘 생각해서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평화를 향수하고 안전하게 번영하는 당신네쪽에 사는 도시나 농촌을, 정복자도 피정복자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존준한다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했으면 한다.
여러분은 다른 갈리아인과 달리 반로마 행동을 일으킨 체험을 했다.
그 체험을 딛고 볼 것도 없이 당신네쪽의 파멸에 이르는 것이 필지인 반란에 가담 할것인가 아니면 우리 로마인 곁에 돌아와 공존과 공영의 동지가 될것인가 그 어느쪽인가를 결정해 주기 바란다.>
로마史家 타키투스는 로마 진압군에 의해 포로가 된 갈리아叛軍들의 기죽은 모습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햇빛으로부터도 도망처 어딘가 숨을곳을 찾는 그들의 죽은듯한 모습.....>
現體制가 바뀌지 않는한 북한은 백 년이 가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글을 쓰고 있는 방금 한 지인으로부터 온 전화가 오늘의 이 판국에서 북한더러 대화의 장에 나오라고 유길재 통일부장관이라는 자가 기자회견을 했다고 전한다.
그래 그랬다. "미친놈 다있다. 북한의 통일전선전략 선전에 부화뇌동하는 走狗를 장관에 앉혔군.....개성은 이 기회에 첼폐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