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사Digest 帝國篇-19-

서기 117년 賢帝 트라이아누스황제 전성기의 地中海를 내해로한 로마제국의 版圖(원로원 속주, 황제 직할속주, 종속국)
스페인에 도망간 폼페이우스 잔당 일소로 사실상 내란종식을 거져온 문다會戰의 개선식도 마친 카에사르는 산적한 국가개조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국가의 개조나 개혁이 탁상회의에서 민주절차에 따른 다수결로 이루어진 경우는 동소고금의 역사에 없다. 개조 개혁은 지도자의 가슴에 품어온 혁명적 발상에 의한다.
가까히 박정희의 5.16혁명으로 근대화를 이룬 우리의 현대사가 이를 입증하고 오늘의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에 떠오른 것도 등소평의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었다.
2천 전 로마가 한 창조적 영웅에 의해 천년제국으로 재탄생한 것도 그 맥락이다.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로마나를 확립하고 민생의 충실을 기하면서 帝政化를 기도하여 年曆과 通貨 개혁 이외의 전면적 개혁에 착수한 카에사르가 이룩한 주요 개혁조치를열거하면 이렇다.
1, 북이속주의 도시계획
2. 시칠리아와 나불속주 주민에 라틴시민권 부여
3. 원로원 의원을 6백명에서 9백명으로 증원
4. 시민집회와 호민관제의 유명무실화
5. 금 은 환률의 고정화
6. 이자율 상한제 설정
7. 법무관 경리검사관 안찰관(윤리관)의 증원
8. 지방의회 피선거권 개정(군필자 등용)
9. 해방노예의 공직 문호개방
10.18개 속주 재편성과 속주의회제 승인
11.공영 징세기관 설치(종래, 입찰제에 의한 사설징세원제)
12.유피테르(주피터) 유노 미네르바를 로마의 主神으로규정
13.센프로니우스法에 의한 원로원최종권고제 폐지(이 제도에 의해 카에사르가 국적
이 되다)
14.사법제개혁 베심원자격 개정
15.극빈자 식량무료배급자 30만에서 15만으로 감축
16.심사안찰관 신설
17.실업자 제대자 속주식민지로 분산 정착
18.북아의 카르타고와 그리스의 코린토 재부흥(로마에 극한 항쟁으로 소금까지 뿌려
폐허된 도시)
19.로마세계 내의 교사와 의사 모두에 로마시민권 부여
20.카에사르 포럼 건설
21.로마 포럼 재개발
22.로마 최초의 城 세르비우스성벽 철거(성 내의 로마에서 지중해의 로마로 성장)
이밖에 치안 행정 교통 청소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은 물론 국민생활 윤리규정으로
사치금지법까지 제정 시행했다.
카에사르가 로마인을 스파르타인으로 바꾸려한 것은 아니다.
지나친 통제는 인간성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런 통제는 지속력을 잃게된다.
자유방임도 도가 넘으면 사람들의 질투심을 유발한다.
사치금지법은 생선가게 이외에는 수족관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는 것을 금했을 뿐이다. 부유한 로마인들 사이에 풀장만큼이나 커다란 규모의 양어장을 만들어 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도시 청소문제는 자기집 주변은 자기가 청소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물론 공공장소의 청소는 안찰관의 소관 업무였다.
이상 5.16혁명 후 우리가 겪은 개혁조치와 유사점이 많다.
당시 로마의 인구가 백만에 육박, 도시교통의 혼잡을 피하기 위헤 일몰 전까지는 시가에 마차나 말의 통행을 금지시켰고 특히 유부녀 이외의 가마 이용을 불허했다.
제국으로 가는 길목에 수도 재개발이 빠질 수없다.
위에서 밝힌 소프트웨어개혁에 부합하는 하드웨어가 뒤따른다.
제국 수도의 면모 일신을 위해 고성 세르비우스성벽 철거와 더불어 가로망을 비롯한 대경기장 체르코 마시모, 공회당 카에사르회당 등 공익 건축물 건설이 뒤딸았다.
BC. 45년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카에사르는 44년 1월 동료집정관에 안토니우스가 취임한 후 그에게 내정 일반을 일임하고 향후 2년간 파르티아(페르시아)원정을 조만 떠난다고 공식발표했다.
한 개인의 내일도 보지못하면서 한 제국의 천년 앞을 본 카에사르는 BC.44년 2월 원로원과 시민집회에 의해 종신독재관에 임명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