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45-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들 2대황제 티베리우스
황제의 義子 티베리우스- 도울수스 형제는 성실하고 용감하였다
후세가 보는 로마제국은 일견 순탄하게 역사를 이어온 것으로 비치나 내막은 그 반대였다.
아우구스투스 통치 44년간에도 북방의 게르만족 문제는 地政學적으로 로마제국의 최대 현안이었다.
그리스어로 대지를 이르는 geo와 정치의 politica의 합성어 geo-politica, 지정학은
로마인에 있어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제국의 防衛線이라는 실제 문제였다.
라인江을 방위선으로 정하기 전에 카에사르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게르만민족과 싸왔고, 단기간이었지만 두 차례 라인江을 건너 진격해서 자기 발로 게르만 땅을 밟고 자기눈으로 직접 게르만人을 확인했다.
그러나 방위선을 라인강에서 엘베江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기 전의 아우구스투스는 屬州시찰차 현 독일의 토리아에 발을 딛긴했으나 라인강을 시야에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없다.
아우구스투스는 생전 카에사르의 지시로 안토니우스가 암살 후 완성한 山河와 로마식 街道網까지 그려진 이탈리아본국 지도를 항상 곁에 두고 있었다.
지도를 숙지하고 제국 통치를 해 온 아우구스투스는 방위선을 라인강에서 훨신 동북에 위치한 엘베강으로 옮기면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잇는 방위선이 5백킬로가 단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마군의 게르만 침공은 BC.12년을 기해 시작되었다.
간헐적으로 중단기간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AD.9년까지 20년간, 최종적으로는 16년까지 계속되었다.
카에사르와는 달리 라인강에서 엘베강으로의 방위선 이동에 집착한 아우구스투스는 전투를 직접 진두지휘 경험은 없지만 오른팔 역할의 아그리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BC.12년 아그리파의 작고로 게르만 대책은 성실과 용기를 겸비한 처 리비아의 의붓자식 티베리우스와 도울수스 형제에 맡겨졌다.
카에사르의 <갈리아전기>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라인강 以東에 사는 게르만족의 특색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융합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게르만족은 양측 거주지 간에 황무지를 만들고 年貢金을 징수하는 이외는 접촉을 꺼려온 그들이었다.
게르만민족은 라인과 도나우 두 강을 경계로한 서쪽과 남쪽의 로마人 이외에 두려운 상대가 없었다.
게르만 침공을 결행한 당초의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게르만민족을 한 문명권에 융합시킬 수있다고 오판했던 것같다.
어떻든 당초의 침공전과는 화려했고 로미인은 열광했으며 아우구스투스도 아그리파를 잃은 자리를 두 의붓자식들이 메웠다고 생각했다.
도나우강 방위선의 확립에 전념하는 티베리우스와 그 군단을 동쪽으로, 게르마니니아 진공을 맡은 북방전선은 동생 도울수스가 이끄는 5개 군단이 담당했다.
지금의 비인이나 부다페스트를 기지화하는 등 조용히 그러나 착실히 도나우강 이남을 제압해간 티베리우스에 대하여 도울수스의 게르마니아전선은 작전부터 북해로부터 남진하는 전법을 구사하는 등 전법이 요란했다.
지금의 유트레히트 근처에 운하를 파고 라인강과 아이세르灣을 연결해서 라인강에 준비한 船團에 병력을 실어 먼저 北海로 빠진다. 다음 동으로 향해 연안을 항해해서 더 동쪽에서 북해로 흐르는 또하나의 강 에무스강 하구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 게르나니아의 심장부를 찌르는 작전이었다.
현대전으로 치면 적 후방에 공정대를 투하하는 작전이었다.
北으로부터의 낙하산부대에 대해 西쪽의 라인강으로부터도 아군을 東進시킨다면 큰 전과를 올릴 수있다고 생각하지만 도나우강 남쪽 연안지방의 제압작전도 동시에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는 군사력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BC.12년의 이 진공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에무스강 중류에 상륙한 도울수스군은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웨저江까지 도달했다. 게르만부족들을 차례로 격파해 나가는 진공이었다.
게르만측도 남쪽 로마인이 이와같은 전법을 구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중해에 비해 북해는 여름에도 거칠었다. 에무스강이라면 지금의 네덜란드와의 국경에 가까우나 웨저강은 완전히 독일의 중앙부에 있다.
수도 로마에서 이 전과를 보고 받은 로마인들이 갈리아민족에 이어 게르만민족까지 정복할 수있다고 생각한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다음해 BC.11년 젊은 장군 도울수스는 게르마니아진공로를 바뀄다.
라인강변 기지 쿠산텐으로부터 라인강 넘어 동쪽으로 진격하는 루트를 취해 로마군은 게르마니아의 심장부에 도달했다.
웨저강의 중류로부터 冬營地 라인강 서역의 기지에 돌아오는 루트도 크게 북쪽으로
우회로를 택했다. 로마군의 制覇作戰은 적을 처부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략요지에 요새를 구축하고 도로를 닦고 강에 다리를 놓는 공병작전까지 겸행한다.
이듬해 BC.10년, 도울수스는 드디어 최종목표 엘베강을 향한 2년의 대진격작전을 구상하고 라인까지 귀환하지 않고 게르마니아의 심장부에서 겨울나기를 할 생각이었다.
한편 도울수스는 혁혁한 전공을 안고 28세 젊은 나이에 집정관에 선출된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로마시민도 이 약관에 크게 기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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