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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敎訓 로마史Digest-50-
BC.207년에 이탈리아에 침공한 하슈도울바르 군이 로마의 네로 군에 소탕되면서 전사했다.
BC.208년에는 스페인의 베크라회전에서 하슈도울바르 군이 스키피오 군에 대패했다.
BC.209년에는 카르타고의 스페인 내 본거지 카르타헤나가 스키피오에 의해 공략되었다.
BC.206년, 스페인 내 한니발의 바르카가 일문의 세력을 지킬 의무를 강하게 느낀 막내 마고네는 카르타고계 세력을 결집해서 총공세를 펴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해 전군의 총지휘권을 카르타고 직할의 지스코네에게 양보한다.
지스코네의 총지휘 하에 마고네는 기병 2천만을 지휘하고 총 4천 중 나머지 2천은 누미디아기병이므로 아프리카 용병출신 마시닛사에 일임하게 되었다. 총병력은 7만 4천에 코끼리 32두가 되는 대군이다.
스페인 남부 지금의 세빌리아 근처 평원의 이리파에 집결해서 적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스키피오는 이 카르타고 측의 동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으나 동영지 타라고나를 여유있게 떠났다.
카르타헤나 시내에서 휴식까지 취한 스피키오는 적이 기다리고 있는 이리파를 목표로 군을 출동시켰다. 일단 내륙부에 들어가 이리파平原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강 상류로 나온 후에 강 흐름을 따라 남하하는 길을 탔다. 스페인 원주민들에 보란듯 시위를 겸해서였다.
4만 5천의 보병에 3천기의 기병으로 이뤄진 로마군에는 이즈음에는 연승기운으로 스페인 원주민의 참전자들도 늘어나 있었다. 그렇지만 7만 4천에 대한 4만 8천으로는 敢鬪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적에 접근하고서도 스키피오는 곧바로 진영을 구축하지 않고 남쪽으로 크게 우회한 뒤 거기서 군을 멈추고 견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거기에 진지구축에 덕합한 언덕이 있고 이리파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 카디스로 적이 빠져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기 위해서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카르타고군이 먼저 들판을 병사들로 메우면서 회전을 걸어왔다.
스키피오도 맞서 전군의 포진을 명령했다.
그런데 회전의 포진을 끝내고도 카르타군은 전단을 열려고하지 않았다.
스키피오도 전투 개시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양군이 마주 노려보기만 하는사이 해가 기울었다.
양측 모두 격전이라도 벌인 뒤처럼 지친채 각각 진지로 돌아갔다.
이튼날도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4일 간을 기싸움으로 보냈다.
카르타고군측은 총사령관 지스코네의 결단이 서지않아서였으나 스키피오는 계산대로의 행동이었다.
지스코네의 우유부단으로 회전이 미루어지면서 카르타고군의 임전의지는 위축되어 갔다.
마지막 날은 해가 중천 가까와질 때까지도 카르타고군 병사의 모습을 하나도 볼수없었다.
그날 밤 스키피오는 비로서 전군에 명령했다.
내일 아침 밝기 전애 충분한 식사를 마치고 무장을 갖춰 출전 준비를 끝내 놓으라고 했다.
자욱한 아침 안개 속에 솟아나듯 전장을 가득 메운 로마군을 본 카르타고군은 仰天했다.
지휘간들에게 독촉을 받고 몰려나온 병사들은 아참밥도 먹지않은채 서둘러 엉성하게 전투진형을
짰다. 양 날개에 코끼리를 배치한 것 말고는 이제까지의 진형 그대로였다.
로마군 진형은 일변했다.
중앙에는 조금 아래 배치된 非主戰力인 스페인兵, 主戰力인 로마 重裝步兵은 그날은 좌우로 양분되어 스페인보병단의 옆구리를 겨냥하는 대형이었다.
이 진형대로 전진하기 시작한 양군은 8백미터 거리까지 좁혀진 지점에서 양쪽 다같이 동격명령이 떨어졌다.
카르타고군의 돌격은 全전선이 일제히 정면에 있는 로마군을 향햐 돌진해 왔다.
그러나 로마군측은 정면을 향해 돌진한 것은 중앙의 스페인 보병단뿐이었다.
