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사Digest 제국편-55-
Statue of Corbulo in Voorburg, Netherlands
(네로 치하의 지용 겸비한 해결사 코르불로 장군의 기마상)
동방군사령관 코르불로(Gnaeus.D.Corbulo)와 마찬가지로 로마 원로원이나 황제 네로도 페르시아 문명권에 속하는 파르티아와 아르메이아를 떼어놓을 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아르메니아가 파르티아 쪽에 완전히 붙어버리면 제국의 동방방위전략은 제기능을 할 수없게되므로 로마측에 끌어당겨 놓을 필요가 있었다.
파르티아왕 보로게세스의 진의가 로마와의 전쟁이 아니라 동생의 아르메니아 왕위 유지라는 것도 콜부로 황제 원로원이 다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로마에서 거행된 이색적 아르메니아왕의 戴冠式
아르메니아왕 티리다테스는 오리엔트의 군주답게 한 무리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妻子 함께 로마여정에
올랐다. 도중의 로마속주에서는 총독 이하 총출영하는 환영을 받으며 육로로 로마까지 가는데는 9개월이
걸렸다.
바다에 가면 안된다는 오리엔트 神官의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도중 뱃길로 나폴리에 상륙한 그를 출영하기
위해 황제 네로가 달려오는 등 속국의 왕이라기보다 차라리 종주국 왕 대접을 받으면서였다.
로마에서의 대관식은 로마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중앙의 연단 위에 왕관을 들고 섰는 보라색 皇衣의 네로 앞에 황금색 王衣의 티리다테스가 무릎을 꿇었다.
네로가 들고있는 아르메니아王冠을 티리다테스의 머리에 언져주었고,연단 왼쪽은 흰 토가 모습의 元老院
의원들이, 오른쪽은 황금색 찬란한 오리엔트풍의 정장을 한 파르티아와 아르메니아의 고관들이 둘러섰다.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로마시민들이 지르는 환성이 로마의 하늘에 메아리졌다.
이렇게해서 아르메니아왕이 된 티리다테스는 <로마의 친구이며 동맹자>의 호칭이 주어졌고, 사실상 로마
황제로부터 아르메니아 영지를 下賜받은 격이 되었다. 기원 64년 가을이다.
평화와 우애 속에 진행된 대관식이 끝나고 폼페이우스극장에 딸린 넓은 회랑으로 자리를 옮겨 화려한 연회도 베풀어졌다.
기분이 들뜬 네로는 아르메니아王이 된 티리다테스에 호화스런 선물들 이외, 7년 전 코르불로의 공략으로 잿더미가 된 아르메니아 수도 알타크사타의 재건에 로마가 힘을 돕겠다는 약속까지 했고 후에 약속대로 재건된데 대한 답례로 티리다테스왕은 수도명을 네로니아(네로市)로 개명했다.
파르티아 견제에 아르메니아가 필요했던 로마로서는 더 이상 로마군단의 아르메니아 주둔이 필요없게됨에 따라 코르불로는 동방방위사령관직을 떠나 시리아속주 총독으로 부임했다.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얻은 것이 파르티아쪽이라면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얻은 것은 로마 쪽이라 하겠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아르메니아왕국은 다른 동맹군주국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아왔다.
동맹국이라도 독립국이기 때문에 로마에 屬州稅를 낼 의무는 없다.
그러나 로마가 군령을 발동하면 군대를 참전시킬 의무가 있으며 지금으로 말하면 후방지원 의무도 있다.
그러기때문에 동맹국인 것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만큼은 참전 의무도 후방지원 의무도 지지 않았다.
오리엔트에서는 대국 파르티아에 이은 강국이었기 때문에 특별대우가 분명하다.
로마는 이 아르메니아의 왕위에 오르는 자를 고르거나 승인하거나로 아르메니아를 관리 하에 두어와왔으나 아우구스투스의 방식과 네로의 방식의 차이는 아르메니아의 왕에 파르티아人이 즉위한 것만이 달랐다.
물론 이 파르티아인이 이후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는 神조차 모르는 일이라면 로마는 감시를 게을리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박이다.
그러나 외교도 일종의 도박이다.
그리고 로마는 이 도박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아르메니아王 티리다테스는 파르티아인답지 않게 로마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느라 노력했다.
로마측도 왕을 존중하고 그의 입장을 위태롭게하는 행동을 일체 삼가했다.
파르티아인이 통치하는 아르메니아왕국이 평탄하면 파르티아왕도 만족하기 때문에 파르티아와의 관계도 자연 좋아진다.
3년 후 네로 황제가 자살을 하고 후속 3명의 황제들이 잇달아 죽고 죽이는 내환으로 신음하는 사이 유다의 반란을 수습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전권을 장악, 황제에 올라 제국의 통치력을 회복하고 이후 五賢帝의 첫 황제 트라이아누스 때까지 실로 반세기 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간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당시 50년간의 평화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현대인들이 평가하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히 증언해 줄것이다.
아르메니아문제 해결에 로마는 12년을 보냈다.
카에사르가 갈리아 정벌에 8년을 보낸 사실에 비하면 어이없는 시간 낭비였다.
전쟁이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외교라고 한다면 외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다.
외교의 定義를 분명히 알고 동방으로 간 코르불로는 단 2년만에 숙적 파르티아를 굴복시킨 지용 겸비한
武人이었다.
유능한 리더란 人間과 勞苦와 時間 절약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