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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사Digest 제국편-34-
*기원전 전쟁에서 전술심리학까지 원용하는 옥타비아누스의 지혜가 돋보인다.

The Battle of Actium, by Lorenzo Castro, painted 1672, National Maritime Museum, London
(BC.31년 로마제국의 첫 주인을 가른 옥타비아누스의 대 안토니우스 악티움大捷)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베푸는 주연으로 밤마다 술에 젖어 호사를 누리는 안토니우스였으나
그래도 무인이라 군대편성에까지는 클레오파트라의 입김이 닿지않도록 애썼다.
정규 로마군을 맞아 싸울울 안토니우스軍의 육군은 重裝步兵 6만 5천에 弓兵 投石兵 등 경장보병이 2만,
거기에 1만 2천의 騎兵이 가세한다.
해군은 60척의 대형함과 연락용 쾌속선 5척을 더해 8개분대의 총 520척으로 편성된 대함대다.
클레오파트라가 타는 旗艦 안토니우스號는 노 하나를 열 명이 젓는 10段層船이고 안토니우스와 장군들의
지휘함은 모두 5단층선으로 편성됐다.
노꾼이 많아 전투요원 모두가 승선하면 함선 520척에 총 15만의 대병력이다.
육해군의 군비 대부분은 이집트가 댄다.
클레오파트라도 난생 처음 배짱것 대승의 꿈을 걸고 나왔다.
한편 로마군 전력은 육상전력에서는 互角勢로 8만의 중장보병에 1만 2천의 기병으로 편성되고 해상전력은
옥타비아누스의 기함과 아그리파의 지휘함 등 5척의 5단층선을 포함해 주력 3단층선 총 400척으로 상대적
열세이다.
노 하나를 10명이 저으면 10마력, 3명이 저으면 3마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로마 군선은 마력에서는 이집트에 열세이지만 아그리파가 고안한 함파크라는 일종의 화포를 전함선에 갖추고 있어 화력에서는 우세하다. 불을 붙여 적선에 투척해서 화재를 일으키는 상대가 갖추지 못한
치명적 무기이다.
그리고 선수를 종래보다 단단히 뾰족하게 개량해서 적선에 돌진하여 격침시키는 돌격력이 뛰어나다.
한편 전 함선이 상대적으로 선체가 작기때문에 좌우 전후 회전속도가 빨라 민속한 전투력에서는 유리하다.
BC.31년 3월 옥타비아누스는 전전력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갔다.
안토니우스는 전해 겨울부터 그리스의 파트라스에 본진을 두고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월동을 하고있다.
로마군의 그리스북서부 상륙으로 전단은 언제든지 떨어질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략이었다.
로마군은 육상이든 해상이든 어디서든 안토니우스측이 원하는 곳에 구애받지 않을 테세다.
그러나 안토니우스 휘하의 장군들은 육전에 익숙하기 때문에 지상전 선행을 주장했으나 이 대도박의
錢主 클레오파트라의 생각은 달랐다.
해군력의 우세를 내세워 바다에서 먼저 싸우고 세 불리하면 이집트로 적을 유인하여 거기서 적을 섬멸하면 된다는 것이 클레오파트라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장군들은 적의 손이 안미치는 프레비자 내항 깊숙히 함대를 온존시키고 있는 것자체가 벌써
전략적 위위를 점한 것인데 굳이 함선을 끌어내 해전을 선행한다는 것은 전략적 잘못이라고 반대했다.
그리고 해전서 승리하면 온전한 배에 8만의 대군을 태와 이탈리아반도 남단에 상륙해서 로마로 진격해 일거에 적을 재압한다는 생각이었다.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작전회의가 거듭되면서 결론이 내려지지않자 안토니우스에게 결정을
일임키로 했다.
그러나 그는 애인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라 나름의 판단으로 해상전 우선을 결정한다.
옥타비우스군의 골격을 이루는 <百人隊長>들에 겁을 먹었기때문이다.
카에사르 휘하에서 로마군단장 경험이 많은 안토니우스는 용맹성과 전투력이 강한 백인대장들의 전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안토비우스였다. 해상에서라면 카에사르 백인대장들의 위력은 감소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1급 사령관이라면 一戰에 모든 것을 거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장병들의 전의를 북도아 이끌어야한다.
비록 자신은 머리 속에는 그리고 있을지라도 싸움에 임하는 장병들에게 퇴로는 없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총사령관의 그릇이다. 안토니우스는 여기에 미치지못한 지휘관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작전회의에 열석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장군들은 懷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로마가 아닌 클레오파트라의 남편 안토니우스에 충성을 바쳐야하느냐?
그건 아니라고 깨닫기 시작한 장군들의 이탈이 이어졌다.
이미 로마 정규의 옥타비아누스軍이 그리스에 상륙한 시점이다.
작전회의는 빗살이 빠진듯이 여기저기 공석이 눈에 띄기시작했다.
미칠듯이 화가 난 안토니우스는 탈출병이 잡히는대로 처형했으나 그럴수록 탈주의 굴렁쇠는 더 빨리
굴렀다.
보급과 전력의 우세를 믿고 서두름 없이 상대편의 소모를 기다리던 안토니우스쪽이 더 다급해졌다.
반대로 옥타비아누스는 급할게 없었다.
32살 먹은 젊은 지휘관은 안토니우스 진영을 탈출해오는 장병들의 진술에서 적정을 충분히 살피면서
때를 기다리면 되었다.
안토니우스를 이탈은 했지만 차마 그를 향해 활을 당길 수는 없다는 장병들은 자군 편입대신 서슴없이
귀향조치했다. 옥타비아누스의 이 심리전술이 안토니우스 진영에 알려지자 탈주행렬은 가속되었다.
해전에서는 내 배를 어느만큼 뜻대로 움직일 수있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艦砲가 활용되는 넬슨 시대 이전까지는 해전이라도 적선에 접근해서 갈아타고 싸우는 백병전이었다.
당연히 돛은 내리고 노만을 이용해 풍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신속히 船首의 방향전환을 하는 소형선이 접전에서는 유리할 수있었다.
프레비자 항내 육지에 대기중이던 안토니우스군 병졸들은 출진명령을 받고 배에 올랐을 때 아연했다.
戰船의 돛은 배의 짐만 될뿐 실전에서는 오히려 장애물 같은 것인데 그 돛이 항시라도 돛대에 걸어 올릴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상탈주를 의미했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는 전쟁의지가 없다는 의미였다.
결정적 해전에서 명지휘관들은 전투에 방해되는 돛을 아에 륙상 어디에 거치해두고 해전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부연해 두고 다음 회에 실전상황을 중계하기로 한다. -계속-
다녀올 데가있어 잠시 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