좌우로 갈려 포진하고 있던 중장보병단은 斜線陣形을 만들면서 적진의 사선 옆구리부터 兩端의 보병을 공격했다.
스키피오는 아군의 최강전력으로하여금 적군의 가장 약체 전력을 치게한 것이다.
지키기에도 공격하기에도 불리한 엇비슷한 옆구리로부터의 공격이었다.
먼저 이 전선에서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이때쯤 경보병이 날리는 화살을 맞은 코끼리들은 조련병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게되었다.
약이 올라 날뛰는 코끼리들은 적을 향한 돌진은커녕 제쪽 기병단 속에 난립함으로써 오히려 피해는 저들이 입었다.
코끼리 난입으로 혼란에 빠진 적 기병에 로마군 기병대가 공격하기 시작했다.
용명을 떨친다는 누미디아기병도 겹겹이 불리해지면서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카르타고군 기병대는 좌우 양단이 아군 보병단의 배후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양익으로 돌진한 로마군에 갇힌 상황이었다. 보병과는 달리 기병은 적을 향해 넓은 장소에서 돌진하며 적을 압도함으로써 그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지만 좁은 공간은 전투에 불리했다.
이리파회전서 기병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쪽은 로마군 기병이었다.
태양이 높이 솟을 대쯤에 카르타고군 병사들의 허기와 피로에 지친 모습이 후방서 지켜본 스키피오의 눈에도 역역했다.
로마군은 적진의 외측서부터 내측으로 차례로 섬멸해 들어갔다.
남은 적의 주력병은 이제 뉘미디아 용병 기병단뿐이었다.
스키피오의 전술, 主戰力의 非戰力化 작전의 완벽한 성공이었다.
회전장에는 카르타고군 시체가 산적한채 살아남은 적병들은 모두 도주해버렸다.
총붕괴된 카르타고군의 추격에 나선 로마군은 잠시 후 추격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파평야에 雷雨가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이 소나기 덕분으로 산속에 도망친 카르타고군은 7만 8천명 중 겨우 6천명이었다.
7만 2천이 이리파회전서 죽어간 것이다.
총사령관 지스코네와 한니발 동생 마고네도 카디스로의 퇴로가 막혀 멀리 서쪽 대서양 연안까지 도망가 살았다. 누미디아기병 지휘관 마시닛사만이 로마군 속을 뚫고 후방 카디스까지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이리파회전은 11년 전의 이탈리아 본토 칸네대회전에 버금가는 격전이었다.
또 그때의 참패를 설욕한 전투이기도 했다.
형 루키우스를 전승보고차 로마에 파견한 스키피오는 승리 후에도 이리파를 떠나지 않았다.
적장 추격이 아니라 카디스로 도망간 누미디아 기병대장 마시닛사에 사절을 보낼 생각에서였다.
이제 수믈아홉살의 스키피오는 알프스를 넘은 때의 한니발 나이가 되었다.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적 카르타고의 본거지 아프리카로 전장을 옭여갈 생각이었다.
그 스키피오의 머리 속은 로마군의 기병력을 어떻게 증강시키느냐의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제까지의 적이었던 마시닛사에게 손을 벋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사람 누미디아 왕 시파체에 대해서도 외교작전을 병행하기 시작한다.
스피키오와 직접 회담을 희망한 시파체의 요청을 받고 지금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그의 령지까지 스페인에서 배로
극비리에 다녀왔다.
스키피오의 기병력 증강 의욕이 모험을 감행케한 갓이다.
기왕이면 지중해 세계 최강의 누미디아 기병이 탐났던 것이다.
스키피오로부터 동앵 제의를 받은 누미디아人 두 사람 모두 이제까지의 카르타고와의 깊은 관게에서 쉽게 대답할
처지가 아니었다. 던져진 공을 받느냐 마느냐는 저쪽 할탓이었다.
스키피오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一石二鳥의 성과를 얻게된다.
아군의 기병전력의 증강에 반해서 적의 전력은 약화를 가져오는 결과가 되기때문이다.
그해, BC.206년 겨울, 制覇한 스페인 전역의 방위를 2개 군단에 맡기고 긴 세월 거기서 싸움을 거듭한 고참병들을 데리고 스키피오는 海路 로마를 향했다. 4년만의 귀국이었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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