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史에서 敎訓 얻기 -Digest 24-
해운국도 하루아침에 이뤄어지는 것이 아니다.
육상을 남하한 陸軍은 무사히 시칠리아도 메시나에 도착했으나 해상을 남하한 海軍은 각선이 발이 안맞아 뿔뿔이 흐터져 뒤에 간신히 작전지에 도착했다.
BC.260년 봄 로마해군 창설 첫 본격 원정에서 집정관 스키피오가 3백척 중 겨우 17척만을 이끌고 전략지 작은 리파리 섬을 점거했다.
시칠리아도에서 불과 수 킬로 북안에 떠 있는 리파리 섬의 전략적 가치를 모를리 없는 카르타고가 20척의 군선을 급파해서 리파리항을 봉쇄함으로써 항내에 정박 주인 로마 선단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선원들은 싸와보지도 못하고 산으로 도망쳤고 집정관 스키피오 이하 많은 로마병은 포로가 되었다. 일찌감치 포로가 된 집정관 스키피오는 얼마 후 양국 포로교환 덕에 귀국하여 그 6년 후 집정관에 재선되어 전선에 복귀하게 되지만......
적의 총사령관을 붇잡은 카르타고함대는 흥분하여 전장을 버려두고 백여 킬로 떨어진 거점 팔레르모로 이송하는 벅석 중에 남하 중의 이탈선 모두가 무사히 메시나에 도착을 한다.
항해술로는 도저히 카르타고를 따를 수없는 로마함대는 단독 지휘관이 된 집정관 도울리우스의 기발한 착상으로 함선에 '카라스'라는 신무기를 고안해 부설하게 된다.
선수 맨 앞쪽 돗대에 18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가설한 이 무기는 敵船에 접근함과 동시에 마치 큰 기둥이 쓰러지듯이 맨 끝에 부착한 강철꼬챙이가 적선 갑판을 내리 찍어 꼼짝못하게 하고 그것을 다리로 삼아 전통의 重裝步兵이 적선으로 나라들어 선상 격투를 벌이게되는 것이다.
바다를 제패하고 배를 띄워 貿易도하고 漁撈도해서 부를 축적한 카르타고인들은 배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배의 멋까지도 함께 즐기는 문자그대로 바다 사나이들이다.
생전 보지못한 멋없이 돗대에 붙어 있는 로마선의 카라스를 보고 바다의 멋을 모르는 로마인들이라고 그들은 비웃었다. 그 비웃음이 무슨 결과를 가져 올 것이지는 생가도 못하고....
*제1회 미랏조해전서 초년 해군병 로마가 대승을 거두다
로마와 카르타고간의 본격 해전의 막이 올랐다.
제1회 해전은 BC.260년 여름 양국 함대가 마주친 시칠리아島의 北岸 미랏조해안에서 벌어졌다.
미숙한 항해술로 간신히 대열을 짠 로마함대가 적함을 햐해 돌진하자 카르타고병들은 우스꽝스런 카라스를 보고 조소를 보내다가 갑자기 낯이 굳어졌다.
적함 갑판에 꽃힌 카라스를 타고 로마병들이 벌떼처럼 나라들어 카르타고군을 여지없이 잠재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황은 로마군의 일방적 우세로 시종했다.
카르타고 침몰선 15척, 노획 30척, 사망병 3천 그리고 7천명의 포로를 남기고 카르타군은 줄행랑을 쳤다.
총사령관의 기함도 포획되었으나 그는 쾌속 전마선으로 갈아타고 도망쳤다.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파견 해군력의 3분의 1을 잃었고 로마측 손실은 셈할 것도 없이 미미했다.
로마해군은 첫 해외원정을 승리로 장식하고 제1회 미랏조해전은 이렇게 끝난 것이다.
승리를 전해들은 수도 로마는 환희로 들끓었다.
겁을 먹은채 설마설마하며 바다에 나가 본 해군이 지중해 최대 최강의 카르타고해군을 적으로 정정다당한 해전 끝에 승리한 것이다.
승리의 주인공 집정관 도울리우스는 흰 大理石 圓柱의 좌 우에 포획한 카르타고선의 고물(선수)을 박아 넣은 승리의 기념탑을 만들어 로마에 보냈고 로마인들은 그것을 포로로마노의 중앙에 세워 첫 해전승리를 축하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도 이제 5년째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장기전쟁은 해마다 치러지는 것은 아니다.
겨울 자연휴전기가 있고 갖가지 이유로 전선의 활기가 갈아앉기도 한다.
제1차 포에니전도 미랏조해전에서 로마가 승리한 BC.260년에 이은 259년 또 258년도 조용히 지나갔다. 그러나 로마는 집요했다.
시칠리아 전도는 동남부에 뿌리내린 시라쿠사와 동북부와 중앙부에 진출한 로마 그리고 서부에 후퇴 중인 카르타고와 3분되었다.
포에니전쟁이 시작될 때에 비하면 시칠리아의 카르타고 세력은 한없이 약화했고 그이듬해 BC.257년에도 로마는 제2회 해전에서 두 번째 승리를 장식하게 된다.
다음은 2차 3차해전이 이어집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