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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58-
*제2황금기를 준비한 평민출신 9대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등장
기원70년 유다에서 로마에 귀환, 파비우스朝의 초대 황제가 된 베스파시
역사교훈 로마史Digest를 인터넷에 쓰기 시작해서 오늘로 연재 154회째가 된다.
정치는 타락한 인간들의 먹거리 사업이라고만 여겨왔던 나의 젊은날의 생각이
소위 문민정권 들어어서면서부터 많이 바뀐 나 스스로를 본다.
그렇다고 김영삼정부때만해도 정치에 별 관심 없이 지냈는데 김대중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정치에 귀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틀림 없다.
그리고 노무현 때는 "이게 아니다." 뭔가 가슴 치미는 울화가 한두 마디 글로 토해지면서 그 배출구를 찾는다는 것이 인터넷 세계였다.
그래 오늘날까지 현실로는 아스팔트를 누비고 고함을 지르면서 뜻밖에 以心傳心 생각이
통하는 무리에 섞여 현실정치를 "이게 아니다"며 핏대를 세워왔다.
그러는 중에 내가 찾은 것이 먼 2천년 전의 로마史였다.
옛날 수박 겉핥기로만 지나쳤던 천년 로마사가 나로 하여금 오늘날 한국의 현실청치와
부딛치는 마찰음에 고막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천착하게 만들었다.
만 쪽에 가까운 로마사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는 과정에서 오버랩되는 천년
역사의 로마의 정치세계와 이제 백년도 안되는 한국의 정치세계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느끼면서도 내 현실적 욕심이 앞서는 까닭에 가끔 비유하지 않을 수없게된다.
혹시 정치인 누구라도 읽으면 역사의 교훈이 될까싶어 수 년 전부터부터 조선 동아 그리고 몇몇 마이너 인터넷 창을 통해 이따금 단편적으로 카에사르 브루투스 스키피오 등 로마 지도자상도 그리고 로마를 괴롭혔던 한니발도 그려내 봤다.
오늘은 제국시대 백년을 맞는 로마제국 제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인간성부터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황제에 즉위하면서 Caesar Vespasianus Augustus로 불리운 베스파시아누스야말로 요새 누가
말하는 實用主義 정치가였다고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있는 황제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크게 西方軍團(라인江 연안)과 東方軍團(다뉴브江 연안),
2개 집단군으로 나뉘어 당시 로마의 방위선(Lemis)이 유지되고 있었다.
史劇 영화에도 자주 등장해 익히 알려진 네로황제가 14년간 詩句를 읊으며 유유자적하다가
로마 원로원과 시민회의 불신을 받고 스페인 주둔 간바(Galba)군단의 반기에 굴복하고 자결한
뒤 기원69년에 6대 갈바, 7대 오토, 8대 비텔리우스 황제가 정적에 의해 차례로 피살되거나
자결한 뒤에 등극한 9대 황제가 평민 출신 베스파시아누스 (Titus Flavius Vespasianus)이다.
이때의 로마제국은 둥남쪽 오리엔트의 유다族과 서북쪽 라인강변의 갈리아族에
의한 민족봉기로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다뉴브江 수비군단에 의해 서민출신 군단장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고 그의 아들 티토우스가 유다족의 저항을 반세기만에 평정함으로써
로마제국은 비로서 평화를 회복하였다.
전쟁이 없어야 닫는다는 야누스神殿의 문도 닫혀지고 팍스-로마나가 실현되면서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평화사업에 전념하게된다.
로마사 연구가들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역대 가장 겸손하고 소탈하고 상식적며 실용적인
황제라고 평한다.
그가 등극 제1호 기념으로 세운 장엄한 건축물 포럼을 세우고도 아우구스토우스나
카에사르 또는 폼페이우스처럼 자기 이름을 붙이지 않고 팍스-로마나를 상징하는
의미의 'Pax-Roma Forum 평화포럼'이라고 명명했다.
네로가 거대 사저를 지으려다 죽응에까지 이른 로마 중심부의 넓은 저지대에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는 유명한 콜로세움(Colosseum)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운 로마의 명물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 황제들은 명예를 존중하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나같이
출신가문을 귀족화 해 명문출신임을 자처했으나 베스파시아누스황제는 출신지에
男神 헬라클레스가 방문했으니 헬라클레스의 혈통을 이은 비스파가문이라고
측근들이 떠받들었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상식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황궁을 개방해 누구라도 만나보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카에사르가 호위병도 없시 홀로 맨몸으로 원로원에 들어가다 브루투스 일파에 칼을 맞았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출입자들의 무기 소지여부 검색도 폐지시켰다.
스스로 출신성분을 낮춘 그였기에 소수파이긴 했으나 공공연히 帝政 타도를 외치는
共和主義者들과도 만났다.
황궁을 방문한 反帝政 주의자들 중 황제 앞에서 공화정 복귀를 설득하려는 한 공화주의자의
말에 한참 귀를 기우렸으나 더 참을 수없다고 판단한 황제는 말했다.
<너는 지금 나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기를 바래 무슨 말이든지 하려는 것같은데 나는
왕 왕 짖는다고 그 개를 죽이지는 않는다>
이후 이들 무리의 철학자들은 [犬儒學派]라 불리게된다.
사회생활의 전통이나 번영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견유철학이 여기서 나왔다는 일화이다.
베스파시아누스황제는 사람 누구나 만기를 좋아 했으나 재위 10년간 후궁 맞이를 극력 거부하고
홀아비로 지내며 [로마에 의한 평화] 유지에 착실히 업적을 쌓고 저정로마 제2의 황금기를 준비
했다.
그는 맏아들 티투스스에게 皇統이 계승되도록 일찌감치 황제권을 법제화한 皇帝法을 제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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