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는 지난 30년간 한일관계를 규정짓는 핵심 의제였다. 하지만 그 의제 자체가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거짓과 기만의 산물이라면? 소용돌이치는 한일관계에서, 불편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당신이 궁금해 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숨겨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모든 진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일본의 반일세력, 그들은 왜 거짓말로 자국을 배반하고 한국까지 세뇌시켜 한일관계를 어지럽히는가. 한국과 일본의 종북반일 세력이 날조한 위안부 문제! 이제 한일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니시오카 쓰토무
1977년 한국에 유학한 이후, 그는 40년 넘게 한국·북조선 연구에 매진해 왔다. 한국인을 만나면 “나는 친한파親韓派가 아니라 애한파愛韓派입니다”라고 자신을 스스럼없이 소개할 만큼 한국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명료하다.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국제기독교대학교와 쓰쿠바대학에서 한국·북조선 지역 연구를 공부했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 외무성 전문조사원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에 근무했으며, 1990년부터 2000년까지 「겐다이 코리아現代コリア」 편집장을, 1991년부터 2017년까지 도쿄기독교대학 조교수와 교수를 역임했다. 1997년 납치가족회를 지원하는 ‘구출회(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설립에 참여하고 현재 ‘구출회’ 회장, ‘역사인식문제연구회’ 회장,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연구원과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제30회 ‘세이론正論 대상’을 수상했다. 현 모라로지연구소 교수, 역사연구 실장, 레이타쿠대학 객원 교수, ‘구출회’ 회장을 맡아 자신의 생명까지도 담보하면서 실현해야 할 가치인 ‘선善’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신작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는 직면한 역사를 대등하게 바라보지 않고, 선동에 의해 한일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본 좌익과 반일을 선동하는 불온한 이들에게 던지는 ‘양심’의 소리이다.
저서로『일한 오해의 심연日韓誤解の深淵』(아키서방, 1992),『어둠에 도전한다! 납치·기아·위안부·반일을 어떻게 파악할까闇に挑む! 拉致·飢餓·慰安婦·反日をどう把握するか』(도쿠마문고, 1998),『테러 국가 북한에 속지 말아라テロ?家北朝鮮に騙されるな』(PHP연구소, 2002),『납치 가족과의 6년 전쟁: 적은 일본에도 있었다!』(후소샤, 2002),『일한 ‘역사문제’의 진실』(PHP연구소, 2005),『알기 쉬운 위안부 문제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소시샤, 2007),『아사히신문 ‘일본인에게 지은 대죄’朝日新聞「日本人への大罪」』(고쿠출판, 2014),『요코타 메구미와 납치 피해자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뿐?田めぐみさんたちを取り?すのは今しかない』(PHP연구소, 2015) 등 20여 권이 있다.
[예스24 제공]
목차
한국어판 서문6
머리말9
제1부 위안부 문제란 무엇인가?
제1장_ 종군위안부 소송의 주역17 ‘노예사냥’이라는 날조 증언 / 옛 종군위안부의 일본 규탄 / 원래 일본인이 한국에서 제소한 재판 / 「분게이?주文藝春秋」에서 진상규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다
제2장_‘강제연행’은 있었는가?39 유족회 간부와 아사히 기자의 연계 / 날조된 ‘일본군의 범죄’ 이미지 / 아사히신문의 악질적이고 중대한 날조 / 소학교 학생까지 위안부로? / 재판을 부추긴 일본인 / 전쟁피해의 개인보상은 한국의 내정문제 / 왜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 1992년 필자 논문에 포함한 네 개의 제언
제3장_위안부 문제의 거짓말75 제주도의 “위안부 사냥”이라는 엉터리 / 관동군關東軍에 의한 위안부 ‘2만 명 징모徵募’ / 있었던 것은 군수공장으로 갈 “남자 사냥”뿐 / “이 문제에는 어둠이 있다” - 조선인 알선업자의 존재 / 도쿄에서 집 다섯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저금 /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증언들 / 옛 위안부 열아홉 명의 증언을 검증 / 한국에 퍼져버린 거짓말
제4장_일본 외교의 실태119 외무성 고위직이 발명한 ‘광의廣義의 강제’ / 후세에 화근을 남기는 고노 담화 /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지불이 기정 노선으로 / ‘반일’ 일본인과 매스컴의 관계 / ‘아침까지 생방송 테레비!’에서 대논쟁 / TV도 외면한 요시다 세이지 증언 /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위안부=성노예’설 / 고노 담화에 대한 관심의 고조 - 논쟁은 국회의 장場으로 / 교과서 문제와 동일한 구조의 내정간섭
제2부 누가 위안부 문제를 만들어냈는가
제5장_세계에 퍼지는 ‘성노예’의 이미지169 자학적·문화파괴적인 신좌익 / 전 아사히신문 기자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씨의 행동 / 위안부 문제...(하략)
위안부 문제가 누군가의 ‘인생’과 ‘운명’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모라로지연구소 및 레이타쿠대학 교수다.
니시오카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지역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원래는 1980년대부터 주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천착해왔었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1991년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 증언의 진실성을 조사하면서 김 씨 증언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언론 활동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허위와 싸우는 역할을 떠맡게 됐다.
이 책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 한국어판(원제 : ‘알기 쉬운 위안부 문제(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은 현재 한·일 최대 현안으로서의 근현대사 문제인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니시오카 교수의 30년 진실 투쟁기다.
