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져서, 저가 알기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제 8 부 =
박정희의 고뇌에찬 한일회담과 월남파병
그리고 경제원조 결국 월남전 파병 결정하다. 목전의 작은 이익을 위해 신의[信義]를 저버릴 수 없다. 한일회담에서 무상 3 억 불, 차관 2 억 불, 상업차관 3 억 불 합계 8 억 불을 받았다. 향후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100 억 불을 받는다 하여도 당시 8 억 불 보다 효과가 절대 크지 않으리라! 문제는 금액의 과다[過多]가 아니라, 적은 자본이라도 어떻게 탁월한 투자와 경영으로 국민적 저력으로 역동적이고, 집단적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카터는 국내 인권문제를 쟁점으로 제기하였으나, 지금은 북한의
인권문제는 보고도 못 본체 한다. 카터는 인권외교로 미군철수를 압박하였다. 에그 뉴 부통령은 미국 내에서 카터의 인권유린이 비판받고 있다고 하였지만, 카터 회고록에서는 철군정책은 한 줄도 없다. 미 ․ 중 국교정상화, 닉슨 독트린 주한 미 7 사단 철수, 카터 인권빌미로 주한 미군 철수 위협, 북의 계속적인 적화도발, 월남패망 미군 철수, 북한의 땅굴 침투, 특히 러시아 외무부 아주국 제 1 국장이 언급한대로 1975 년 4 월에 북의 김일성은 제 2의 남침 준비 완료하고 중 ․ 소 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양국은 이를 거절하자
좌절되었다고 전언, 이 사실은 1996 년 5 월 23 일 조선일보 주최 국제회의에서 확인되었다. 우리는 미 8 군 참모장 싱글러브 장군이 자기 나라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고마움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비서실장이 정치자금을 전담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반대급부가 따르는 돈은 받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정치자금 받고도 부담 느껴 답례품을 보냈다. 나는 스물 대여섯 기업주로부터 협조를 받았으며, 정치자금을 본관 비서실장 사무실에서 받아, 그 때마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내가 청와대 본관 사무실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것은 기업주가 찾아온 시간과 돌아간 시간이 자세히 기록되고 마음만 먹으면 경호실,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가 성금 전달 기업체를 찾아가 확인할 수 있어서, 나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정확하게 정치자금을 처리하였다. 박 대통령은 직접 정치자금을 받은 적은 없으며 여야 대표 회담 때 정치자금 전달보도가 수시로 나왔으나 이것은 사실 무근이다. 박 대통령 사후 금고 속에 9 억 원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 노 대통령들이 그만둘 때 2000 억 원 이상 쓰다 남은 돈이 있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칼날 같이 매서웠던 친인척 관리 박 대통령은 큰따님에게도 금전문제에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원천 봉쇄하는 것이 좋다고 건의하여 허락하셨다. 대통령은 영부인 역할을 하는 큰따님에게도 철저했다. 박 대통령은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 사람은 일체 청와대 출입이 금지되었고 이를 예방하지 못한 비서실담당자도 엄한 문책을 받았다. 친, 인척에 관한 정보보고는 고도의 정확성이 완벽히 요구되었고 시정사항이 있을 때에는 엄한 지시가 내려졌으므로
정보계통의 비서실 직원들의 노고[勞苦]가 매우 컸다. 이때에 청와대 대통령의 권력 주변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대통령 친인척의 부당한 은행융자 요청을 비서실장이 거부하도록 관계자들에게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무언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비서실장 직권으로 요인동향 보고서를 폐지하고 없애버렸다. 나는 개각이 있을 때마다 의식적[意識的]으로 민정, 사정 특별보좌관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만약에 그들의 의견이 비중 있게 받아들여지면 학연, 지연, 연고 등으로
