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카에사르-폼페이우스간 世紀의 대결, 파르살루스大會戰 (1)
兩軍 집결 포진실황
지금의 그리스 중북부 데사리아地方의 한 작은 농촌 마을 파르살루스(Pharsalus)의 평원은 높지않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이다.
여기가 2천 여년 전 카에사르와 폼페이우스 두 명장 간의 세기의 대결이 없었다면 지금도 밀밭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평원 북쪽에는 다리 없이도 건널 수있는 작은 개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BC.48년 7월 29일 도우라큠 공방전서 후퇴하여 이곳에 도착한 카에사르는 에냐티아 로마街道를 우회하여 추적해오는 폼페이우스를 기다렸다.
사방 20킬로의 평원이면 넓이로 보아 병력 수가 적은 카에사르에게는 불리하다.
특히 기동력이 우수한 기마병의 열세를 생가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먼저 도착한 쪽이 지형상 유리한 지점을 골라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상례이겠으나 고지를 마다하고 평지에 터를 잡은 까닭은 뭔가?
광활한 평원에서도 戰場은 한정된 구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뿐만아니라 더구나 수적 열세였기에 戰勢 주도권을 선제공격으로 잡을 심산이었으리라.
북쪽으로부터 온 폼페이우스는 평원 중앙부에 위치한 고지를 진영으로 잡았다.
양군 전력은 후세의 연구에서도 정확성의 보증된 카에사르의 <내란기>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폼페이우스측,
중장보병 110개 대대 45,000
폼페이우스 직할부대 2,000
기병 7,000
계 54,000 외 진지 수비병 4,000 플러스
카에사르측,
중장보병 80개 대대 22,000
기병 1,000
계 23,000 이 중 진지 수비병 500 마이너스
그러나 카에사르는 회전 개시와 동시에 진지 수비는 비우고 전 전력을 투입하게된다.
병력비는 100대 39.6, 카에사르측의 절대 열세이다.
참고로 카에사르는 전술단위를 군단이 아닌 대대단위로 하기 때문에 대대 수를 기록했으나 대대 병력 수에 있어서는 카에사르측은 평균 275명인데 비해 폼페이우스측은 430명으로 구성된다. 총 병력수의 차이 때문이다.
진지를 구축한 날밤 폼페이우스는 작전회에서 처음으로 전술을 박혔다.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구상은 틀림없이 카에사르의 머리에서도 맴돈 전술이었을것이 틀림 없다. 전술교본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원 전 333년 지중해의 동북단 바다를 서쪽으로 보는 잇소스의 평원에서 그리스 대 페르시아의 회전이 벌어졌다.
후에 대왕으로 추앙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를 주력으로한 그리스연합군은 중장보병 3만 1천에 기병 5천기의 계 3만 6천 병력으로 다리우스가 출진한 페르시아군의 14만 보병에 1만 기병을 더한 15만 대군에 맞붙었다.
당년 23세의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은 右翼에 배치한 기병 5천의 선두에 서서 우선 적의 左翼을 지키는 기병을 격파하고 곧바로 다리우스가 지휘하는 적의 중앙을 공격, 적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보자 거침없이 적 우익의 배후로 돌아 역공을 하는 적극전법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전투는 激動이다. 고로 전장에서는 모든것이 격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그를 눈앞에 보는듯한 전법이다. 그러나 결과는 아군 희생 2백에 적의 전사자 5만이라는 놀라운 전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케도니아군이 바다를 왼쪽에 두는 형태의 포진이다.
때문에 전 기병을 이끌고 바다로 인한 행동 제한이 거의 없는 우익에 선 알렉산드로스의 움직임도 그의 생각대로 격동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를 배우기 위해 그리스어까지 공부한 한니발은 BC.216년 이탈리아반도 남부의 칸네平原(본고 로마사Digest-40, 41- 참고)에서 당시에도 지중해세계 제1의 武名을 떨친 로마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
한니발은 자군 5천 5백의 희생자를 내면서 로마군 7만명의 목숨을 빼아샀다.
알렉산드로스에게서 배운 포위섬멸작전이 奏效한 전과였던 것이다.
당시 한니발의 전력은 보병 4만 기병1만의 계 5만, 에밀리우스와 바트로 두 지휘관이 이끄는 로마군은 보병 8만에 기병 7천 2백의 계 8만7천 2백이었다.
이 한니발에 젊은 로마의 무장 스키피오가 도전한 것은 BC.202년, 지금의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의 튀니지 중부의 자마平原에서 벌어진 회전이었다.
당시 한니발의 전력은 보병 4만 6천에 기병 4천 계 5만, 거기에 코끼리戰團 80두가 가세한다. 한편 스키피오는 보병 3만 4천 기병 6천 계 4만이었다.
역시 포위섬멸작전을 적극 구사한 스키피오의 로마군은 전사자 1천 5백을 내며 카르타고의 한니발군 2만 여를 죽이고 2만을 포로로 잡는 전과로 완승을 거두었다..
靑出於藍이라 할까.
다년간 한니발의 전법을 배운 스키피오가 스승을 이긴 것이다.
이처럼 알렉사드로스의 소수에 의한 다수 제압전술은 오늘날도 세계의 많은나라에서 陸士의 戰術學 교본으로 채택되고 있다.
이상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스키피오의 고대 3대회전이 역사상 유명하지만 카에사르의 퍼얼사르스 회전도 여기에 필적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세기의 회전이다.
폼페이우스 카에사르 당사자들은 물론 회전이 전개되기 전부터 이미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은 것이다. 천 년을 이어갈 로마의 운명이 이 회전의 결과에 따라 現體制의 유지냐 아니면 新秩序의 수립이냐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퍼얼사르스에서의 폼페이우스 전력이 보병 4만 7천에 기병 7천, 카에사르는 보병 2만
2천 기병 1천이면 보병 2 대 1, 기병 7 대 1의 병력 차가 난다.
전술한 3대 회전과 비교하면 보병 기병 모두 劣勢인 카에사르는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밖에 유사성을 구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카에사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의 전법을 따를 것은 못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싸운 것은 아직 기병의 기동력에 눈 뜨지 않은 페르시아 기병이었다.
지금 카에사르가 싸와야하는 상대는 자마회전 이후 백 5십년간 로마군의 전법으로 정착해 온 기병의 활용법을 익히고 있는 로마의 기병인 것이다. 그것도 7배의 상대이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승패를 결정 짓는 기병전력의 지휘를 폼페이우스측에는 오로지 한 사람인 카에사르의 손놀림까지 알고 있는 무장 옛 동지 라비에누스에 맡긴 것을 카에사르는 알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