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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사Digest 帝國篇-42-
The Appian Way (Via Appia), a road connecting the city of Rome to the southern parts of Italy, remains usable even today. 2천 여년의 흔적을 남긴 아피아街道, 로마에서 반도 남부로 뻗는 최초의 로마가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사회간접자본이라거나 하부구조라거나 오늘날 어떻게 번역을 하든 영어의
infrastructure는 라틴어의 infrastructtura에 어원을 둔 단어다.
infra는 라틴어의 하부 기반을 의미하고 구조 건축을 의미하는 structura와 합성어가 된것이다.
그만큼 로마인은 인프라의 중요성에 눈떴고 현대인으로부터 인프라의 아버지라 불리는 민족이다.
로마인이 생각하는 인프라에는 하드웨어로 道路 橋梁 港灣 神殿 公會堂 廣場 劇場 圓型鬪技場 競技場 公衆沐浴湯 公衆水道 모두가 포함된다.
소프트웨어에는 安全保章 治安 稅制에 더하여 醫療 敎育 郵便 通貨제도까지 들어간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모든 기초시설과 제도가 로마인이 생각하는 인프라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첫째 사업이 가로망 건설이었다.
잘 사는만큼 사회공헌도가 높아야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철저한 로마사회는 공화정편에서도 기 언급했듯이 상류게급이 국방에도 중책을 맡고 희생도 많은 것처럼 사재로 공공시설을 축조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공화정 시대, 위에서 보는 사진은 BC.312년에 원로원 의원이자 재무관 아피우스 크라디우스가 제의해서 부설된 아피아가도로 그 대표적 사례다. 아피아가도는 로마가도의 어머니라 불린다.
이렇게 로마 전성기에 부설되어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는 로마 간선도로만도 다음 국도 9개 로선에 이른다. (개요만 말하기보다 나열해서 혹시 테마여행 필요에 도음이 된다면...)
1호선= 아우렐리아街道(SS.1. Via Aurelia), BC.241년 건설, 로마~제노아
2호선= 카시아가도(SS.2. Via Cassia), BC.154년 건설, 로마~피렌체
3호선= 플라미니아가도(VV.3. Via Flaminiia), BC. 220년 건설, 로마~리미니
4호선= 살라리아가도(SS.4. Salaria), 아피아가도 이전 건설, 로마~포르트피체노
5호선= 티부르티나가도(SS.5.Via Tiburtina), 아피아가도 이전 건설, 로마~페스카라
6호선= 라티나가도(SS.6. Via Latina), 아피아가도 이전 건설, 로마~카푸아
7호선= 아피아가도(SS.7. Appia), BC. 312년 건설, 로마~카푸아
8호선= 오스티엔세가도(SS.8.Via Ostiense), 아피아가도 이전 건설, 로마~外港 오스티아
9호선= 에밀리아가도(SS.9. Via Aemilia), BC. 187년 건설, 리미니~피아첸차
(SS는 Strada Statale, 국도의 약자)
2천년 전에 건설한 로마가도가 지금도 국도로서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은 현대의 로마人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당시 로마인들이 지리적 조건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 설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심장으로부터 육체 말단까지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이 로마가도였다.
수도 로마를 벗어나면서 12개 노선이었던 로마가도는 酷寒의 북해에서 酷暑의 사하라사막까지 그리고 대서양에서 중동의 유프라테스江, 잉글랜드에서 시리아, 독일에서 발칸이나 이집트까지 망라한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지는 동안 돌(石)포장 간선도로만도 3백 75개 노선을 헤아려 그 전장이 8만 킬로에 달한다.
자갈포장의 국지선까지 포함하면 그 길이가 장장 15만킬로가 넘는다.
로마제국이라는 생체 인간의 육체로 비유하면 로마가도는 심장 로마에서 흐르는 피가 대동맥을 통해 발끝 손끝까지 모세혈관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그뿐이 아니다.
인프라의 개념이 철저한 로마인은 제국 방방곡곡에 부설한 가로망을 한치 오차없이 이용 할줄 알았다.
통치력의 효율화에서 출발한 로마가도는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은 로마에 이롭지않다고 판단한 카에사르의 방어선 개념에 충실히 따라 아우구스투스 통치 40년 간에 거의 완성을 보았다.
현장에 가보지않고서는 정세 판단이 안섰던 그 옛날, 통신과 교통이 전무하던 시절,도로망은 무엇보다 군비 절감효과가 컸다.
5천 킬로에 달하는 방위선에 상비군을 주둔시킨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로마가도였던 것이다.
외침이 발생하면 로마가도를 통해 신속히 로마에 알리고 가도를 통해 또 신속히 방위군을 이동시켰다.
뿐만 아니라 평시에는 제국 신민에게 旅路 역할을 충실히 했고 물자교류가 그 길을 통해 이루어져 제국 영토가 하나의 문명권을 이뤘다.
가도에는 1.5킬로마다 로마를 기점으로 이정표가 서고 우편마차가 정기적으로 왕래했다.
요새같은 여객 숙박시설까지, 즉 모텔이라는 것이 벌써 당시에 성황을 이루어 민간경제가 번성했다.
서양 로마에 길이 사통팔달로 뚤리는 BC.3 4세기에 동방의 중국에는 사람의 오감을 가로 막는 성벽이 세워졌다.
진시황의 만리장성과 로마가도가 어떤 문명의 차이를 보였는가? 생각하게 된다.
교류와 소통은 인류문명의 공유를 가져오는 첩경이다.
2천년의 시간과 2만리의 공간을 격한 대한민국에 고속도로가 뚫리고 우편개념이 바뀐 IT통신이 발달한 것은 뭣을 이미하는가.
이 글을 쓰며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독일에 돈 빌리러가서 아우토반을 달리며 떠올린 그의 선각자적 혜안을 경부고속도로에 투영해 본다.
영명한 지도자 하나의 힘이 뭣을 의미하는가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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