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우스가 로도스 섬에 은퇴하여 만학의 길을 거를 때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열리는 제195회 올림픽 경기에 로마인 개인자격으로 41세 나이에 출전하여 말 4마리가 끄는 전차경주에서 우승했다고 독일의 로마사학자 데오도르 몸젠의 저서가 전하고 있다.
그 벤허(Ben-Hur)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 영화로, 미국의 작가 루 월리스의 1880년작 동명 소설 《벤허》(Ben-Hur: A Tale of the Christ)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되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서 수상한 한국인에도 인상 깊은 영화이다.
서기14년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한 달이 지나도록 황제 지위의 수락에 신중을 기한 티베리우스의 공식 취임일은 원로원회의가 열린 서기14년 9월 17일이다.
이날 집정관 2명의 공동제안 형식으로 다음 동의가 제출되어 가결되었다.
1. 고 아우구스투스의 전례에 따라 티베리우스에도 <원로원 제1인자>의 호칭을 수여한다.
2. 티베리우스는 전년 서기13년에 기 수여된 <로마 전군최고지휘권>을 계속 유지 한다.
3. 티베리우스는 십년 전부터 인정해온 <호민관특권>을 계속 유지하고 기한을 종신로
한다.
4. 티베리우스에 생전의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로마국가 수호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부여한
다.
이에따라 집정관을 비롯한 원로원 계급과 기사계급 그리고 평민계급 모두로부터 티베리우스에 충성맹서가 통고되었다.
그러나 후세의 우리는 참고로 당시 로마의 권력이양과정이 얼마나 신중했는지를 다음 티베리우스의 언동을 통해 엿볼 수있다.
委託 의미를 갖는 승인을 얻은 이상 이를 수락하면 될것이지만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만년을 함께 담당해온 경험에서 통감한 바, 원로원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중책을 분담할 수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부족하지 않은 터에 전권력을 단 한 사람에 위탁하는 것은 최선책은 아니지 않은가..........나 혼자 중책을 맡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렇더라도 여러분들이 내게 위임하고싶다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이의가 없다.>
이말을 듣고 느닷없이 원로원의원 아지니우스 가루스가 쏘듯이 질문을 던졌다.
<카에사르(카에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가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삼았기에 당연한 호칭),
당신이 위임 받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느 분야를 말하는가?>
아우구스투스의 강요로 이혼한 티베리우스의 조강지처 비브사니아의 현 남편되는 가루스의 가시돋힌 질문에 당혹한 티베리우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답했다.
<만약, 자유선택이 허용된다면 모든 공직에서 제외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못한 이상은 어느 분야를 취사선택하는 것을 네 마음대로 결정하는 그런 사고방식은 내 인생에 맞지 않는다.>
냉소를 띤 가루스가 다시 물었다.
<나는 당신에게 분할 할 수없는 분할 가능성을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입에서 듣고싶었을뿐이다. 국가는 하나이며 그 국가는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말을 당신의 입으로 듣고싶었을 뿐이다.>
가루스는 어색한 표정으로 죽은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을 찬양하고 티베리우스가 오랜동안 이룩한 전장에서의 공적과 정치적 업적까지 칭찬하는 말로 부자연스런 국면을 모면했다.
그렇지만 티베리우스의 입에서는 <수락>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의원들 속에서 헤테리우스가 일어서서 발언했다.
<카에사르(역시 티베리우스), 당신은 언제까지 국가를 머리 없는 상태로 방치할 것인가?>
원로원의 초조함도 당연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죽은지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라인강 주둔 군단으로부터는 불온한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드디어 제국 통치권을 수락했다.
55세를 두 달남겨두고 비록 피는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이어받지 않았으나 연령 경험 실적 역량 어느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2대째의 <제1인자 Princeps>. 실질상 황제의 탄생이었다.
한 달간의 진통끝에 제위를 수락한 티베리우스는 황제가 통치하고 원로원이 돕는 형식의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해 놓은 교묘한 협력관게를 더욱 다지기 위해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에 협조를 당부했다.
가루스의 반발에도 이유는 있었다.
초대 아우구스투스가 사람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국가 로마의 정체는 공화정이며 그 원수는 로마시민 중의 <제1인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는 제1인자를 지명하는 것은 전임 제1인자이고, 원로원에는 그것을 승인하는 권한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속이 빤한 이 현실에는 눈을 감고 마치 제1인자와 원로원이 대등한 관게라도 되는양 협력을 요청하는 따위는 뭐냐는 것이 가루스의 본심이었다.
아무튼 아우구스투스는 외관은 共和政이라도 내실은 君主政이라는 비논리적 政體를 구축하고 40 여년의 장기간에 걸쳐 기능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호칭이야 어떻든 사실상의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는 아첨에는 참을 수없었다.
어느날 원로원회의에서 월력 7월이 율리우스(Julius)이고 8월이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호칭되는 것을 모방해 9월을 티베리우스(Tiberius)로 하자고 제안을 한 의원 하나가 있었다.
키베리우스는 벌덕 일어나 화살처럼 한마디 쏘았다.
<제1인자>가 십명이 넘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것인가>
지금세상 아첨으로 밥먹고사는 사람 한둘이 아니지만 2천년 전 로마에도 그런 아첨꾼이 있어 티베리우스 이후에도 달력 명칭 바꾸자는 사람이 심심찬케 나왔지만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7월과 8월뿐이다.
때를 맞춰 기원 전후의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팍스로마나의 실현이라고 하지만 티베리우스 취임을 기해 라인江 방위선에서는 軍團 봉기가 발생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