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사Digest 제국편 -18-
개정 율리우스曆이 BC.45년 1월 1일 시행되고, 카에사르는 산적한 국정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로마세계의 경제 활성화정책의 일환으로 원로원이 기지고 있던 金 銀 銅貨의 주조, 즉 화폐발행권을 신설 국립조폐창으로 옮기는 등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10년 임기의 독재관에 취임하여 산적한 국가개조 사업을 가속화하뎐 중 BC.45년 3월 스페인속주에 도망간 폼페이우스 잔당의 반란이 일어났다.
폼페이우스 장남 그내우스와 차남 세쿠스토우스 형제에 타프소스에서 패주해간 라비에누스와 바로 등이 합세해서 스페인 원주민을 부추겨 일어난 反로마 봉기였다.
원래 로마의 통치에 따르지 않는 스페인 원주민은 기질적으로 로마에 대한 저항과 순종을 반복해온 민족이었다.
카에사르가 군단장급의 페디우스와 파비우스 두 장군을 파견해 스페인 주민을 제압하려했으나 기량 부족으로 원주민세력 대부분을 폼페이우스 측에 빼앗기고 스페인 남부주요도시 코르도바 하나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폼페이우스 잔당은 스페인 원주민군 8만의 군세로 로마의 통치력에 도전해 온것이다.
카에사르는 직접 출정하여 군사적으로 제압하기로 결심했다.
3월 17일 벌어진 문다會戰에서 폼페이우스군 잔당은 최후의 저항을 해왔다.
카에사르는 갈리아兵만으로 편성된 제5군단과 파르살루스회전 이후 이집트까지 종군한 제6군단과 제10군단, 총 4만 8천 병력으로 8만의 폼페이우스軍 잔당을 토벌한다.
폼페이우스 장남 그네우스와 타프소스회전에서 스페인으로 도망간 라비에누스 지휘희의 8만 대군을 상대로 카에사르 측은 전사자 1천, 적은 3만 3천의 전사자를 내고 일방적 승리로 문다회전은 긑났다.
회전에서 라비에누스는 전사하고 그네우스도 부상을 입고 도망가다 붇잡혀 피살되고 차남 세쿠스토우스만이 살아 멀리 대서양연안 산악으로 도주했다.
카에사르가 지휘한 내란시대의 회전은 전사자보다 포로의 수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카에사르가 동포를 죽이기보다 포로로하는 작전이 주효해서였다.
그러난 문다회전만큼은 포로가 없다.
격전끝에 이긴 카에사르의 병사들이 異民族이 많은 적을 생포보다 죽이기 작전으로 했기 때문이다.
라비에누스도 전사함으로써 4년 만에 겨우 카에사르에 대한 적대행위를 멈추었다.
지금까지 폼페이우스에 이겼지만 전승을 축하하는 개선식은 거행하지 않았다고 지난 번에 언급한바 있다.
그러난 이번 문다회전은 지휘관급 소수만이 폼페이우스 부하였으뿐 8만 병력 대부분이 현지 스페인人들이였으므로 문다회전은 개선식으로 전승을 기념했다. 사실상의 내란을 종식한 회전이었다.
현대의 연구가들 중에는 드디어 카에사르도 가면을 벗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으나 카에사르의 생각으로는 문다회전은 어디가지나 정통 로마정부에 대한 반란 진압이었던 것이다.
문다회전 개선장군은 카에사르뿐만 아니라 함께 사운 페디우스와 파비우스 두 군단장도 백마 4두가 그는 전차를 달리는 개선장군으로 대접받았다. 반란군을 진압한 장군으로 대우한 것이다.
마지막 개선식도 끝내고 이미 10년 임기의 독재관에 이명된 카에사르는 바르티아征閥 과제 하나만 남겨놓고 BC. 45년 1녀을 로마세계 재편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