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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史Digest 제국편-32-
* 안토니우스의 그칠 줄모르는 거짓 行步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원정 간다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와서 4년만에 클레오파트라를 다시 만나
로마法에 금지된 이중결혼을 했다.
16개 군단 11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명색이 파르티아 설욕원정을 떠나면서 제일 먼저 한것이 로마의 임신 중인 본처 옥타비아를 버려두고 헬레니즘 전통의식에 따른 클레오파트라와의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이어 결혼선물로 로마 지배 하의 동방제국을 클레오파트라에 증여한다는 약속이다.
로마人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중년신혼의 단맛에 젖어 원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해를 넘겨 BC.36년 3월에 겨우 출발하여 10월까지 8개월 간 치룬 원정의 결산은 11만 대군을 거느리고도 4만의 파르티아군 기병단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안티오키아로 쫓겨온 것으로 끝났다.
애당초 총사령관급 재목이 못되는 군단장급의 안토니우스는 본격적인 회전 한 번 시도하지 못한채 한 번 써보지도 못한 攻城器와 2개 군단 병력 그리고 군보급물자를 모두 잃고 퇴각한 것이다.
11월 시리아에 퇴각해온 로마군은 주력 군단병만도 3분의 2가 줄어 있었다.
카에사르의 유업을 실행한답시고 나선 파르티아원정은 죽을 쑤고만 것이다.
시리아에 와서 안토니우스가 유일하게 한 것은 클레오파트라에 急使를 보내 안티오키아에 와달라는 애원이었다. 절망한 46살의 남자가 가야 할곳은 사랑하는 여인의 품속밖에 없었으리라.....
로마에서는 파르티아원정 실패를 한 달도 되지않아 알았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와 함께 당시 일리리아地方이라 불리는 아드리아海 동부연안 일대의 제압에 전념하고 있어 안토니우스에 원군을 보낼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빨리 지원물자를 구입하고 군자금을 마련해 2천의 병력까지 모집해서 안토니우스에 직전 보내려한 것은 버림받은줄도 모르는 본처 옥타비아였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가 그리스의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편지를 보내, 물자와 돈은 놔두고 어서 로마로 돌아가라고 했다. 처 옥타비아는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아내의 의무를 다했다.
이를 안 동생 옥타비아누스는 노해 누이를 나무랬으나 그 누이는 로마인의 아내로서의 귀감을 보였을뿐이라고 대꾸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비뚤어진 사람, 올곧은 사람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었다는 교훈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사회 현상을 보며 善惡 正邪의 잣대를 새삼 생각해 본다.
* 끝없는 虛張聲勢, 마치 로마세계가 사유물인양 동반부를 클레오트라家에 준다고 선언하기도

Caesarion, from the "Unravel the Mystery" Cleopatra exhibit
(카에사르-클레오의 아들 카에사리온, 제국건설과정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살해되다.)
<인간의 약점이라면 그처럼 깊은 理解를 표시한 영국의 세익스피어였으나 율리우스 카에사르같은 인물의 위대함은 알지못했다>고 같은 영국의 20세기 작가 버나드 쇼가 말했다. 작품 <쥴리어스 시저>는 졸작이라는 평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역시 걸작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파르티아원정에서 죽을 쑤고 돌아와 낙담하고 자신을 잃은 안토니우스 곁에 클레오파트라가 달려왔다.
패장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자금과 물자를 가득 싣고온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격려했다.그의 실패는 곧 그녀의 실패이기에 재기를 설득한 것이다.
한번 혼이 난 파르티아는 건드리지말고 힘이 약한 곳 하나를 골라 치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르메니아가 원정 대상이었다.
1년을 허송하고 BC.34 봄 아르메니아원정에서 싸움 없이 강화를 맺고 철군하면서 아르메니아왕의 딸과 안토니-클레오 간에 낳은 아들을 결호시킨다는 혼약을 맺었다.
이 약혼이 공공기물인 로마군단을 이끌고 들어가 사유물처럼 이용한 결과물인 것을 로마人들이 모를리 없었다.
이보다 더 가관인 것은 아르메니아원정을 승리로 가장한 안토니우스의 승전 개선식인데 그것도 로마가 아닌 딴나라 알렉산드리아에서의 개선식이었던 것이다.
그리스계와 이집트계 군중이 보는 가운데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타고 난생 처음 맛본 개선식을 마친 48살의 안토니우스는 또하나 기상천외의 선언으로 로마인들을 아연케한다.
여자에 홀린 남자 다 그런 것인지?
홤금 옥좌에 앉은 클레오파트라와 자녀들 앞에서의 선언이다.
1. 클레오파트라와 카에사르는 정식으로 결혼했으므로 둘 사이의 13살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카에사르는 카에사르의 嫡子이다.
2. 클레오파트라는 왕 중의 女王이며 프톨레마이오스 카에사르는 왕 중의 王이다.
3. 6살의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에게는 유프라테스강 동쪽 아르메니아國과 메디아 그리고 파르티아王國을 준다.
4. 마찬가지로 6살의 클레오파트라 세레네스에게는 키레나이카와 리비아 두 王國을 준다.
5. 그리고 2살의 프톨레마이오스 피라델포스에게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즉 유프라테스강에서부터 헬레스폰토스海峽까지의 시리아와 小아시아를 준다.
6. 끝으로 이들 모두를 통괄하는 이집트帝國은 클레오파트라와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카에사르의 共同統治로 한다.
모두가 귀를 의심케하는 몽유병자의 잠꼬대였다.
결과도 그렇게 끝났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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