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34-
--승전--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여구가들에 의해 그 월경지점 탐색작업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악 민족은 당초 성격상 폐쇄적이다. 그래 의심이 많다.
알프스산 밑에 당도한 한니발군은 지쳐 사기도 떨어진 마당에 가로 놓인 산맥의 위용뿐만 아니라 敵意를 품고 멀리서 둘러싸고 있는 갈리아인이 가진 칼은 森林 속에서도 번쩍였다.
불필요한 희생을 싫어하는 한니발은 여기서도 部族長들에 회유책을 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통과하는 것뿐이고 敵은 로마人이라면서 金品을 뿌리는 것이다.
알프스산 밑에서도 그런 식으로 성공하고 회유된 부족장들은 모피망토도 보내왔다.
무엇보다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있도록 길 안내까지 해주는 호의도 베풀어준다.
산넘기 행군은 갈리아인들을 놀래서 적대행위를 못하도록 코끼리떼를 앞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코끼리는 로누강 도하시 떠내려간 것을 제하고도 30마리는 되었다.
코끼리떼 뒤에 병참마차가 따르고 이어 보병단이 간다.
후위로 기병대가 따른다.
한니발은 총사령관답게 중앙에 아전호위를 받으며 가는 것이 아니었다.
통과로만 믿지않고 침입자로 보고 벼랑 위에서는 돌이 던져지고 커브길 저쪽에 숨어서 활을 쏘아대는 산악민들에 의해 희생자가 나면 맨먼저 달려가는 것도 사령관 한니발이었다.
계절은 초가을 9월로 접어들었다.
산 중에는 첫눈이 뿌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갈리아인이 정면으로 대들지는 않았으나 남쪽 동물인 코끼리에게 알프스 山속 기후는
참지못할 고통이었으리라.
누발이 날리는 기후에 적응 못하는 코끼리들은 조련사의 손을 벗어나 날뛰고 한 발 잘못 딛으면 천길 낭덜어지의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이 지옥으로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코끼리는 동물적 감각으로 위험한 장소에 가면 움직이지 않는다.
놈들을 뒤에서 보병들이 앞으로 밀어낸다. 낙하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발을 한치 잘못 딛은 코끼리와 짐차가 사람들을 길동무로 함께 계곡 밑으로 살아져갔다.
단말마의 절규가 흐린 하늘가에 울려퍼지고 저쪽 뒤에 따라오는 기병대에게는 지옥속 아비규환으로 들려 마음을 어둡게했다.
전군이 쉴 수있는 숙영지도 없었다.
많은 밤을 노천서 뜬눈으로 새다싶이했다.
혹시 산악민의 움막이라도 발견되면 천혜의 고마움으었다.
모닥불도 언 몸을 녹일만큼 피울 수가 없었다.
한니발도 일개 병졸과 똑같이 언 밥덩이를 목구멍으로 넘겨야했고 바위 밑에 쪼구려 잠을 자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개 병졸과는 달리 휘하 군을 보살피고 다스려야하는 일말고도 총사령관으로서 상황 판단과 함께 명령을 수시로 내려야했다.
등정 시작 9일만에 정상에 올랐다.
사람도 말도 코끼리도 모두 극도의 피로에 지쳤다.
다행히 정상에는 전군이 쉴만큼의 넓은 평지가 있었다.
여기서 2일간 휴식을 취했다.
29세의 사령관 한니발은 저 멀리 동쪽을 가리키며 침통한 全軍에 士氣를 불어넣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기가 바로 이탈이아다. 이탈리아에 들어가면 로마城門 앞에 서게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알프스를 넘어서 한 두차레 전투를 치루면 우리는 이탈리아의 主人이 된다>
병사들의 표정은 쌓이고 쌓인 피로와 불만이 사라지는듯 했다.
그로부터 2천년 후, 이탈리아를 침공하게되는 나폴레옹도 한니발에게서 배왔음인지 그의 군졸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내려가는 것은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알프스의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혹한으로 변하고 바람은 화살에 맞은듯 살을 어이었다.
낮에 내린 눈은 밤이 새고나면 얼어붙어 길은 빙판이고 사람 말 코끼리 할것 없이 미끌어져 뒹굴며 계곡 아래로 휩쓸려 살아져갔다.
눈사태로 진로가 가로 막혀 제설작업에만 하루 해를 보낸적도 있다.
사람 하나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은 벼랑바위를 깨서 길을 트는 작업도 거듭되었다.
올라갈 때보다도 내려갈 때가 더 힘들어 추위와 피로를 견디지 못한 병사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실족해서 벼랑 밑으로 꺼져가는 자가 많았다. 코끼리들도 여러마리가 병사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데 걸린 시간은 오르고 내려오는데까지 모두 15일을 소비했다
고 한다.
뒤에 한니발 자신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땅을 밟는 시점에 그에게 남은 병력은 보병 2만과 기병 6천이었다. 코끼리가 몇마리 남았는지는 기록이 없다.
로누강을 건넌 시점에서는 보병 기병 합해 4만 6천이었으므로 알프스를 넘는데 치룬 희생은 보병 기병 모두 2만에 달한다.
피레네산맥을 넘었을 때와 비교하면 시체 3만 3천을 뒤에 뿌리며 왔다는 결론이다.
전인미답의 위업이라고는하나 이것이 그가 치룬 대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수믈아홉살의 이 젊은이로서는 이조차 계산에 넣었던 것으로 생가된다.
그에게 있어 로마인의 본거지 이탈리아를 싸움터로 삼는데는 가령 희생이 크더라도 알프스를 넘어 북으로부터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카르타헤나를 뒤로해서 이탈리아에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4개월이었다.
알프스를 내려와 넓은 계곡에 주저앉은 카르타고의 젊은 명장 한니발侵攻軍은 15일간의 휴식을 만끽했다. BC.218년 10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