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로마史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물론,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배울 바가 너무 많습니다.
4.11총선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대선 잠룡들의 暗中摸索劇이 오버랩되면서 2012년 정치
계절은 몹씨 어수선합니다. 그런 가운데 총선기간만 연재를 잠시 쉬려했으나 뜻하지 않게 한 달여를 거르고 다시 시작합니다.
역사교훈
로마史Digest 제국편-24-
옥타비아누스(제정로마 초대 황제)
BC.44년 3월 15일 암살되고 3일 후 화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카에사르의 유해는 재가
되어 로마 지중에 스며들었으나 그 怨魂은 쉬 잠들지 않았다.
주모자 브루투스,카시우스 등 14인의 암살자 일당은 군중의 살해 위협 속에 神殿이나 교외의 친지집에 숨어 지내다 4월에 로마대탈출극이 시작된다.
암살자들은 키케로의 활약으로 집정관 안토니우스를 회유하여 국외 자진망명 형식을
취해 신체상 형벌은 면하는 듯했으나 로마시민들은 이들을 폭력으로 제거할 기세였다.
행동에는 동참하지 않은 암살자들의 정신적 지주, 키케로도 로마시민들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말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성립한다.
기 언급하였듯이 카에사르는 종신독재관에 임명되고 암살자 모두가 포함된 원로원
전원으로부터 상호 신변안전을 약속하는 선서를 받고 거느리던 경호대를 해산한 후
비무장으로 걸어서 원로원에 등원하는 중 불의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무사는 두 말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은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이뤄졌고, 사람 중 상등인간이라는 그들에 의해 자행된 암살은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로마시민들의 생각이었다.
카에사르는 죽어서 시민집회와 원로원에 의해 로마국 시조 로물루스와 함께 國父로
추앙된다.
家父長制가 엄격한 로마사회에서 자행된 카에사르의 암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살부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암살자 일당을 人倫 초악의 <殺父者>로 불렀다.
이런 상황 하에서 카에사르의 사실상 후계자 토대를 쌓는데 매진해온 안토니우스에
감당키어려운 소식이 들려온다.
가에사르가 죽기 6개월 전에 작성하여 女司祭에게 맡겨놓았던 유서가 집정관 안토니
우스에 의해 개봉, 중인환시리에 공개되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한 바있다.
유서 첫항에 기록되어 있는 카에사르의 후계자, 당년 17세의 손주벌되는 옥타비아누
스가 페르시아원정 선발지 그리스에서 귀환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카에사르 암살 한 달 반만에 그리스의 아폴로니아로부터 반도 남단 브린디시에 수명
의 수행원과 함께 상륙한 것이다.
先發地에서 카에사르의 죽음과 공개된 유서 내용을 알게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귀환을 서둘렀으나 주둔지의 로마군단 장군들의 사태관망 권유를 뿌리치고 조속히 돌아가 외조부 카에사르의 유지를 실천해야한다며 귀국한 것이다.
18세 소년 옥타비아누스는 직계상속자가 없는 카에사르에게는 누이의 딸의 아들이므
로 촌 수를 따지는 한국적 사고로는 겨우 인척이 될까 말까한 먼 손주벌이다.
그가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카에사르의 천재적 통찰력에 의한 것이다.
폼페이우스 잔당 소탕을 위한 스페인전선에 동갑내기 아그리파와 함께 참전시켜 거기서두 소년의 재능을 감지하고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후세 사가들은 이를 두고 세계사에 유례 없는 명후계지명이라고 상찬해 마지않는다.
옥티바아누스는 로마에 와서 먼저 집정관 안토니우스를 깍드시 섬기고 카에사르의
文友이며 로마 원로원의 1인자 키케로를 아버자라 부르며 따랐다.
안토니우스와 키케로가 어린내 취급을 해도 그대로 순종하면서 다만 카에사르의 유지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만 골몰했다.
기회를 보아 집정관 안토니우스에게 그가 가져간 카에사르의 금고를 돌려달라고 청원했으나 거절당하고 키케로를 찾아가서는 후원금 모금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후원금이란 카에사르 추도행사로 로마시민을 초청하여 거행할 대운동회 개최 경비를
말한다.
고민 끝에 옥타비아누스는 카에사르 생존시 친교하던 재력 있는 금융업자 마티우스를 찾아가 공손히 부탁했다.
마티우스는 키케로의 친구이기도 했으나 교양 있는 기사계급의 경제인으로 그리스 고전 호머의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번역 출판을 할만큼 카에사르와도 돈독한 문우 관계였다.
아토니우스와 키케로에 대해서는 원망의 빛을 보이지 않은채 마침내는 마티우스로부터
카에사르 추도운동회 경비 일체를 후원 받는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 키케로는 마티우스에 그 소년의 청을 거절하라는 권고 편지를 여러번 보냈
으나 마티우스는 카에사르와의 우의, 그리고 후계자 소년 옥타비아누스의 열의에 감복하고 키케로의 방해를 뿌리쳤던 것이다.
자기를 어린애 취급하는 키케로를 끝까지 존경스런 아버지라 부를만큼 위선을 부릴
줄아는 18세 소년 옥타비아누스는 마침내 생애 첫 대사를 거뜬히 치른다.
7월 중순 로마시민 남녀노소 모두를 초청한 가운데 7일간에 걸쳐 대대적 추도경기가
거행되었다.
시민들은 4개월 전 <3월 15일>을 새삼 떠올리고 56세를 다 채우지못하고 죽임을 당한 카에사르를 애타게 추모했다.
그리고 카에사르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亡父의 유언에 충실히 따라 이들 시민에 3백세스테르티우스씩 유증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기대회도 마지막날 밤 감청색 로마의 여름밤 하늘에는 커다란 慧星이 나타나 사라
졌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카에사르도 이제 승천했다고들 말했다. 이와 간련하여 후세
천문학 연구에서는 이때의 큰 혜성은 <Halley's comet>이라고 한다.
옥타비아누스가 주최해서 성대히 마친 경기대회 이후 로마사회에서 이 소년의 위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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