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12,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東方의 폰토스왕국 征閥

당시 흑해연안 강자 폰포스왕국
veni ve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마치 현대의 카피라이터 같은 이 표어는 카에사르가 폰토스왕국을 정벌하고 로마원로원에 보낸 승전보고서의 첫마디다.
카에사르가 이집트를 평정하고 海路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팔레스타인까지 와서 동지중해 연안 일대의 동방제국을 再編하는 순방길에 오른 것은 BC.47년 6월이었다.
이스라엘의 아콘에서는 유다의 諸侯나 司祭들이 출영하여 이집트 거류 유다인들에 통상 평등권을 부여해 준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카에사르는 새로운 정복자로서 정치와 종교가 따로 아닌 敎政一致의 유다민족의 특수성도 인정하고 최고제사장을 유다 地上權의 최고위자로 복원시켜주었고, 로마가 관장하던 주항 텔아비브도 유다인에 돌려주는 이외 屬州稅 납부도 면제해 주었다.
유다인에 특별한 호의를 가져서가 아니라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를 하나로 통합해야하는 제국통치의 실현을 위해서 취한 조치였다. 마찬가지로 육로를 통해 시리아에 도착해서도 같은 조치가 반복되었다.
카에사르는 시리아 팔레스티나지방에서는 최대 도시 안티오키아에 정복자 폼페이우스에 가담했던 시리아屬州와 그 주변의 諸候들 전원을 소집하여 <새로운 로마시민의 친구이며 동맹자>로서 서약을 받고 그들의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친족 섹스티우스 카에사르를 현지 로마측 책임자로 두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키리키아속주 타르소스에 가서도 역시 패권국 로마와 속주간에 지켜야 할 제문제를 조정하고 상호 의무에 충실할 것을 서약했다.
로마의 패권 하에 있는 <로마세계>는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국가들이다.
고대인은 벌써 2백년 전부터 이것을 제국이라 불러욌었다.
분명 카에사르는 제국주의자이며 후세의 植民地帝國보다도 본질적 의미의 제국의 형태이므로 필자가 본고를 연재하면서 제목을 帝國篇이라 한 이유이기도 여기에 있다.
문제의 黑海연안의 강자 폰토스王國은 폼페이우스에 쭟기는 가운데 자식의 배반으로 자살을 한 미토리테다스의 아들 파르나케스가 로마內戰을 틈타 주변의 과거 영향권 회복을 꾀해 지금의 터어키령 카파토키아까지 침입, 동방 일대 로마 동맹국들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로마 패권하의 어는 나라도 동맹국간 분쟁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안전보장을 책임진 로마로서는 방관할 수없는 일이었다.
카에사르가 도착했다는 보고만으로도 놀란 폰토스의 무법자는 협상사절은 보내겠다고 제의해 왔다. 전쟁 없이 사태를 수습하면 카에사르에게는 더없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사절단 내방을 기다렸다.
그러나 파르나케스는 카에사르의 눈치를 살피면서 사절단 파견을 지연시켰다.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카에사르는 2만의 병력을 고속행진으로 북상시켰다.
카파토키아지방 흑해 연안의 제라(Zera)에서 파르나케스의 5만대군과 대결했으나 정예군 제6군단의 맹공앞에 오리엔트의 병졸들은 적이 아니었다.
단 한번의 전투로 적을 제압하고 로마원로원에 보낸 전황보고서가 위 말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였다.
여담이지만 "VENI VIDI VICI"는 미국 모리스社의 말보로 담배 갑에도 새겨져서 오늘날 전형적 미국 사나이들의 기상으로 삼고 있다.
전장을 도망친 파르나케스는 4년 후 외롭게 죽고 폰토스왕국은 왕가 혈통의 미토리타데스에 주어졌다. <로마의 친구이며 동맹자>인 제후들을 괴롭힌 분쟁도 해결하고 각 민족을 모두 제자리에 돌아가 살 수있게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유다 시리아 소아시아를 순행, 할일을 다한 카에사르는 로마 귀환에 앞서 마지막 남은 그리스 일을 처리해야했다.
북부그리스를 횡단해서 달리고 있는 로마가도 에냐티아路를 행군해서 종점인 1년 여전 기억도 생생한 도우라큠에서 배를 타면 2주일이면 이탈리아에 돌아갈 수있었으나 한 달이나 걸렸다.
중부 그리스에 들어간 카에사르는 아테네에 그리스 내 제도시국가 수장들을 소집했다.
여기서도 폼페이우스측에 가담했던 죄는 묻지않았다.
속주인 아테네나 스파르타와 같은 자유도시서도 대우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뿐아니라 카에사르와의 대결을 치루기 위해폼페이우스가 징수하고 있던 특별세를 페지했다. 다만 폼페이우스측에 마지못해 가세한 것과는 달리 자진해서 가담했던 아테네시민에만큼은 한마디 비꼬았다.
<여러분은 죽을 죄를 짓는 것을 되풀이하는데도 유명하지만 빛나는 업적을 남긴 조상님들에게 용서 받는데도 유명하구만.....>
이렇게해서 그리스도 카에사르色으로 물들인 후 도우라큠으로부터 해로 이탈리아를 향한다. 아드리아해의 제해권도 이미 카에사르의 것이었다.
제6군단과 게르만기병과 함께 브린디시에 상륙한 것은 BC.47년 9월 말이었다.
폼페이우스와의 결전을 위해 브린디시를 출항한 날로부터 1년 8개월만의 귀국이었다.
그리스에서 아프리카에서 소아시아에서 실질 전투를 벌인 것은 단 세번뿐으로 그 광활한 지역을 평정하고 돌아온 카에사르를 로마시민은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하는 것으로 맞았다.
-계속-
다음은 북아프리카(구 카르타고)에 집결한 폼페이우스 잔당 소탕작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