사가 낀 정보가 끼어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강[漢江]의 기적[奇績]을 낳은 통제력[通察力] 제주도 개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섬으로, 박 대통령의 특별한 집념으로 도로개설, 도시계획정리, 제주도의 약점인 물 문제 해결 등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하는 기초를 닦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주지사는 감귤지사, 감귤군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참으로 유명한 언급이다. 새마을운동 공업화 보다 더 어려웠던 농업개발에 있어서 박 대통령은 18 년의 집권기간 중에 수출주도의 공업화 정책과 농민이 잘 사는 정책을
경제정책의 2 대 지주로 삼고, 경제면에서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를 꾸준히 추진해 나갔으며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농민이 더 잘 살 수 있는가를 사색 구상하고 실천해 나갔다. 우리의 주곡인 쌀 생산을 1977 년에 4.170 만 6 천 섬으로 드디어 4.000 만 섬 생산 돌파로 연간 수백만 섬 정도가 남아돌게 되었다. 혁명 후 17 년 만의 결과이다. 아마도 단군 할아버지와 세종대왕이 하늘나라에서 장하다. 박정희! 했을 것이다. 농촌부흥의 결정적 요인은 보다, 근본적으로 박 대통령이 스스로 창시하여 농민들에게
근면 자조 협동정신[勤勉, 自助, 協同精神]을 각성[覺醒]시킨 새마을운동이었다. 박 대통령은 빈곤을 자기의 운명이라 한탄하면서, 정부가 뒤를 밀어주지 않아 빈곤 속에 있다고 자기의 빈곤이 타인의 책임인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는 농민은 몇 백 년의 세월이 걸려도 일어설 수 없다. 의욕[意慾]없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돈의 낭비이다. 게으른 사람은 나라도 도울 수 없다고 나태한 농민을 꾸짖으면서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일깨우는 새마을운동을 일으켰다. 새마을 지도자들의 당원 가입은 절대 안될 말이었다.
공화당이 요청한 새마을 지도자들 당 가입을 절대불허방침을 결정하고 누구를 막론하고,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순수한 국민운동으로 승화[昇華]지속되어야 한다. 정치성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박 대통령은 농촌 4 - H 청소년 운동도 정치이용을 금지시켰다. 새마을운동의 종합적인 추진결과 1970 년 중반부터 농민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을 초과하게 되었고, 쌀 자급자족이 이루어졌다. 예금통장[預金通帳]을 갖게 된 농민[農民]들과 당시 각 부락에서는 새마을 부녀회가 조직되어
절미[節米]운동을 벌여, 때마다 쌀 한 숟가락을 절미[節米]통에 넣고서 일정량이 되면, 그 쌀을 공동으로 판매해서 그 대금을 농업협동조합에 예금[預金]하고 통장[通帳]을 받았다. 당시 농협에서 농민에게 대출해 주는 돈은 정부 돈이나 타행 차입금으로 충당되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후, 농민들의 저축의식 고조로 1970 년대 말에는 드디어 농민들의 저축이 농협대출 재원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저축은 국력’이란 대통령의 휘호[揮毫]는 대한민국 전금융기관마다 붙어 있었다. 하나의 일화는 대통령은
김준 새마을 연수원 원장의 건강을 걱정하여 보약[補藥]을 지어 보내기도 하였다. 새마을운동은 대통령 서거 후 변질되었다. 전두환 군부는 새마을 운동 본부에게 신군부 지지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사회정화위에 흡수하려 했으나, 이도 거부당해서 결국은 전통 동생인 전 경환을 사무총장에 임명하여 예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저축[貯蓄]은 국력[國力]이라는 휘호의 깊은 뜻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가르침이다. 낭비[浪費]하고 나태한 민족은 망하기 마련이다. 저축[貯蓄]은 국력[國力]이라는 말의 참뜻은 개인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가난[家難]을 극복[克復]하고 국가의 자주[自主]기틀을 확립하고 자주, 자립의 확립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독일 막스 웨버의‘직업을 천직으로 알아라. 근검절약의 정신이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경영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같은 뜻으로 통하는 명휘호이다. 아마도 박 대통령이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 대통령이었다면‘저축은 국력 이라는 휘호는 세계 방방곡곡에 나붙었을 것이다. 8 ․ 3 사채동결[私債凍結]긴급조치[ 緊急措置] 미국의 경기후퇴로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외환율은 급격히 절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