반일좌파언론 아사히신문이 날조한 위안부 문제
일본에는 원래 전쟁 이전부터 공창(公娼)제도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위안부도 그것이 단지 전쟁터로 옮겨간 것에 불과했다. 공창제도하의 매춘부와 마찬가지로 위안부도 실은 일본열도와 조선반도에 산재했던, 가난의 굴레에 희생된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아사히(朝日)신문을 필두로 일본내 일부 반일세력이 ‘20세기 초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이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노예사냥처럼 조선인 여성을 연행하여 위안부로 삼았다’는 거짓말을 대대적으로 퍼뜨리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은 먼저 위안부를 노예처럼 사냥했다고 주장한 일본 공산당 출신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에 대한 호의적 기사를 내면서 그를 믿을만한 인물인 것처럼 보증을 서주었다. 다음에는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에 관한 특종 보도를 하면서 원래는 그녀가 기생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숨기고선 오히려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전쟁터로 끌려갔다는 허위를 덧붙이는 날조를 범했다.
여기에다가 아사히신문은 일본군이 위안부 연행에 ‘관여’한 사료(‘육지밀대일기(陸支密大日記)’)를 발견했다는 1면 톱기사까지 냈다. 해당 사료 내용은 실은 불법적 위안부 모집을 경계하는 것이었지만, 아사히신문은 이에 대해선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고노 담화와 유엔 쿠라마스와미 보고서,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의 기만
1993년 8월에 나온 ‘고노 담화(河野談話)’는 이처럼 아사히신문의 기획 연출로 ‘가해자...(하략)
자신이 군의 명령으로 위안부 사냥을 했다고 하는 “양심적 증언자” 요시다 세이지, 그리고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발견한 군의 내부자료, 여기에다가 피해를 당했다는 측으로서 실명을 걸고 나선 옛 위안부 할머니. 이렇게 셋이 모였다. 이 셋으로 이루어진 세트가 이 책의 처음에서 인용한 ‘노예사냥’과 같은, 군인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을 증명하는 증거로서 당시에는 인식되었다. 아니,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부 미디어와 운동가는 이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일본의 명예를 손상시켰다. 당시의 분위기는 ‘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강제연행이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죄도 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너무나도 비인도적이고 잔인하다’는 것으로 흘러갔었다. ---p.31
소장에도 쓰여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에무라 기자가 동행한 다카기 겐이치 변호사 등의 청취에서도 그 사실은 언급되었을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보아도 김학순 씨가 기생으로 팔렸었다는 사실을 우에무라 기자가 몰랐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불리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그런 사실을 기사로 쓰면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에서 전제를 하고 있던 허구가 무너져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의심받아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수상 등을 공격하면서 ‘좁은 의미의 강제’라든가 ‘넓은 의미 강제’라든지 하는, 아무리 논의를 해도 이해하기 그런 어려운 문제는 제쳐두고 기왕에 사과할 것이라면 제대로 사과하는게 좋다는 식의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실은 그들도 당초에는 김 씨의 경우가 ‘좁은 의미의 강제 =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생으로 팔렸다는 사실은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모친에 의해 40엔에 기생으로 팔렸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의도적으로 기사에서 뺀 것이다. ---p.48
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허구를 대다수의 한국인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것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원흉이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문제가 옮겨진 것이다. 한일관계를 바르게 가져가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과 한국의 외교당국은 그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선 어떻게든 한국의 일반인들이 믿고 있는 거짓말에 맞춘 담화를 내고선 문제를 뒤로 미루려고만 했던 것이다. 다만 분명 한국에도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말한 외교관이 있었다. 그리고 옛 위안부가 면접조사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간파한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는 오 대사와 같은 용기 있는 양식파 외교관이 없었던 것이다. ---p.117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 바꿔 말하면 ‘위안부=성노예’설이라는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많은 한국인이 믿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는데, 고노 담화는 그 문제에 대해서 날카롭게 추궁하는 것을 피하고 ‘광의의 강제’라고 하는 궤변, 눈속임으로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었다. 단, 여기에서 본 것처럼, 역시 외무성의 수재가 만든 문장으로 발이 스모 씨름판 경계선에 닿았는데도, 어떻게든 스모 씨름판에 남아있는 것이다. 결국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만큼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p.125
쿠마라스와미 여사도 역시 일본어, 한국어를 할 수 없다. 여사가 보고서를 쓴 시기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영문 자료는 대단히 부족했다. 힉스의 저서가 거의 유일하게 정리된 영문 자료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엔의 조사관이 일본과 한국의 전문가가 격렬하게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영문으로 된 책 1권에만 의존해도 되는 것인가?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조차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사실오인이 있다”고 하면서, 힉스의 책과 요시다의 증언은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는 편지를 쿠마라스와미 여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여사는 이러한 날림의 방식으로 강제연행을 일방적으로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그 위에 서서 위안부를 ‘군성노예’라고 정의하고, 일본 정부에 국제법 위반 인정, 개인보상 실시, 관계자 처벌까지를 당당히 권고한 것이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다. ‘성노예’라는 결론이 처음부터 나와 있었고 그것에 합치하는 듯한 자료만을 모아 날조한 보고서라고 해도 좋다. ---p.183
미국인들은 정확히 설득하면 진실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외의 위안부=성노예파가 착착 모략선전을 전개하고, 오셀로게임처럼 본래 이쪽의 아군이어야 할 백白이 흑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또 한 번 되돌릴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오해를 풀기 위한 관민 합동의 대응이 지금이야말로 요구되는 것이다. ---p.228
제발, 많은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길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p.299