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53-
네로는 황제로서 동방의 전통적 강국 파르티아戰線에서 첫 시련을 겪는다.
기원141년 발행의 로마 銅貨.황제 안토니누스가 아르메니아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있다.
寬容政策 하에 敗者도 동화하여 Pax-Romana <로마에 의한 평화>를 구축한 로마제국의 영토방위개념은 다소 복잡하다.
로마시를 중심한 이탈리아반도룰 본토로 하여 주변국들을 속주화해서 제국통치 하에 두고 개중에는 군사적 제휴를 통한 동맹국과 상호 불가침을 서약하는 평화협정국으로 이루어진다.
공화정 이래 동방의 강국 Parthia파르티아(페르시아)는 로마의 평화를 항시 위협하여 왔다.
통치자의 교체기를 노린 기원54년에도 파르티아가 로마同盟國 Armenia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왕위를 찬탈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黑海와 카스피海 사이에 남쪽 파르티아와 접경하고 있는 아르메니아王國은 로마로서는 제국평화 유지에 불가결한 동방 방위선이다.
섭정 세네카의 조언으로 네로황제는 즉각 歷戰의 라인강 방위사령관 콜부로를 동부사령관으로 임명, 3개 군단 병력과 함께 이동명령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네로황제는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세계 3대 도시의 하나인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주재하는 속주총독 콰드라토우스를 파르티아전선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우를 범하고만다.
당시 동방은 게르만족에 시달려온 서방에 달리 문명세계이며 긴급한 군사작전의 필요가 없는 평화지역이었다. 문명도시에 주둔하여 백년 로마평화에 안주해온 시리아屬州 주둔 병사들이 전의가 타오를리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휘계통의 2元化는 반드시 칠패한다는 군사작전상의 지식이 전무한 세네카와 네로의 잘못된 지휘권 행사는 콜부로와 콰드라토우스 두 전선사령관 간의 시기와 갈등을 조장하여 파르티아戰線을 3년 여의 긴 휴면상태에 빠뜨려 국력만 소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견착상태에 빠져 전선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파르티아왕의 아르메니아王位 纂奪의 眞意를 파악한 사령관 콜부로는 협상 아닌 군사적 해결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진군을 개시했다.
아르메니아왕국 수도 알타크사타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분산작전을 펴 요소 요소의 성채를 모조리 공략하는 융단폭격작전으로 격파하며 진군했다.
파르티아가 앉힌 가짜왕 티리타테스는 수도방위를 일찍이 포기하고 달아났다.
콜부로의 로마군단은 무혈입성하고 전과를 기원58년 말 로마에 알렸다.
시민들은 환희에 차고 로마군최고사령관격인 네로에는 "Imperator 임페라토르" 환성이 터졌다.얼떨결에 시민으로부터 실제 "임페라토르" 환성을 듣게된 네로도, 원로원도 그리고 일반시민들도 아르메니아도 다시 로마 패권 하에 귀속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전선의 콜부로는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 할수만은 없었다.
도망친 티리다테스의 배후에 있는 파르티아왕 보로게네스가 그대로 주저앉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전투는 게속될 수밖에 없다고 콜부로는 결심했다.
공략한 수도 알타크사타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어 잔류병을 남겨야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시민이 다치지 않게 사전 조치 후 시가를 불태우는 수밖에 없었다. 수도 알타크사타는 전소되었다.
기원58년 로마군은 아르메니아에서 겨울을 나고 59년 봄 목적지 파르티아 접경 아르메니아 제2수도로 진군했다. 티그리스江 상류에 위치한 제2수도 티그라노켈타는 지금은 터키領이 된다.
진군 거리 4백킬로를 초토화작전으로 진격한 콜부로군단은 제2수도도 무혈입성했다.
이로써 아르메니아로부터 파르티아세력을 일소한 셈이다.
네로는 오리엔트 왕국들에 대한 로마 전통의 정책대로 로마에 데려다 양육되고 교육받은 원 아르메니아왕자 티구라네스를 왕위에 올리고, 철수하는 콜부로의 휘하 군단병 1천명과 보조병 1천명 그리고 기병 5백을 시켜 그를 보위토록 했다. 그것은 마치 지상군 없이 敵陣 깊숙히 투하된 낙한산부대작전에 다름아니었다.
기원62년 이번에는 네로에 의해 추가 파견된 베토우스 사령관과 콜부로 사령관의 전선지휘 2원화가 재연되어 아르메니아 재탈환에 나선 파르티아왕 보로게네스군에 포위된 베토우스 지휘 하의 로마군은 항복의 수모를겪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적전 지휘 2원화는 필패라는 쓴교훈을 거듭 삼킨셈이다.
파르티아왕은 항복한 베토우스군을 관대히 처분해 무장해제도 하지 않고 아르메니아 영내로부터 로마군의 완전철수만을 강요받고 결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강적 파르티아 견제를 위한 동방의 제1방위선 아르메니아 문제는 로마와 파르티아 간의 타협으로 일단락되었다. 영외 침범을 하지 않고 친로마왕국이 된다는 조건 하, 파르티아왕 보로게네스의 이복동생 티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인정을 하고 대관식을 로마황제 앞에서 거행하기로 한 평화협정으로 분쟁 15년만에 매듭지은 것이다.
한마디로 백년 平和무드에 젖어 군사지식은 고사하고 전선경험 없는 황제 네로와 문필지식인 세네카에 의한 제국통치가 빚은 대외정책 실패의 본보기였다.
--계속--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