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머史Digesr-28-
(BC.44년 폼페이우스입상 앞에서 카에사르를 난자하는 브루투스 등 14인의 암살자들)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통합전선 펴고 그리스에 상륙, 주모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에
伸寃雪恥하다.
키케로가 죽은 이듬해 BC.42년은 상징적 사건 하나로 막이 열렸다.
고대로마의 1월 1일은 국경일도 아니므로 휴일도 아니다.
단지 새해 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정월 초하루에 열린 원로원회의에서 죽은 카에사르의 神格化가 의결된 것이다.
카에사르는 신이 되었다.
실재 인물로 신이 된 것은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 말고는 카에사르가 최초의 예이다.
합리주의자 카에사르가 이를 안다면 파안대소하며 사랑했던 女人들도 神과 사랑을 나누었으니 얼마나 영광이었을까 하고 농담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나이 20세의 집정관 옥타비아누스가 카에사르의 신격화를 도모한 데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적들을 격파하기에는 아직은 자기의 힘이 모자란다고 본 그는 반드시 안토니우스와의 통일전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多神敎 민족인 로마인으로서 카에사르의 억울한 죽음의 한을 푸는 伸寃雪恥에는 마음이 없고 자기 세력 증강에만 열심인 안토니우스에 대의명분을 주기 위해서였다.
로마인을 수호하는 諸神의 일원인 된 카에사르를 죽인 자는 로마인으로서 보면 방치해서는 안될 공동의 적이기때문이다,
이렇게해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하나된 통일전선을 형성, 그해 여름 19개 군단이 아드리아海를 건너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있는 그리스에 상륙했다.
출진에 앞서 옥타비아누스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죽이고나서 <復讐의 神>에 바치는 신전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양아버지 카에사르가 봉납한 신전은 <寬容의 神>에 바쳐졌지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망명 2년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반드시 복수를 맹서코 공격해올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맞아 싸울 채비로 2만의 기병 전력을 갖춘 총 10만 대군을 확보하고 기다렸다.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연합군은 기병단 1만 3천에 총병력 12만의 대군으로 공격해 왔다. BC.48년 카에사르와 폼페이우스간 파르살루스 대회전시 병력의 2배가 넘는다.
그리스 북부의 필리피 평원에서 맞붙은 양군은 명장 없는 졸장들의 싸움이었으나
안토니우스 대 카시우스전은 안토니우스가 승리를 거두고 카시우스의 자살로 막을
내렸다.
한편 옥타비아누스 대 브루투스전은 반대로 브루투스측 승리로 재1전을 끝냈다.
그러나 카시우스의 패전 자살, 데키무스의 패전 처형, 정신적 지주 키케로의 처형 등 잇따른 비보를 접한 브루투스는 옥타비아누스와의 제1전을 승리하고도 실의 속에
전의를 잃고, 제규합해서 공격해 오는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연합군에 여지없이
문어져 그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공화정 재건의 기둥이 문어진 것이다.
이렇게해서 양대세력 간의 정치이념을 건 내전은 제국 건설파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옥타비아누스가 열망한 카에사르의 신원설치도 이룬 셈이다.
르네상스 이후 그리스도교 사관의 영향을 받은 일부 작가 사가들이 다신교국 로마사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많으나 결코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로마는 하루 저녁에 쇠망하지도 않았다.
文豪 중 카에사르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세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는 악령에 시달리는 브루투스가 묘사되고 있으나 브루투스가 본것은 자기 苦惱였지 죽인 카에사르의 亡靈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함릿>에 나오는 부왕의 망령은 함릿만이 아니라 侍從들도 보았으나, 브루투스가 본 악령은 그 혼자뿐이 보지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恨이나 怨念 따위로부터는 초월한 카에사르가 원한의 화신인 망령이 되어 나올 까닭이 없다. 악령에 괴로워했는지 아닌지는 그렇다치고 브루투스는 최후 수 개월을 인생을 버린 사람 그자체였다.
브루투스는 전투에 패해 도망가라는 주변 장졸들의 권유도 마다하고 죽음을 택한 것이다. 43세의 자살이었다.
유해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두 적장에 의해 로마식으로 화장되고 유골은 생전 카에사르의 愛人이던 로마의 어머니 세르빌리아에 보내졌다.
브루투스는 내전 초기 폼페이우스군에서 싸왔으나 아머니 세르빌리아의 간곡한 부탁으로 카에사르에 의헤 구출되어 무사히 어머니가 있는 로마에 귀환한바 있다.
원래 그리스유학 출신으로 형이상학에 심취하여 세속적 출세욕이 없던 브루투스는 카에사르에 의해 카시우스와 함께 법무관에 발탁되었으나 공화정파 폼페이우스를 추종하여 카에사르에 대적했고 마침내는 암살단 주모자가 된 변절자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