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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훈
로마사Digest 帝國篇 -17-
Fasti Antiates Maiores—Painting of the Roman calendar about 60 BC, before the Julian reform. Observe (enlarged) that it contains the months Quintilis ("QVI") and Sextilis ("SEX"), and displays the intercalary month ("INTER") as the far righthand column.
(紀元 전 7세기 로마 제2대왕 누마가 정비해서 개정 율리우력이 나오기까지 7백년 간 사용되어온 太陰曆)
존재의 개념은 시간과 공간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존재의 한 축 시간의 인식을 오늘날 우리가 일상 쓰고 있는 달력에서 찾아보자.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를 내해로해서 동서남북 공간을 확보한 카에사르는
시간의 동시성 확보에 착안, 국가 개조의 첫 발을 曆(달력)의 개혁부터 내딛었다.
독일의 사가 몸젠이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라고까지 극찬한 카에사르는 戰場을 누비며 달력과 실제 계절이 일치하지 않아 戰鬪期와 동면 休戰期를 가르는데 혼란을 겪어왔다.
로마人이 사용하고 있던 칼렌더는 BC.7세기 로마왕정의 2대왕 누마가 정비한 太陰曆이었다.
이에 따르면 1년은 달이 차고 기우는데 따라 12개월로 나뉘어 1년의 일 수가 355일이 된다. 나머지 일 수는 수 년마다 1개월씩 늘리는 방법으로 조정해 왔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시간의 엇갈림이 심해질뿐만 아니라 BC.1세기 중반에 와서는 달력상의 계절과 실제 계절 사이에 3개월 가까운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카에사르가 달력의 개정을 결심한 것은 이런 모순을 바로 잡을 필요성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확한 달력만 있으면 로마세계 어디서나 받아들여저서 그에 의해 생활리듬도 공통화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로마세게는 군사상의 패권이 미치는데서 그치지않고, 文化는 이종간 공존하더라도 文明은 하나로 공통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날의 생활계기가 되는 달력의 공유가 그 제1보였다.
이집트 체재 중 알게된 이집트人 천문학자들과 그리스人 수학자들이 실제 달력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로마에 초빙되어 달력 개정작업에 차수한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365일과 6시간으로 계산했다. 그리해서 365일이 12개월로 나뉘어 1년이 된다.
그리고 1년마다 생기는 6시간의 오차는 4년에 하 번,2월 23일과 24일 사이에 끼워넣어서 청산한다. 그 해의 2월은 29일이 된다. 이것이 太陽曆의 탄생이었다.
Table of months (율리우스력에 의한 개정 BC.45년 전 후의 월 일 배치표. 4년마다 윤년 2월은 2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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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개량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Julius)력이라 부르게 되고 카에사르의 생일 달 7월을 율리우스(Julius, 영어로 July)로 부르게 된다..
그런데, 이제까지 쌓이고 쌓인 일 수의 청산 문제를 BC.46년 그 해만큼은 11월이 끝나고 12월이 시작되는 사이에 합계 3개월의 揷入月을 집어낳어서 해결했다.
그 까닭에 그해 BC.46년의 달은 다음과 같이 15개월이 되었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삽입1월, 십입2월, 삽입3월, 12월.
이렇게해서 개정된 율리우스력은 다음해 BC.45년부터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율리우스력은 1582년에 법황 그레고리우스13세에 의해 재개정 되기까지 1627년간 지중해세계와 유럽과 중동의 달력으로 사용되어왔다.
재개정 이유는 16세기 후반에 급속히 발달한 천문학 연구에 의해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요하는 시간은 365일 6시간이 아니라 365일과 5시간 48분 46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계산에 기초한 그레고리우스력이 율리우스력을 대체해서 현재이 이르고 있는 것이다.
Detail of the tomb of Pope Gregory XIII celebrating the introduction of the Gregorian calendar.
(교황 그레고리우스13세의 무덤에 개겨진 그레고리우스曆 도입 기념행사 장면)
11분 14초의 오차를 알아내는데 1627년이나 걸렸으니 율리우스력은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로서는 정확성이 경이적이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1분 14초 밖에 차이가 없는 그레고리우스력이라면 력의 개념상 율리우스력과 다를게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카에사르는 율리우스력의 채용을 다른 민족에 강요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국제력을 만든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다.
각 민족은 익숙해온 나름의 구력을 사요하는데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갈리아人들 간에는 그 후도 그들이 사용해온 구력을 오래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율리우스력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현대에도 예가 적지않지만 梁曆과 陰曆을 병용하는 방식이 로마 패권 하에 사는 非로마인들의 생활양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천체 운행에 따라 변화하는 계절에 정확히 맞춰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을 기초로 재개량된 지금의 태양력은 현대의 나노기술에 의한 초 단위 이하의 시간개념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모든 세계 문명인들에 계속 통용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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