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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사Digest 제국편 -21-
카에사르의 죽음(2)
23 군데 칼을 맞아 쓰러진 카에사르의 유체 앞에서는 아무도, 안토니우스마자도
죽은 자를 애도하는 말 한마디 입에 올릴 여유가 없었다.
시해자 목격자 인지자 모두 한꺼번에 달아나버렸다. 죽어 말없는 카에사르
사체만이 현장에 방치된채 회의장은 종일 정적만이 감돌았다.
피 묻은 단검을 들고 흰 장옷을 선혈로 물들이며 미친듯이 찌른 브루투스 등은
팔에 저들끼리의 칼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
암살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다가 무아경에서 깨어났을 때는 그 넓은 폼페이우스會廊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없었다. 수위마자도 자취를 감췄다.
브루투스를 선두로 회랑 밖으로 나온 14인의 암살자들은 로마市民이 들으라는 듯이
<자유는 회복되었더> <폭군은 죽었다>고 외쳤으나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공포에 질려 먼져 도망친 원로원 의원들이 도망가며 <카에사르가 죽었다>고 외친
바람에 벌써 變事를 알아채린 시민들은 뿔뿔이 집으로 도망가 문을 굳게 잠근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토록 사람으로 붐비던 로마 도심지가 무인지대로 변해버린 것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로마시민들이 환호성으로 답해 오리라고 생각했던 암살자들은
眼前에 펼처진 정막한 로마를 앞에 하고 카에사르에 칼을 뽑던 순간에 느낀 공포에
휩싸였다. 두번 다시 광란이 그들을 엄습했다.
자아를 잃은 암살자들에게 '자유는 회복되었다, 폭군은 죽었다'고 외치며 정적의
거리를 누빌 용기는 이미 죽어있었다. 당초 계획은 시민 앞에서 브루투스가
연설을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백주 로마포럼에도 사람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옛모습 찾을 수 없는 지금의 카피톨리노언덕)
암살자들은 그대로 카피토리노언덕에 올라갔다.
로마의 諸神 앞에 거사의 성공을 보고하고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카피토리노언덕은 신들만이 모셔진 성역이다.
언덕위에 세워진 신전에 은신하면 안전하다고 범인들은 생각했다.
거기에 變事를 알고 키케로가 달려왔다.
키케로는 아직 피 묻은 칼을 손에 든채의 암살자들을 칭찬한 뒤 당장 원로원회의를 소집해서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체 복귀를 결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주모자 브루투스도 카시우스도 현직 법무관이다.
로마법에서 원로원회의 소집 권한은 법무관에도 인정된다.
특히 수석법무관인 브루투스에게 소집권한이 있다는 것이 키케로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집정관 카에사르는 죽었지만 동료 집정관 안토니우스는 로마에 있다.
법묵관이 소집 할 수있는 것은 집정관 둘 모두가 어떤 사유로 소집 불가능한 경우에 한한다.
집정관 안토니우스를 제처두고 법무관 브루투스가 소집하는 것은 위법이었다.
불가침뿐이랴, 적극적으로 지키기로 서약까지 해준 사람을 죽이는 판에 위법이고
뭐고 따질 처지가 아니었을거라 생각되지만 브루투스는 키케로의 충고를 거부했던
것이다.
원로원회의 소집권은 집정관 안토니우스에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공화정 복귀 가능성은 이 순간 사라진 것이다.
로마 天下大勢의 향방은 여기서 갈렸다.
브루투스도 루비콘江을 건너기는 했지만 카에사르와 달리 건너고나서는
제자리거름을 하고만 것이다.
그러는 동안 카에사르의 유체는 폼페이우스회랑 내 한 구석에 방치된채였다.
사건이 카에사르의 공관에도 전해졌으나 아내 칼푸르니아는 기절을 하고 노예들은
어쩔줄을 몰랐다.
그나마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에 심취해 있던 노예 세 사람이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닌데 폼페이우스회랑에 몰래 들어가 주인의 유체를 로마 포럼 내의 공관이 아닌
수브트라의 사저로 운반해 왔다.
왕진한 의사의 검시로 23 곳의 상처 중 한 곳만이 치명상이었다고 한다.
카피토리노神殿 내에서 키케로와 만난 암살자들은 카에사르의 시체를
그락쿠스형제(농지개혁 주장했다 귀족들에 참살된 전 집정관, 본고 - 16 - 참조)
처럼 테베레江에 던져버리자는 주장이 나와 옥신각신하는 사이 용기 있는 家奴들이
한 발 빨라 카에사르의 유체는 고인의 생가로 운구되었던 것이다.
3월 15일 밤이 되었다.
흥분해 있던 암살자들도 조금은 평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키케로가 노예를 시켜 조사해본 결과 안토니우스 이하 카에사르파 사람들은
집문을 굳게 잠근체 칩거중이라하고 마르스廣場 일대에 숙박하고 있던 카에사르의
베테란兵들도 예기치 않은 변사에 망연자실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노예들은 주인들간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저들끼리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 이런 때
활용된다.
상황이 견착상태라고 판단한 암살자들은 이튼날 아침 로마 포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기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도심지 파라티노언덕에 집을 가진 키케로만은 집에 가는 것이 두려워 생전
카에사르의 친구 금융업자 마티우스(후에 카에사르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를 적극
돕는다) 집에 하룻밤 신세 지기로 했다.
아피아街道변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니 설마 카에사르의 베테란兵들이 카에사르의
친구집까지 처들어오지야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글을 쓰며 겁에 질린 김재규의 갈팡질팡 횡설수설한던 모습 그리고 나타난
全斗煥의 두각, 나는 33년 전 10.26.이 떠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