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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48-
서기14년 티베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제2대황제가 된다

The campaigns of Tiberius, Ahenobarbus, and Saturninus in Germania between 6 BC and 1 BC.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치하 전선사령관으로서 BC.6년 라인강을 건너 게르마니아 영토 깊숙히 엘베강까지(옅은 황색) 진출했으나 BC.1년에 방위선을 라인강 원위치로 철수했다.
서기14년 77세에 44년간의 제국통치를 마감하고 티베리우스에 讓位한 아우구스투스는 유언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무자비한 운명이 나에게서 가이우스와 루키우스 두 자식마저도 앗아간터에 티베리우스에 유산의 2분의 1을 양여한다>
아우구스투스의 무남독녀 율리아가 낳아 일찍이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삼아 손수 키운 가이우스와 루키우스 형제는 벌써 10년 전, 하나는 23세 다른 하나는 18세 청춘에 세상을 떴다. 우리로 치면 외손주뻘이지만 로마제국의 황통 계승자들이었다.
그렇게도 혈통을 중시한 아우구스투스도 자식복을 얻지못해 혈연과는 무관한 티베리우스에 황위를 계승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한이 유언장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로마 황제의 정식 취임은 전임자의 지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원로원과 로마시민 쌍방의 승인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戴冠式이 없는 로마 황제는 고대 여타국의 황제와는 달리 원로원의 의결과 시민회의
찬성 환호로 비로서 정식 황제가 된다.
원로원과 시민이 승인한다는 것은 통치를 委託한다는 의미이다
근대 민주국가의 主權在民 사상이 고대로마에서 비록된 것이라고 보면 되다.
다만 현대의 선출직은 임기가 한정되나 황제는 종신직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편 고대로마의 국가원수가 갖는 권위와 권력관게는 다음과같이정리된다.
첫째, 로마 전군의 최고사령관 지위에 오른다.
둘째, 본국 이탈리아와 수도 로마의 보안을 책임지는 근위군단의 지휘궈을 갖는다.
세째, 원로원속주와 황제속주로 양분된 속주 주 황제속주 통치권을 갖는다.
네째, 원로원이 파견하는 속주총독에 의해 통치되는 원로원속주를 포함한 전속주의
징세권도 황제가 임명하는 황제재무관 소관이다.
다섯째, 호민관특권을 갖고 평민집회 소집권을 행사한다.
호민관특권은 황제가 원로원의 의결사항을 평민집회를 통해 가부를 재정 할수
있는, 요즘으로치면 국회가 부결하거나 가결하더라도 국민투표로 가부를 번복
할 수있는 제도이다.또 지금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갖는 강력한 권리와
같은 거부권(veto)도 행사할 수있다.지금의 Veto는 여기서 유래한다.
여섯째, 로마제국 원수는 勅令으로 불리는 잠정조치령의 발동권을 갖는다.
일곱째, 모든 행정관의 임명권을 갖는다. 임명권이 없는 고급행정관일지라도 추천권이
있다.
여덟째, 로마시민은 控訴權이 인정되었으나 그것마자도 황제 관할 하에 두어 최고재판
장역까지 겸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쥐는 원수는 세습이다.
이것이 고대로마의 통치권자 황제의 실상이었다.
공화정 시대 위기관리 목적으로 임명하는 6개월 임기의 독재관과 다를바 없다
호민관특권은 황제가 원로원의 의결사항을 평민집회를 통해 可否를 裁定 할수있는,.
요즘으로치면 국회가 부결하거나 가결하더라도 구민투표로 이를 번복할 수있는
제도이다. 또 지금의 유엔 安保理 상임이사국이 갖는 강력한 권리 거부권(veto)도
행사할 수있다.
14년간의 내전끝에 이토록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획득하고 44년간 사실상 전제통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는 한번도 황제칭호로 자처한 적이 없다.
시민에 대해서는 Princeps, 제1인자에 불과하고 권위는 가지나 권력에서는 동지들과
다를바 없다고 호언하면서 병사들에 대해서만 Imperatol, 황제로 자처하며 군최고지휘권을 행사했다.
로마의 공화정체를 제국정체로 바꾸고자 노골적으로 시도한 카에사르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를 잘 아는 아우구스투스는 역시 탁월한 정략가였다.
아우구스투스가 이처럼 철저하게 다져놓은 권위와 권력을 지닌 황제의 지위를 자기 혈통에 계승시키고자 왜 집착을 했는지 후세인들은 이해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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