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Digest-45-
*侵攻 8년째 한니발의 이판사판전술
동맹을 이탈해서 카르타고측에 가담하여 로마를 괴롭혀온 시라쿠사는 이렇게해서 평정되었으나 로마군은 1년 이상 아르키메데스의 신무기에 고전해야 했다.
시라쿠사 함락당시 戰禍 속에서도 數學問題 풀이에 열중하고 있던 아르키메데스는 그를 알아보지못한 로마군 한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BC.211년에도 로마는 전전선에 25개 사단을 투입해 총력전을 전개, 카푸아攻城戰에도 6개 군단의 철통포위망을 폈다.
남 이탈리아에서뿐이 越冬할 수밖에 없이된 한니발은 시라쿠사가 다시 로마의 손에 떨어진 마당에 카푸아 확보의 필요성은 한층 커졌다.
전략상 불리해진 한니발은 로마군의 포위망을 뚫고 단기간에 카푸아를 구출해내려면 적을 會戰에 유인하는 전술 이외 달리 방법이 없었다.
휘하군 대부분은 뒤에 딸아오도록 하고 필요 최소한의 군량과 최소 병력만을 이끌고 카푸아를 향해 급행군으로 북상했다. 그리고 카푸아 가까이 이르러 로마군 포위망을 급습했다.
불시에 2중 3중의 포위망에 도전했으나 로마군을 회전에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한니발은 후속 자군의 도착도 기다리지 않고 이판사판의 승부를 걸었다.
병력이 소수인 덕분에 카푸아의 포위망 배후를 적 몰래 우회하는데 성공한 한니발은 로마군과 마주칠 위험 없이 라티나街道를 일로 북상하여 로마로 향했다.
로마성으로부터 4.5킬로 떨어진 지점에 숙영지를 구축하는 동안 한니발 자신은 기병대만을 이끌고 라티나가도를 다시 북상해 로마城廓이 보이는 곳까지 전진했다.
성벽 가까이 접근해 가도를 벗어나 로마를 둘러싸는 성벽을 따라 코리나城門까지 로마 전 성벽의 3분의 1 길이의 거리를 기병을 딸린 산책을 감행한 것이다.
로마는 BC.390년의 켈트(갈리아)족 내습 이래 179년간 수도에 적을 접근시킨적이 없었다. 이 대담하기 짝이 없는 한니발의 시위에 로마人은 심장이 멎을지경이었다.
성벽 위에 머리를 내민 많은 로마인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활 사정거리라고는 하지만 백마를 달리는 36세의 대담무쌍한 카르타고 무장 한니발은 유유자적 산책을 한것이다.
1개 군단 정도의 공격으로 무너질 성벽도 아니었을 뿐만아니라 당시 로마에는 수도방위군 2개 군단과 반도 최남단 푸브리아地方에 파결할 勇將 가르바 집정관 휘하의 2개군단이 편성되어 있었다.
로마는 한니발이 노린 카푸아포위군을 풀어 수도로 급파하지도 않았고 전선병에 의한 회전불사도 없었다.
대신 수도에 대기중이던 가르바 군단이 성 밖으로 진출해서 당당히 포진하고 수일간 소규모 전투가 있었을뿐 역시 시위 의상의 의미는 없었다.
수도방위군을 회전에 끌어내서 격파하고 거기에 놀란 카푸아포위군이 수도방위에 달려오는 것을 회전에서 섬멸한다는 한니발의 구상은 전혀 실현되않았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로마인의 심중에 오래도록 남아서 보채는 아이들을 달랠 때 <문 밖에 한니발이 왔다>는 경구를 만드러냈다.
아무튼 BC.211년의 한니발 로마출현 사건은 로마 격파를 그토록 목메어 바래, 어떤 희생도 무릎쓴 한니발로서는 로마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된것이다.
소득 없이 로마를 떠난 한니발은 남행 도중에도 단념했음인지 카푸아 포위 중의 로마군에는 접근조차 하지않은채 남 이탈리아로 되돌아갔다. 결국 장화 발까락 끝에 해당하는 카라부리아地方으로 인퇴한 것이다.
한니발의 구원을 기대할 수없었던 카푸아는 그 뒤 곧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함락되었다.
그 전투에서 한명의 로마군 사령관 푸르쿠르스가 전사했다.
낙성 후의 카푸이는 자치권도 잃고 동맹국에서 속주로 전락했다.
시민들은 노예는 면했으나 카푸아가 로마를 배반한 것은 퓨로스왕에게 로마가 고전햇던 일에 이어 두번째이다. 백년 안에 두 번이나 배신한 데대해 신의를 중시하는 로마인은 용서할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시라쿠사에 대한 것보다 엄격한 조치로 카푸아의 지도층 시민 7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렇게해서 BC.216년의 칸네 이후 한니발에 붙은 남이탈리아의 주요 3개도시 중 시라쿠사에 이어 카푸아도 수복되고 타란토만이 한니발측에 남게되었다.
그런데, 좋은 소식으로 일관했던 BC.211년이었으나 여름이 지나면서 에상치않은 비보가 전해졌다.
한니발의 이탈리아 침공 이래 확대될 수밖에 없는 로마의 전선 중 유일하게 희소식만 알려오던 스페인전선이 궤멸 직전에 이른 것이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