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교훈 로마史Digest-43-
*持久戰法으로 한니발에 消耗 압박
칸네회전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막내동생 마고네가 로마군 시체에서 뽑아내 가지고 간 산더미같이 많은 금반지를 본 카르타고의 원로들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로마에 대한 복수심에 찬 한니발의 대외진출파 원로들과는 달리 늘 그를 못마땅히 여겨온 국내중시파의 거두 한논이 마고네를 향해 물었다.
"라틴民族 가운데 어느 부족이 우리측에 가담해 왔는가?
37개나 된다는 라틴植民都市 중에 얼마나 전선을 이탈해서 한니발군에 투항해 왔는가?"
마고네는 노정객의 질문에 긴장해서 답했다.
"아닙니다.하나도 없읍니다"
한논은 이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적은 강대하다는 것이다.
아니면 로마를 지탱하고 있는 식민도시나 동맹도시들의 시민에게서 로마를 이반하려는 기색이라도 보았는가?"
"아닙니다. 아직 모릅니다"
"로마인은 한니발에 講和를 제의해 오기라도 했는가?"
"아닙니다. 아직은...."
"또 아닙니단가? 그렇다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온 때와 마찬가지로 칸네의 승리 이후에도 카르타고와 로마는 여전히 전쟁 막바지에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분, 나는 이 시점서 로마와의 강화 체결을 제안한다."
그러나 講和는 로마측이 원치 않았던 것이다.
칸네대회전 참패 이후 로마는 첫째 동서남북으로부터 한니발에 대한 보급로 차단 전략에 치중했다.
북으로부터는 갈리아족의 한니발 합류를 막기위해 루비콘江을 경계로 북방 방위를 견고히 하고 해군력에 의한 해상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반도 남부에서 준동하는 한니발군에 대한해서는 會戰을 피하고 持久戰法으로 대처하는 전략이었다.
패전 이듬해인 BC.215년의 집정관에 지구전 주창자 전 독재관 파비우스가 선출되고 지금까지의 지구전법과는 다른 전법으로 한니발 枯死作戰을 펴나간다.
그간의 전투에서 로마가 배운것은 '회전하면 진다, 지지 않으려면 회전을 안하면 된다. 다만 한니발이 직접 지휘하지 않는 경우의 카르타고군은 반드시 공격한다.'였다.
이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로마가 완패한 칸네 이후였기에 비로서 효과를 낸다는 일면도 있었다. 칸네에서 이긴 한니발은 반도 남부의 상당부분을 지배 하에 넣었으나 오히려 그가 지켜야할 지역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다.
신출귀몰하는 한니발에게도 혼자 감당할 수있는 한계는 있기때문이다.
로마는 한마리뿐인 고양이가 없는 틈을 타서 드나드는 쥐의 전략으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로마인은 쥐가 아니었다.
고양이가 나타나나도 도망가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딛치는 것은 극력 피했으나 주위를 살펴 빈틈이 보이면 고양이 궁둥이라도 물어뜯었다.
제2차 포에니전쟁 주에도 로마가 가장 곤경에 처했던 BC.215녕부터 211년까지 4년간 즉 방위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4년간후방의 원로언과 함께 일사불란 대 한니발 최전선에 서온 무장 4명이 있다.
병사들은 교체가 가능한 한 교체해온 로마였으나 사렴관에는 교체가 없었다.
로마 집정관은 연임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전 집정관이라든가 법무관 전 법무관의 직책을 가지고 군단을 계속 지휘할 수있다.
전선 확대에 따라 수 명의 지휘관이 필요하다.
따라서 BC.215년에는 기 언급한 전 귀족출신의 전 독재관 파비우스 외에 적극전법의 평민출신 크라디우스 말케레스, 또 평민출신 센프로니우스 그라크스 그릭 귀족출신의 바릴우스 레비누스 이렇게 4명의 전선사령관이 선임되었다.
귀족과 평민출신에서 고루 전선사령관이 임명되었다는 것은 원로원(합동참모본부 격)을 중심으로한 대 한니발전에 국론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니발측에도 문제는 있었다.
농산물이 풍부한 배후지대를 가지면서도 카르타고로부터의 보급이 가능한 항구도시가 없었다. 반도 중부지방 항구면 로마해군의 시계를 벗어나 본국으로부터의 병참지원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나 로마는 벌써 중부의 캄파냐지역에 각기 2개 군단씩의 3명의 무장을 파견한 터였다.
BC.215년은 양측은 큰 전투 없이 소강상태로 겨울을 넘기고 다음해 봄을 기다려야했다.
로마 근거리의 카파냐지방에 보급항 확보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한니발은 주병력을 남부로 이동하여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다시 주력을 이끌고 중부로 북상했다. 역시 캄파냐지방의 항구 획득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니발과 합류하기 위해 북상 중이던 카르타고 제2군 앞에 그라크스가 이끄는 로마군 奴隸軍團이 가로 막았다.
그라크스는 부하 노예병 전원에게 이 전투에서 이기면 自由民 신분으로 해준다고 약속했다. 분기한 노예군단은 필사적이었다. 한니발은 합류를 기다리고 있던 제2군의 태반을 잃었다.
6개 군단이 버티고 있는 캄파냐지방에서 천연의 良港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재인식한 한니발은 1년간을 허비하고 다시 타란토(Taranto)港이 있는 반도 남부로 이동했다.
남하하는 한니발의 뒤를 이제 자유민이 된 그라크스군단의 전 노예병사들이 쫓았다.
로마에 등돌린 캄파냐지방 최대 도시 카푸아(Capua) 바로 북쪽의 카시리나(Cassirina)가 한니발 부재중 마르케르스의 로마군단에 의해 수복되었다. 이 카시리나는 한니발이 카푸아 대신 캄파냐지방의 요새로 만들어 주류하며 로마 공략의 기회를 엿보려던 곳이다.
남하한 한니발은 타란토에 무력공략을 시도했으나 그를 추격해온 그라크스군단과 현지 주둔 군단의 협공을 받고 좌절됐다.
결국 BC.214년 한해도 양군 회전 없이 유격전만으로 끝나고 한니발은 나폴리(Napoli)도 탈란토(Taranto)도 공략하지 못한채 겨울을 맞는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