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史Digest 제국편-35-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는 해상도주하고 3백 여척 배는 불살라지고 두 남녀의 종말은....
해전에서 배의 돛은 전투에 방해가 된다는 이치는 지난번 언급한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는 처절한 전투장면을 목도하고 한 여인의 본성으로 돌아가 거대한 보라색 돛을 올리고 전장을 이탈, 해상도주를 시도했다.
이를 본 안토니우스도 돛을 올려 아군 전선들을 방치한채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라 역시 전장을 뒤로하고 남쪽을 향해 전력 도주했다.
BC. 31년 9월 2일 날씨 청명한 그리스 서해안 악티움해전의 불꽃이 튄지 수 시간 후의 상황이었다. 안토니우스의 450척과 옥타비아누스의 400척의 군선이 마주친 역사적 대해전은 옥타비아누스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그리파가 실질 지휘한 옥타비아누스군이 敵船을 프레비자灣의 좁은 입구로 몰아넣자 全船이 노를 높히 들고 항복했다.
도주 중 이 장면을 목도한 안토니우스는 머리를 감싸고 船尾에서 무릎을 꿇은채 꼼짝하지 않았다.안토니우스의 무장으로서의 생명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안토니우스 軍船 3백척 이상이 로마군에 포획되고 옥타비아누스는 적승조원 목숨은 허락했으나 이집트선은 전리품으로해서 선수만 잘라내고 선체는 모조리 불살버렸다.
파트라스港에 대기 중이던 안투니우스의 지상군은 그래도 8일 간이나 사령관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이들 전원도 9일만에 마침내 救命을 약속한 옥타비아누스에 투항했다.
양군 총지휘관 안토니우스와 아그리파의 군사적 재능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안토니우스의 비겁은 악티움해전 참패로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몰락의 길로 이어진다.
동남방향의 이집트로 직행한 크레오파트라와는 반대로 안토니우스는 사랑하는 여인의 뒤를 좇지않고 남족으로 다라나 지금은 리비아땅 키레나이카에 상륙했다.
수중에 수 십척의 군선과 6천의 병력밖에 남지않은 51살의 안토니우스에게는 이미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바닷가 집에 방쿡해서 종일 바다를 바라보는 것말고는......
실의에 찬 그는 그래도 못잊어서 클레오파트라에 편지를 띄웠다.
혼자 내버려둬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아니 버려두고서는 제 신변이 위험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로 오라고 비원의 편지를 연발했다.
또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애원을 무시할만큼 대범한 사내도 아니었다.
결국 알렉산드리아의 궁전에서 재회한 두 남녀는 의기소침한 가운데 날을 보내면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에 재기하도록 격려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그럴 의지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한편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해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아그리파와 함께 육로로 그리스 소아시아 시리아를 거쳐 유유자적 추격 행진을 계속하며 동방 제후들의 승복을 받고 동맹관계를 갱신하는 등 그동안 문란했던 각 屬州統治 체제를 정비하는 로마세계의 재구축작업을 완성해 나갔다.
해가 바뀌어 BC.30년 봄, 시리아까지 와있던 옥타비아누스에게 안토니우스의 편지가 보내왔다.자기는 자결을 할테니 클레오파트라는 도와주기 바란다는 사연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회답도 없었으나 퇴위할테니 자식의 즉위는 인정해 달라는 클레오파트라의 편지에는 무장해제가 선결이라고 답했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나마 일루의 희망을 걸었다.
그녀는 뒤늦게 이번 전쟁은 애당초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간의 세력다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것을 이집트와 로마 간의 전쟁으로 이끈것은 클레오파트라 자신이었고, 그것을 또 이용한 것은 옥타비아누스였다.
폼페이우스의 동방제패에서도 살아남고 , 카에사르에 대해서도 살아남은 이집트왕국이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만 제거하면 이번에도 살아남을 것으로 본 클레오파트라였다.
그녀는 왈실의 재화를 주고 왕국 존속을 흥정하려했다.
그러나 <전사는 부를 만들어도 부로는 전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로마인의 사고를 인식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안토니우스생각은 어땠는가는 알려진 바없으나 그는 로마군 접근을 알자 최후까지 남은 기병대를 이끌고 적을 맞아 출진했다.
7월 31일, 옥타비아누스의 선발 기병대와의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측의 승리로 끝나려는 순간 전세가 역전되고말았다. 안토니우스의 기병들이 몽땅 로마군편으로 등을 돌린 것이다.
거기에 클레오파트라의 부음이 사자편에 전해왔다.
안토니우스에게 그녀는 죽었다고 알려온 것이다.
부하의 배반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이 이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안토니우스를 절망시켰다.
51살의 무이은 부리는 노예더러 칼을 주며 내 가슴을 찌르라고 명령했다.
주인의 명령대로 칼을 받아든 충복은 차마 주인의 가슴대신 제 가슴을 찌르고 죽었다.
안토니우스라는 인간은 자결조차 할 용기가 없는 브끄러움으로 노예의 가슴에서 칼을 뽑아 자신을 찔렀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