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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사Digest 제국편-54-
智勇 겸비한 콜부로의 和戰 양면작전의 승리로 숙적 파르티아를 굴복시키고 아르메니아를 완전 속국화하다.
파르티아軍 弓騎兵
네로 황제는 閣議에 해당하는 콘실리움(Consilium)을 소집하여 라인강 방위사령관으로 공훈을 쌓은 콜부로 장군을 백지위임장과 함께 황제와 대등한 최고사령권을 부여하고 동방에 파견했다.
로마는 파르티아와의 일전을 불사한다는 각오였다.
승리해서 講和하는 전통은 있어도 패전하여 강화하는 법은 로마에 없다는 것이 각의
결의의 근거였다.
강화를 요청해온 파르티아王의 특사는 네로 황제의 거절회답을 가지고 파르티아로 돌아갔다.
양대 세력간 긴장이 고조되고 최고지휘권을 쥔 콜부로 사령관은 8년간 끌어온 동방 방위전략의 마무리를 위해 총 5만 병력을 유프라테스江과 티그리스江이 만나는 아르메니아본토를 향해 진군시켰다.
목표는 아트메니아이지만 싸움 상대는 파르티아軍이다.
공화정代의 크라수스와 안토니우스가 연전 연패의 쓴잔을 마신 강적이다.
로마는 이번이야말로 설욕의 호기였다.
콜부로는 라인강 방위의 최고 勇將이라는 것이 로마세계의 정평이었다.
파르티아에 이기고 돌아오리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아르메니아가 자동적으로 로마에 귀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못했다.
처음으로 전권을 손에 넣고 5만 대군을 부리는 입장이면서 콜부로의 머리는 일전불사의 전의로만 차있지 않았다는 것을 시민도 원로원 의원도 그리고 네로도 몰랐던 것이다.
콜부로는 아르메니아 영내에 진입하여 유프라테스강은 건넜다.
로마군은 적의 요새는 모조리 파괴하고 친파르티아파 귀족들의 영지는 불태우고 약탈하며 초토화작전을 폈다. 마치 불도저가 밀어부치듯이 군을 진격시켜 아르메니아는 페닉에 빠졌다.
콜부로의 공포작전에 굴복한 아르메니아왕 티리다테스와 그 형 파르티아왕 보로게세스로부터 2명의 강화사절이 콜부로의 로마군 진영에 파견되었다.
로마군 콜부로 사령관은 파리티아 강화사절을 정중히 대접하고 긑까지 저들의 말을 경청했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사절에 전하지 않고 휘하의 백인대장으로하여금 티리다테스진영에 직접 전하독 적진에 파견했다.
콜부로는 로마측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대단치 않은 전투에 승리한 것쯤으로 오만해진듯한 파르티아측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하는 말인데, 본관이 처음 군을 진격시켜서 얻은 로마군의 전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다.
이대로 계속되면 로마군에 의해 아르메니아는 초토화될 것이다.
로마측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면 그럴 힘이 있다.
러므로 티리다테스는 초토화 전에 아르메니아를 로마 황제로부타 하사품으로 받는 편이 보다 현명하지 않겠느가?>
로마측의 확고한 의지에 파르티아와 아르메니아는 두 형제 왕의 명의로 로마와 평화조약 체결을 수락하고 일시 휴전할 것을 콜부로 사령관에 전해왔다.
콜부로는 즉각 티리다테스와의 직접회담을 제의하고, 로마 황제의 하사품 아르메니아를 그대가 받고싶으면 로마 황제가 씌워주는 왕관을 로마에 와서 받으라고 못박았다.
이 제의에 파르티아와 아르메니아의 두 형제 왕은 조건없이 수락하고 절차 협의를 위해 티리다테스왕과 콜부로의 직접회담 일시와 장소를 로마군측에 일임했다.
콜부로는 쇠뿔도 단결에 뺀다고 회담 일시를 불과 수일 후로 정하고, 장소는 베토우스 휘하의 로마군에 굴욕의 패배를 안긴 격전지로 정했다.
굳이 콜부로가 그곳을 회담장소로 정한 이유는 동방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파르티아 왕의 동생 아르메니아 왕과 당당히 직접회담장소로 삼아 로마군 패배의 굴욕적 기억을 불식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로마 황제가 주재하는 아르메니아 왕의 대관식 전반의 절차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아르메니아 영토 내 로마군 진영 중앙에 황제 네로의 彫像을 세워지고 그 앞에는 제단이 설치되었다.
주위를 각기 다른 무장을 한 로마군과 파르티아군이 둘어서고 제단 앞으로 정장을 하고 아르메니아의 왕관을 쓴 티리다테스가 걸어나왔다. 콜부로가 제단 옆에 서서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티리다테스는 네로의 조상을 향해 절을 하고 머리에서 왕관을 벗어 제단 위에 놓았다. 이렇게해서 대관식 전반 절차가 긑났다.
티리다테스가 그 왕관을 다시 머리에 얹으려면 로마에 가서 네로 항제의 손을 거쳐야한다. 대관식의 후반은 몇 달 뒤 로마에서 거행되는 것이다.
티리다테스가 로마로 떠나기에 앞서 동생의 후일이 몹씨 걱정된 파르티아왕 보로게세스는 콜부로 사령관에 동생의 신변안전은 물론 체면을 지켜줄 것을 신신 당부했다.
한편 로마의 네로 황제도 전권을 위임한 콜부로의 이같은 협상결과를 두말없이 받아들였고 원로원도 로마시민도 콜부로의 외교성과에 만족했다.
숙적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즉위 이래 동방에 대한 첫 군사적 승리감을 만끽한 황제 네로는 티리다테스왕 일행의 여비 일체를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기원64년 봄이었다.
2천년 전 로마 명장 콜부로의 능난한 和戰 양면전술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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