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사Digest 帝國篇 -20-
BC.4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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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usculum portrait", possibly the only surviving bust of Caesar made during his lifetime
(생존시 만들어져서 남아있는 유일한 카에사르 조상)
아래는 그의 호적
October 49 BC – 15 March 44 BC (as dictator and/or consul)(현직 종신독재관 겸 집정관) |
| Full name |
Gaius Julius Caesar(가문 가계 개인명) |
| Born |
July 100 BC(生) |
| Birthplace |
Subura, Rome(로마 태생) |
| Died |
15 March 44 BC (aged 55)(死) |
| Place of death |
Curia of Pompey, Rome(사망장소 폼페이우스극장) |
| Consort |
Cornelia Cinna minor 84 – 68 BC(전집정관 장인) Pompeia 68 – 63 BC(조강지처)
Calpurnia Pisonis 59 – 44 BC(재취) |
| Offspring |
Julia Caesaris 85/84 – 54 BC(무남독녀 딸) Caesarion 47 – 30 BC(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 낳았다는 실자) Augustus 63 BC – 14 AD (grand-nephew, posthumously adopted as Caesar's son in 44 BC)(누이 딸의 아들로 손주벌되는 양자,후계 초대황제) |
| Royal House |
Julio-Claudian(귀족가문) |
| Father |
Gaius Julius Cæsar(早失한 아버지) |
| Mother |
Aurelia Cotta[1](갈라아戰시에 잃은 홀어머니) |

The Death of Caesar (1867), now in the Walters Art Museum, Baltimore, depicts the assassination in the Theatre of Pompey on the Ides of March. By Jean-Léon Gérôme (11 May 1824 – 10 January 1904) was a French painter and sculptor
(원로원회의 개회 직전 폼페이우스극장에서 경호병 없이 비무장으로 출석 중이던 카에사르를 찌르고 시신을 방치한채 환호하는 암살자들. 프랑스 화가 Jean-Léon Gérôme 1867년 작)
지중해성 기후 로마의 3월은 악천후가 많은 계절이다.
아내 칼푸르니아가 꾸었다는 악몽.
15일을 조심하라고 점쟁이가 조언했다는 불길한 예언.
14일부터 15일 밤까지 로마에 몰아친 폭풍우.
로마 포럼에 새 떼가 모여들었다는 상스럽지 않은 현상.
인간은 백퍼센트 이성적일수만은 없고 그렇다고 백퍼센트 감성적일 수만도 없다.
십 여년을 戰場을 누비면서 로마의 정치에도 소홀함을 보인 적이 없는 카에사르, 그도 군형감각을 잃지 않는 한 로마인이었다.
<3월 15일>은 여러가지 불길한 징조나 예언을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일상과 다르지 않은 날에 음모자들말고 누구 한 사람 예상하지 않은 가운데 돌연히 일어난 참사였다.
2천년 후, <10.26.>궁정동 안가에서 심복들에 의한 단검의 난무대신 총성이 울린 대통령 시해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3월 15일 소집된 원로원회의는 18일의 파르티아(페르시아)원정 출발직전의 카에사르로서는 아내가 악몽으로 잠을 못이룬 것을 핑게로 결석해도 좋을만큼 그런 가벼운 회의가 아니었다.
원정으로 부재 중 2년간 본국과 속주들의 방위와 통치를 맡길 책임자를 공표하는 마지막 기회였기 대문이다. 하지만 카에사르로서 최후의 기회는 음모자들에게도 최후의 기회였던 것이다.
파르티아원정 성공을 염원하는 원로원 의원들이 원정 출발에 앞선 최후의 원로원회의에서 카에사르에 공식으로 王位를 허여할까 암살음모자들은 전전긍긍했다.
카에사르가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로마人 누구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지면 반드시 설욕하는 것이 로마軍의 상례인만큼 더구나 카에사르의 원정이 10년 전 3頭政의 한 축이었던 크라수스를 참패시킨 파르티아이기에 필승은 기정사실이고 개선하는 카에사르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음모자들의 생각이었다.
원정 개선하는 카에사르가 王位를 바란다면 이미 어떠한 방해도 먹혀들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결단을 촉구한 이유다. 그렇다면 파르티아원정 전에 해치우자였던 것이다.
원로원회의는 말로 다투는 場인만큼 예의로 무기 휴대는 일절 금지된다.
카에사르도 동료 의원들도 무방비로 출석하고 수위는 있었으나 무장병은 아니었다.
카에사르는 종래 거느려온 스페인이나 게르만 병정들로 구성된 호위대를 의원 전원으로부터 서약을 받은 직후에 해산한 상태였다. 누구도 거스러서는 안되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일방이 깨버린 것이다.
그날은 심복 테키무스 브루투스가 동행했으나 그 역시 음모자의 한 사람이었다.
주름이 많은 장옷 속에 단검을 숨겨가지고 있던 암살자들에게 한가지 걱정은 검투사 못잖은 강건한 체력의 안토니우스가 마음에 걸렸다.
주모자 카시우스는 이 안토니우스도 죽이자고 주장했으나 "우리는 살인청부인이 아니다"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반대로 표적은 카에사르 하나로 조여졌다.
안토니우스와는 카에사르 휘하 군단장끼리의 격의 없는 트레보니우스가 말을 걸어 그를 의심없이 현장으로부터 격리시키는데 성공했다.
혹시 카에사르 암살이 회의 개회 이후에 결행되었었다면 좌정한 수 백명의 의원들 면전에서 실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암살자 집단의 행동은 민첩했다.
회의 개시 전 의원들의 왕래가 아직 뜸한 때를 골라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것이다.
음모에 가담한 원로원 의원이 60명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증은 없다.
그러나 실행자 14명의 이름은 알려져 있다.
그들 14명도 큰 일을 저지름에 있어 냉정을 잃고 카에사르를 찌른다는 것이 뒤얼힌 속에서 잘못 동지에 상처를 입힌 자도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해 광란상태의 14명이 찌른 결과 카에사르가 받은 상처는 23 군데나 되었다. 그 중 가슴에 받은 두번째 칼만이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한 카에사르는 쓰러졌으면서도 흉하게 보이기 싫어 장옷자락으로 몸을 감싸고 그렇게 의연하게 죽었다. 박정희가 죽으면서 옆사람에게 "나는 괜찮아" 했던 것과 또 뭐가 다를까.
다른 의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망연한 사이 시작되고 끝난 일순간의 참극이었다.
한때 동지이며 적이었던 폼페이우스 입상 아래 쓰러져 죽은 카에사르의 사체를 방치한채 암살자들은 기고만장하여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 "독재자 카에사르는 드디어 죽었다"고 외쳐댔다.
그러나 원로원 회의장은 텅 비었고, 백만 가까운 로마 市內는 白晝에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독재자가 죽었다는데 로마시는 이후 정적 속에 잠기고 암살자들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후폭풍의 예고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